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것은 너무 잔인한 거야.
그 애들이 커서 모든 것을 알아버렸을 때 실망할 것을 생각해 보란 말이야. 무지개 너머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완전 사기란 말이지. 아이들에게는 진실을 이야기해 주어야 해. 그게 현실이니까. 현실은 빨리 깨달을수록 좋은 거라고.
어쩌면 그때가 사춘기였나 보다. 괜스레 삐딱해져서는 '어디 걸리기만 해 봐라' 온갖 게 시빗거리였던 거 같다.
하지만 그 시절 내 딴에는 꽤나 진지했더랬다. 동화 나부랭이를 읽게 하는 것은 꿈과 희망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명분 뒤에 숨은 비겁한 짓이라 여겼다. 그런 이야기 뒤에 숨어서 비열하게 킬킬거릴 어떤 누군가를 생각하니 더더욱 부아가 뒤집힌 것이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동화를 좋아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 내팽개치고 마루에 누우면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사이로, 읽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눈앞에 그 세상이 막 펼쳐질 것만 같았다. 어찌나 좋던지 상상에 취해 노곤노곤해진 눈꺼풀이 내려앉으면 성냥개비를 그었던 가난한 소녀가 보았던 환상이 내게도 보이는 듯했다. 그 시절 동화는 나 스스로 자아낸 온갖 걱정으로부터 나를 지켰다. 그러더니 쬐금 컸다고, 세상의 어른들 이야기를 쬐금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동화 무용론을 대차게 떠들어댄 것이다.
하지만 그때뿐, 여전히 나는 동화를 좋아한다.
더 이상 꿈 따위는 꾸지 않아도 될 법한, 어쩌면 꾸던 꿈도 꺾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동화가 좋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고 작정하고 투정 부리고 싶을 때, 뭐라 설명조차 애매하고도 묘한 감정이 똬리를 틀 때, 가물어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마음에 흙먼지 풀풀 날릴 때, 먹어도 먹어도 허기질 때, 딴 거 필요 없고 마냥 울고 싶을 때... 등등...
그때마다 책장 앞에 서서 뒤적뒤적 동화책을 꺼내어 읽는다. 그림을 보고 또 본다. 한참을... 그러다 어느 틈엔가 그곳에 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엉키고 헝클어진 마음이 침잠해진다. 눈가가 촉촉하다.
좋다. 뭐, 사는 거? 별거 없다.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이야기를 그렸다. 이쁜 꽃이나 근사한 풍경, 인물이 아닌 이야기를 그렸다. 나름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최고의 연습 방법이라 생각해서였겠지만 무엇보다 그 과정이 재밌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림책을 써야지 하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쓰는 게 쉬운가?
한껏 푸념만을 쏟아 놓아도 되는 일기와는 다를 텐데.
서른 어디쯤이었을까?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부러워했던 게.
그의 글재주가 탐났다.
'나도 이렇게 잘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금세 마음을 접었다.
그의 일대기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살아야만 얻을 수 있는 재능이라면
“정중히 사양합니다." 했다.
그의 글은 재주가 아니었다. 그가 살아낸 삶이었다.
그럼 나는?
나의 삶을 생각하자 쓸 용기가 아예 없어졌다.
언제 한 번이라도 내 삶을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밀어재끼는 시간에 반항조차 못하고 떠밀려 산 것을 어찌 살았다 할까. 빈약한 삶, 감히 쓸 수 없겠구나.
영 내키지 않았다. 쓰는 것은 무엇이든.
우연이었다. 모든 것이.
늘 그랬듯이 그때도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하고 눈을 질끈 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직 앞을 보고 부지런히 살아야 했던 시간을, 별안간 뒤돌아 많은 것을 등지고 느리게 살았다.
아예 셈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모으지 않고 버리고 살았다. 누군가의 눈에는 참으로 쓸데없는 짓이었겠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혹여 박씨라도 물어다 주려나? 에이, 동화를 좋아하지만 천지 분간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내 것을 나누었던 그들에게 기대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예전의 나로부터 한참을 벗어나 있더라. 하늘을 보지 않아도 높은 곳을 바라지 않아도, 땅을 보며 땅을 기며 살아도 살 수 있는 거였구나. 누군가를 이기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거였구나.
대단하게 살지 못했어도 쓸 용기가 났다.
그래서 아무 대책도 없이 말도 안 되는 마을의 이야기를 그리고 쓰게 되었다. 그것이 설령 나의 바람 따위에 불과할지라도 쓰기로 했다.
곧 "고양이 밥값"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어쩌다 보니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전시도 합니다. 그럼 그것으로 되었다 싶지만 자꾸만 마음 어딘가 아립니다. 그래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시작이었을까?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일의 시작을 위한 이유가 거창할 필요 없다고 그리고 그 일의 결과 또한 위대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를 토닥이고 싶습니다.
-고양이 밥값 브런치 북 소개글-
글의 시작이 언제였던가. 찾아보니 7월 4일이다. 그때는 닥쳐 올 폭염이 이토록 막무가내일 줄 몰랐다. 매주 한 편씩 쓰느라 지난 시간을 억지로라도 돌아봐야 했다. 그 바람에 끝이 없을 것 같던 여름이 끝났다. 그리고 나의 시작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조금은 알겠다. 그래서 또 나아가려 한다.
겁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주저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뒤를 돌아보아도 두렵고, 목을 한껏 뽑아봐도 보이지 않는 내일이 그저 두렵다. 그러니 어쩌랴. 그냥 지금을 살련다. 양식 쌓아두지 않는 고양이들처럼. 종종 뒷걸음질도 하겠지만 괜찮다. 뒷걸음한 그 걸음보다 딱 반보만 더 앞으로 나가면 되니까. 이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 작은 목표 '고양이 밥값'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뭐... 닿지 못해도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