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무용한 것의 쓸모

딱 고양이 밥값만큼만

by 꿈쟁이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네.”
장자가 말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에 관해 함께 말할 수 있네. 세상이 넓고도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 것은 발을 디딜 만큼의 땅이네. 그렇다면 발을 디디고 있는 땅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땅을 모조리 파고들어 가 황천에까지 이른다면, 그 밟고 있는 땅이 사람에게 쓸모가 있겠는가?”
혜시가 “쓸모가 없지”라고 대답했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음이 쓸모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네.”
-장자의 황천 이야기, 강신주의 장자 수업 p25-

오십 넘게 사는 동안 나의 선택의 기준은 “쓸모”였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 돈이 나오는 것도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림을 배운 적도 그려본 적도 없는데 겁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일 행복할 거야 하며 늘 행복을 미루었더랬는데 쓸모없는 그림을 그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행복하더라.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2024년 1월 첫 개인전 작가 노트의 일부>

언젠가 넷플릭스에서 "내 사랑(My Love)"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캐나다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를 그린 영화였다. 그녀는 참으로 불운한 사람이었다. 선천적인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등이 굽었고, 부모를 일찍 여읜 탓에 가난했다. 그런 그녀가 일할 사람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낡은 오두막,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짬을 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래된 페인트로 버려질 나무판자와 낡고 어두운 오두막 여기저기에 그려 댔다. 집이라 하기에는 면구스러울 정도로 누추한 공간이었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그곳이 좋았나 보다. 투박하기가 이를 데 없고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쓸 줄 몰랐던 집주인 에버렛 루이스와 끝내 결혼까지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영화 말미 생전의 루이스 부부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환하게 웃는다. 눈물 나게도. 그렇게나 좋을까. 그림 그리는 것이.

2023년 여름에 했던 낙서 중 일부
다양하게 그려본 마법사 호이

2023년 여름, 우연히 아주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났다. 그 무렵, 그림 그리는 시간의 일부를 덜어서 매일같이 낙서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한 친구를 그렸다. 마법 모자를 삐뚤게 쓴 고양이 그림.

여러 날을 고민했다. 이 친구와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그려보았다. 이름도 지었다. "마법사 호이"

혼자는 외로울 테니 친구를 그려야 했다. 어떤 친구가 좋을까? 녀석에게는 제법 똘똘한 친구가 옆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말이 좋아 마법사지, 어설프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모자를 쓴 것만 봐도 그렇고, 빗자루를 타는 모습도 영 어설프다. 그래서 그린 친구가 백조가 되지 못한 미운 오리 새끼였다.


둘의 서사를 정리하면 이렇다. 호이의 부모님은 그럭저럭 훌륭한 마법사였다, 그래서 호이에게 거는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우린 훌륭한 마법사였어. 그러니 너도 분명히 훌륭한 마법사가 될 거야."

사실, '될 거야'가 아니라 '되어야' 했던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이는 관심 없다. 앞마당에 풀꽃이 피었을까? 그런 게 궁금하고 소중할 뿐이다. 미운 오리새끼 깡이는 정말 못생겼단다. 그래서 주변에서 하나같이 "너는

백조가 되어야 할 텐데." 했다. 하지만 깡이는 반기를 든다. "못생기면 어때? 오리가 어떻게 백조가 된다는 거야? 나는 깡이라고." 야물딱지지 않은가.

그런 둘이 만났다. 단박에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2023년 나무 패널 위에 콜라주, 아크릴 물감>
<호이야 올겨울은 춥대, 2023년 수채화 물감>
<수프가 끓는다구, 2023년 수채화 물감>

2024년 1월 말, 첫 개인전 '모두 행복해져라, 호이!'를 시작으로 2월에도 4월에도 6월, 7월과 8월 그리고 10월까지 전시를 이어갔다. 열심히 준비하는 나를 이쁘게 봐준 갤러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25년 1월에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 휴게공간의 2평 남짓한 공간에서 '우린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작은 개인전을 한 달여 동안 진행했다.

작지만 참 따뜻한 전시였다.

