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마법사의 상징과도 같은 챙이 넓고 뾰족한 고깔모자, 호이의 그것은 언제나 쭈글쭈글하다. 쓰는 거라도 단정하면 좋으련만 그조차 늘 비뚜름하다. 확 벗고 다닐까 보다 하는 마음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명색이 마법사인데 싶어 그러지는 못한다. 또 친구들도 그가 마법사이기를 원한다. 그의 마법 모자에는 반짝이는 돌멩이 같은 것이 달렸는데 어떤 상황이 되면 달그락거리며 흔들리기도 하고 더욱 빛나기도 하고 아예 빛을 죽이기도 한다. 그것은 오직 호이가 썼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다.
마법사니까 이동할 때 요긴하게 사용할 빗자루도 가지고 있다. 다만 호이는 높은 하늘을 날아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나 두렵다. 고소공포증 뭐 그런 거 아닐까? 암튼 하늘을 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게 해 준 이가 '백조가 되지 못한 미운 오리새끼 깡'이다. 그 덕에 빗자루에 올라 타지는 못하지만 매달려 날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친구들을 바구니에 태우고 달맞이도 갔더랬다.
혹시 브레멘 음악대를 들어본 적 있는가? 저마다 눈물 나는 사연으로 뭉친 그들은 독일의 대도시 브레멘으로 가서 음악대가 되기로 한다. 음악대가 되면 밥벌이쯤은 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중에는 수탉도 있었다. 새벽마다 목청껏 울어 새날이 오는 것을 알려주었건만 늙었다고 푸대접하는 것도 모자라 손님 대접용 수프 거리가 될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탈출을 감행한다. 다른 동물들의 사연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모두 다 함께 먼 길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 비록 늙고 쓸모없어 팽 당했지만 그들은 새로운 삶을 꿈꾼다. 가자 브레멘으로! 새 삶은 브레멘의 음악대로 사는 거야! 하지만 그들은 브레멘에 닿지도 않았고 음악대가 되지도 않았다. 브레멘으로 향하던 길, 살기에 딱 좋은 곳을 찾은 거다.
마법사 호이 마을의 꼬꼬는 브레멘 음악대가 되려던 수탉의 먼 친척이다. 그래서일까? 부지런하지만 돈키호테처럼 무모할 때도 있다. 그리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를 모른 척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풀섶에서 삐약삐약 울고 있던 어미 잃은 두 병아리의 아빠가 되었다. 그 병아리들이 바로 배추와 열무다. 이유식을 떼고 스스로 먹었던 첫 번째 음식이 배추와 열무이기도 했고 유난히 배추와 열무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름을 배추와 열무로 지었다. 둘이 똑같이 생겼다. 가끔 꼬꼬도 누가 배추고 누가 열무인지 헷갈릴 때도 있단다.
호이와는 아주 가까운 이웃이다.
마을 전체가 들썩일 만큼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밤이었다. 때마침 호이가 마법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반짝이는 돌멩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누군가가 위험에 처한 것이다. 호이랑 깡이는 서둘러 마을을 살폈다. 아뿔싸! 꼬꼬네 지붕이 뜯겨 나간 것이다. 그걸 호이가 고쳐주었다. 그날 이후, 그들은 더욱더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다.
아, 참! 꼬꼬네 뒷마당에는 마을에서 가장 큰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들의 자랑이다.
들쥐 사형제는 옛이야기 "시골쥐와 도시쥐"이야기에 나오는 시골쥐의 후손이다. 부엉이 가족과 함께 동쪽숲 부근의 속이 텅 빈 너도밤나무에서 살고 있다. 그럴 필요 없는데 종종 누군가의 집에 숨어들어 훔쳐 먹는 것을 즐긴다. 뭐 다들 알고,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마을 일에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이다.
가족을 누구보다 아끼는 부엉이 아울은 교양 있고 우아한 노을 여사의 말이라면 꼼짝 못 한다. 아울과 노을 사이에는 아기 부엉이 뿌가 있다. 아울과 노을의 눈에 뿌는 언제나 아기다. 정말 그럴까?
이들 말고도 마을의 동쪽에 위치한 동쪽숲에는 동쪽거미가 산다. 걱정 많은 그는 언제나 마을 지키는 일에 진심이다. 동쪽 마법사가 마을을 노리고 있다고 믿는다. 서쪽에는 사 천년 된 산뽕나무 숲이 있다. 그곳에는 말 없는 누에 실키가 산다. 또 꽃잎을 따서 버섯 농장을 가꾸는 잎꾼 개미들도 마을 아래쪽에 살고 있다.
이쯤 되면 마을 지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 마을에는 아주 커다란 비밀이 있는데, 마을 곳곳에 굴러다니는 반짝이는 돌멩이가 바로 그것이다.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는 마을이지만 아무도 마을을 보지 못했다. 아무 데도 없는 마을이 된 것이다.
하지만 땅속 나무뿌리들과 땅속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풀씨들은 이 마을을 알고 있다.
반짝이는 돌멩이를 탐 낸 이들은 모두 마을 어귀의 나무가 되어 도리어 마을을 지키고 있다는 것도.
2023년 7월부터 줄곧 이 마을만을 그리고 전시했다. 처음에는 마법사 호이뿐이었지만 지금은 제법 그럴듯한 마을을 이루었다. 그리고 첫 번째 에피소드를 그린 더미북이 완성되었다.
정말이지 브런치북 '고양이 밥값'과 때를 같이 할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운 좋게도 그때가 맞았다. 책 작업은 올해 5월부터였고, 브런치 북 연재는 7월부터였으니까. 그럼에도 브런치 북 연재는 큰 도움이 되었다. 한 번쯤은 작정하고 뒤돌아 살폈어야 했는데 이번 연재가 이를 도왔다.
굳이 더 나은 길을 찾으려 애쓰지 않으련다. 발걸음 닿는 대로 걷다가 작은 풀꽃이 보이면 잠시 주저앉아 '참 예쁘네.' 쓰다듬어주고 풀꽃에서 거둔 시선에 다른 길이 보이면 그 길을 가 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테다. 그렇게 가는 길이라면 덜 두렵겠지. 혹시라도 내딛는 걸음이 망설여질 때는 집안과 집 밖의 돌봐야 할 내 고양이들을 생각하고, 힘들어 그만할까 하는 생각이 치밀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곧 닥쳐올 죽음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 멈추면 다시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꾸역꾸역 나아가게 될 테니.
또한 남겨 주신 응원의 글 역시, "참 고맙습니다. 덕분에 생각 많아 무거운 걸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어느 출판사에 보내야 하는지도 잘 모른 채 용감하게 책부터 만들었다. 여기저기 더미북 PDF 파일을 보내 출판 가능 여부를 물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거절을 당하게 될지 벌써부터 가슴이 뻐근하고 욱신거린다. 하지만 부딪혀 볼 테다. 한편, 머릿속은 다시 또 즐겁게 바쁘다. 두 번째 에피소드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난한 날씨는 올해도 여전하려나 보다. 스미는 찬바람이 당황스럽다. 바깥 녀석들 겨울집, 청소하고 포근한 담요를 넣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