겉바속촉 넘버투
녀석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시력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으나 딱히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다.
사실 지독한 근시다. 갸우뚱갸우뚱거리며 내 심장을 힘들게 하는 그 자세, 영상 촬영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바로 그 자세! 안타깝게도 잘 보이지 않아서 초첨을 맞추려 애쓰는 거란다.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집사를 또렷하게 보고 싶은 그들의 애틋함을 생각하면 새삼 감동스럽다.
이토록 눈이 나쁘다니 안경을 씌워 주어야 하나 싶지만 바라보는 대상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동체 시력이 뛰어난 그들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도 종종 잡아낸다. 검은 동공을 동그랗게 확장시키고 허공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면 열이면 열 모두 작은 벌레를 발견한 것이다.
어제는 방충망 빈틈을 헤집고 들어온 벌이 갈 곳을 못 찾아 블라인드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을 둘째가 발견했다. 아… 그리고 깜깜한 밤에도 이 능력은 유효하다.
후각도 좋은 편이다. 그래서 냄새에 민감하다. 하지만 개와 비교한다면 뭐... '좋네' 하는 수준이다.
정말 놀라운 것은 청각이다. 얘들은 풀밭을 기어가는 개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소모즈의 귀, 그렇다 얘들이 그 놀라운 능력자다.
소리가 들리네? 하는 수준이 아니다. 피아를 구별할 수 있다. 즉 소리를 기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밥을 챙기는 아파트 고양이들도 그렇다. 얘들은 집에 사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잘 듣는다. 매일매일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서 있는 만큼 언제나 긴장하고 경계한다. 그러니 자기들을 이롭게 하는 나의 걸음을 기억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거다.
모퉁이를 돌아오려면 아직이라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 녀석들은 알고 있다. 내가 오고 있다는 것을.
성질 급한 녀석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제 주인을 마중 나온 강아지 마냥 명랑한 뜀박질로 제법 멀리까지 나와 나를 맞는다. 꼿꼿하게 곧추 세운 꼬리는 쉼 없이 내 정강이를 스친다. 어떤 녀석은 배를 보인 채 발라당 누워 뒹굴뒹굴 좋아죽겠단다.
그 무리에 넘버투도 끼었다.
바쁜 내 사정을 알리 없는 녀석들은 밥 보다도 내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급한가 보다.
“밥 먹어. 그만하고 밥 먹으라고."
길에 사는 아이들이기에 혹시나 낯선 이에게 해를 입을까 싶어 일부러 손을 태우지 않았건만 소용없다.
쌓인 시간이 주는 신뢰가 그보다 깊은가 보다.
야생의 겨울이 힘든 것을 말해야 알 수 있을까?
우리 동네는 한참 추울 때는 영하 19도를 찍기도 한다. 눈도 많이 온다. 강원도 아니다. 산자락 밑에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차로 40분 남짓 달리면 스키장이 있고 그 유명한 에버랜드가 있을 뿐이다.
쌓인 눈도 녹고 물도 얼지 않는 봄이 왔구나 싶으면 어느새 볕이 따가워졌다. 겨울나느라 고생 많았다 토닥여 위로할 겨를도 없이 독한 더위가 들이닥친다.
하... 이것 참... 여름도 만만치 않네.
비는 또 얼마나 많이 오는지. 지들 딴에는 피한다고 여기저기 숨어보지만... 썩 좋지는 않다.
여기저기 털에 묻은 검댕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마저도 계절을 여러 번 견디고 살아남은 다 자란 고양이의 경우에나 가능한 요령이고 만일에 경험이 없는 어린 새끼라면 그조차 호락호락하지 않다.
습하고 더러운 환경 때문에 눈도 짓무르고 콧물도 나고 그러다 더러 죽기도 한다.
2022년 여름이다.
다름없이 녀석들 밥을 챙기고 있었는데 5m 남짓 떨어진 수풀 속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라.
어미로 보이는 녀석과 서너 달쯤 되었을법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챙겨준 밥이 괜찮았는지 뒷날에는
새끼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둘이 아니라 셋.
그리고 또 다음 날에는 셋이 아니라 넷.
“어라! 이 무슨 조화지?"
더 기막힌 것은 어미로 보이는 녀석의 왼쪽 귀 끝이 살짝 잘린 것이다.
“이상하네. 중성화되었는데...
그렇담 너희들의 어미는? 그리고 너는 왜 새끼들을?" 이럴 때는 여기저기 소문을 내는 것이 현명하다.
소식통에 의하면 이 녀석들의 어미는 아파트 상가에서 챙겨 주는 밥을 먹으며 지냈단다.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의 도움으로 중성화까지 무사히 마치고 방사되었는데 알고 보니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어미였다고. 그러니까 그 녀석이 어미 맞았다.
나를 만난 지 일주일 되었을 무렵 어미는 더는 오지 않았다. 그 대신 새끼들이 아예 눌러앉았다.
새끼들을 몰아내고 싶은 앙칼진 암컷들과 달리 수컷인 대장과 넘버투는 암컷들의 텃새로부터 마치 제 새끼라도 되는 양 애지중지 챙겼다.
제대로 먹지 못했던 밥 이제라도 양껏 먹겠다고
으름장 놓기 일쑤였던 넘버투는 가장 좋아하는
캔까지 꼬맹이들에게 양보했다.
“너희들 얘네 알아? 신기하네."
짱 먹겠다며 서로 아웅다웅하던 녀석들이 알고 보니 겉은 까칠해도 속은 누구보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겉바속촉의 사내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보다 나아. 사람보다" 감탄했다.
살뜰한 대장과 넘버투의 정성이 통했을까?
아이들 눈에 염증이 좀 있어 마음이 쓰였는데 그마저 나았다. 그 해 여름 내내 산책로를 오가는 주민들은 누구라도 대장과 넘버투가 원팀이 되어 네 꼬맹이들을 거느리고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꼬맹이중 셋은 치즈였고 하나는 알록달록 카오스였다. 치즈 중 한 녀석은 강아지 친구도 사귀었다. 자그마한 몰티즈였는데 산책 나오면 늘 녀석을 찾는단다. 저도 그 강아지 친구가 좋은 지 뽈뽈 따라다녔다.
그러느라 여름이 갔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더위에 나무도 타 들어가고
풀도 쓰러지고 모두가 힘들어했던 그 여름,
꼬맹이 넷과 다 큰 수컷 고양이 둘은 한데 어울려
그 계절이 물러가는 것도 몰랐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느냐?
셋이면 셋이지 넷은 아니야.
넷이면 넷이지 다섯은 아니야.
랄라랄라 라라라라 랄라랄라라
...
그들의 행진은 동화 같았다.
영심이가 불렀던 그 노래를 부르며
우르르 신났을 거 같다.
(넘버투의 마지막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