종이를 가로, 세로 각각 1cm 남짓한 크기로 잘랐습니다. 자를 대고 칼로 그은 것이 아니라 가위로 자른 것이기에 삐뚤빼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마치 우리들처럼요. 잘라진 종이 뒷면에 크래프트지를 작게 잘라 덧대어 붙이고 또 붙이고, 또 붙이기를 반복합니다. 0.5mm 두께가 채 되지 않는 종이가 20mm를 훌쩍 넘는 탑이 되기도 합니다.
네모조각탑을 나무 판에 흔들리지 않게 붙입니다. 네모조각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홀로 떨어져 있는 조각은 하나도 없습니다. 네 개의 뾰족한 모서리로 서로를 위협하지 않고 조금씩 곁을 내어주어 어깨를 기댑니다. 때문에 두렵지 않습니다. 이 작업은 ‘마법사 호이’ 이야기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특별함이 없음에도 그들이 행복했던 이유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기 때문입니다. 살만한 세상은 홀로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손잡을 수 있는 세상, 함께 나누는 세상이 아닐까요?
공생하는 우린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림 속 작은집들은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고 작은 고양이 그림 조각들은 우리와 삶의 터전을 나누어야 할 ‘사람 아닌 동물’을 대신합니다. 나무와 꽃으로는 우리가 지켜야 할 환경을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세계의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저도 오랜 시간을 들여 종이를 자르고 붙여 탑을 만들고 오랜 시간 켜켜이 색을 올려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린 행복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혼자 말고 함께라면요.

<2025년 1월 돈의문 박물관 마을 전시의 작가 노트>
<2025년 1월 돈의문 박물관 마을 전시 전경 일부>
<전시 전경>

그 이후 2월 북촌에서 개인전을 했고, 6월 말부터 한 달 동안 구로구의 책다방에서 작은 규모의 작품전을 열였다. 이렇게 써 놓으니 참 잘 되었구나, 순탄하게 잘 가는구나 싶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전시는 다락방 느낌의 작은 갤러리나 북카페에서였다. 나는 이런 전시가 좋았다. 반듯반듯 각진 공간에서 폼 잡고 하는 전시 말고 편안한 공간에서 누구든 부담 없이 그림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가 본 현실은 생각만큼 이쁘지 않았다. 대부분 잘 팔릴 그림 걸기를 원했다. 그렇지 않으면 비싼 대관료를 지불해야 했다. 내 그림은 복을 불러오는 그림도 아니었고 공간을 화려하게 빛내주는 그림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벽면을 가득 채워줄 만큼 큼지막한 그림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이 많은 늦깎이 비전공 작가였으니 꺼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떤 갤러리에서는 유명한 작가로 만들어주겠노라며 제법 큰 현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림값은 얼마든 부르는 대로 받을 수 있을 거라 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화도 났다. 이런 제안을 받는 내가 창피스러워서 누구에게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입으로는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속으로는 "그 돈이면 우리 아이들 몇 년치 밥값을 하겠네." 했다. 고양이 밥값이 꾐에 넘어가지 않도록 나를 꽉 붙잡았다.


사실, 고양이 밥값은 전혀 벌지 못하고 있다. 한 작품도 팔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 일 년은 판매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 전시 때마다 갤러리에 가격표를 내야 하는데 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림 그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판매를... 이런 생각을 했던 거다. 지인에게는 판매는커녕 전시 소식조차 알리지 않았다. 형제들에게까지도.

나이 들어하는 일, 이런저런 입방아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전시하는 공간은 판매와는 퍽 거리가 멀다.

그러니 잘 될 턱이 있나.

<2023, 모두 행복해져라! 나무 패널 위에 종이 콜라주, 아크릴 물감>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나의 작업 공간은 거실 테이블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작업 도구를 펼치고 치우는 것을 반복하며 5~7시간씩 매일 그렸다.

비록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예술인 활동 증명'을 가능케 하는 전시는 아니었지만 많은 작업과 연이은 전시가 헛되지만은 않았다.

호이를 만난 지 만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호이에게는 함께 사는 친구뿐만 아니라 여러 이웃이 생겼고 그의 마을은 풍성해졌다. 이웃인 꼬꼬네 집 뒷마당엔 마을에서 가장 큰 살구나무가 있고 여름에는 찔레꽃을 따는 개미들도 있다. 미루나무가 하늘 높이 솟은 아무 데도 없는 마을이 나의 상상 속 세상에 그려졌다.

그리고 나는 눈치챘다.

지금이구나! 이제야 이야기를 제대로 쓸 수 있겠구나.

고양이 밥값을 위하여.

<2025 미루나무 가족, 나무 패널 위에 유화 물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