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거 왜 이러냐? 뭐가 잘 안 되는 것 같단 말이야.” 한 달 동안 여덟 번의 달리기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혼자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다.
다시 지난 번으로 잠시 돌아가면, 첫번째 달리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2리터 생수병에 입을 대고 물을 벌컥벌컥 마신 일이었다. 생수병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것은 아내가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이기에(모든 아내가 그런 것으로 믿고 있다)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일이지만(아예 안 한다고는 못하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면 100%로 된 티셔츠는 장마철에 우산 없이 밖을 다녀온 것인 양 땀으로 흠뻑 젖어서 살에 달라 붙으려 했고, 외출용 반바지도 허리부터 엉덩이 중간 정도까지는 땀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선풍기 앞에서 땀을 식혀 보았지만 빨리 샤워를 하는 것 외에는 뛰는 가슴을 가라앉힐 방법이 없어 보였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빠르게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온 뒤에야 간신히 약간 진정이 되었다.
그런데 운동하고 나면 상쾌할 것이라는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몸이 축축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운이 솟아나기는 커녕 온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서 몸이 흐느적거렸고, 눈꺼풀은 점점 감기는 것 같았다. 한참동안이나 안 하던 운동을 한 것이니 시간이 지나 몸이 적응하면 괜찮아 질 것이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운동 한 것 때문이니 다음에는 밤에 운동을 하고 평소처럼 자는 시간을 확보하면 될 것이다 등 여러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건강한 생활로 향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탔으니 이제 남은 것은 계속해서 뛰는 것 뿐이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두번째, 세번째 달리기를 할 때는 달리는 시간을 아침이 아닌 한밤 중으로 옮겼다. 밤 중에 늦게까지는 잘 깨어 있기에, 보다 익숙한 밤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밤 10시 30분에서 11시 정도에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밤 시간에 달리고 나서의 몸 상태는 안타깝게도 첫번째 달리기를 했을 때와 비슷했다. 여전히 힘들었고, 쉬지 않고 먼 거리를 달리지는 못했고, 걷다 뛰다를 반복했을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번째 달리기에서는 드디어 전체를 6분대 페이스로 달릴 수 있었고, 세번째에서는 두번째보다 기록을 조금 더 당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비롯 세번 달렸을 뿐이지만 러닝의 맛을 알 수 있었다라고 쓰고 싶지만, 사실 그 때는 모르는 것이 뭔지도 모른 채 달리던 때였다. 심지어,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서, 물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거기에 마지막 한 힘까지 짜내는 나를 생각하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운동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멋진 현대인이 바로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완전한 착각이었다. 달리기를 하고 나면, 교감신경이 흥분하고 체온이 상승해서 잠들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은 한참 뒤에나 알게 되었다.
이렇게 일주일에 두번씩 달리기를 하게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어느덧 여덟 번째 달리기까지 마쳤다.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뛰면 뛸수록 기록이 좋아지고, 힘도 덜 들게 되는 것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큰 변화는 없었다. 순간적으로 더 빨리 달릴 수는 있게 되었지만 그러면 멈춰서 쉬어야 하는 시점이 보다 빨리 찾아왔고, 달린 총 시간을 살펴보면, 빠르게 뛰고 자주 쉬는 것과 조금 천천히 뛰고 적게 쉬는 것 사이에서 걸리는 총 시간은 결과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었다. 물론 빠르게 뛰면서도 쉬는 횟수를 적게 가져가고 싶은 것이 내 희망이었지만,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었다. 원인과 대책을 알고 싶었다.
믿을 곳은 용용이 밖에 없었다. 용용이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야, 그냥 뛰어. 계속 뛰다 보면 좋아져." 내 질문에 대한 용용이의 답이었다. 나는 초보이기에, 그냥 계속 뛰다 보면 쉬는 시간이 줄어들고 언젠가는 논스톱으로 뛸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용용이의 말이었다. 다만 빨리 뛰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천천히 뛰면 ‘언제가’는 쉬지 않고 목표로 하는 거리를 달릴 수 있게 된다고도 했다. 그 ‘언젠가’라는 시점이 도대체 언제쯤 오는 것인지를 알고 싶었지만, 개인차에 달린 일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두 달 정도면 된다고도 했다. 당장 빠른 속도로 뛰고 싶은데, 오히려 천천히 뛰어야 빨리 뛸 수 있게 된다니 잘 이해가 안 되었다. 그렇지만, 어지간한 사람에 나도 포함된다고 믿으며, 달리기 선배님의 말이니 다음 번에는 한 번 실천을 해보기로 했다.
"평균 페이스는 5분 54초입니다."
열번째 달리기를 마치고 나이키앱의 종료버튼을 누르자 나온 음성이다. 이야하는 탄성이 내 입에서 나왔다. 드디어 5분대 페이스를 달성한 것이다. 드디어 나는 초보딱지를 떼고 '평균 페이스 5분대'의 '러너'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러다 다음달이면 4분대가 되는 것 아닌가, 나도 몰랐는데 내가 달리기에 소질이 있었구나, 진작에 시작할 것, 이제 취미란에는 달리기라고 적고, 누가 물어보면 뭐 5분대로 가볍게 뛰어요라고 말해야겠다는, 지금 보면 역시나 부끄럽기만 할 뿐인, 온갖 헛된 희망들이 머리속을 채우고 있었다.
용용이의 조언대로 아홉번째 달리기부터는 더욱 느리게 시작을 했다. 천천히 뛰는 것으로 시작해보니, 왠지 오래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라나 재미가 없었다. 달리기는 모르지기 속도가 생명이 아닌가. 100미터를 9초대에 완주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온갖 언론의 관심을 받고(그 옛날 100미터 기록 보유자인 칼루이스, 벤 존슨의 이름은 운동에 관심이 없던 나도 아직까지 기억할 정도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가장 빠르게 뛴 사나이인 황영조를 모르는 내 또래의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나 빠른 기록만이 달리기의 본질이라고 생각을 했다. 5분대로 달릴 수 있는 내가 7분대로 달리는 것은, 사바나를 시속 80키로로 질주할 수 있는 표범에게 목줄을 매어 놓고 달리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목줄의 봉인을 해제하기로 했다. 그래 심장이 터질 때까지 뛰어보자. 달리기는 뭐니뭐니 해도 속도 아니겠어. 봉인이 해제된 나는 야밤의 양재천을 폭주하기 시작했다. 1키로를 달릴 시점에 무려 6분대 초반이라는 가공할 속도의 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질주는 오래가지 못하고 쉬어야 하는 타이밍이 금새 찾아왔다. 아쉽게도 아직 나는 3.5키로를 쉬지 않고 뛰지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보폭이 커지면서, 나의 허벅지 근육도 폭발하기 시작했다. 다시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그만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뛰어 보았다. 심장이 마구 펌프질을 하며 나의 사랑스런 달리기 근육들에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 느껴졌다. 누가 나를 보고 있으면, 올림픽 100미터의 마지막 10미터를 달리는 선수처럼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으로 보이겠지. 이 순간만큼은 내가 양재천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말들이지만, 그 때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5분대 페이스'의 '러너'가 된 나는 다음 목표를 찾기 시작했다. 3.5키로의 달리기를 하는 동안 쉬는 횟수는 이제 한 번 아니면 두 번으로 줄었지만, 아직 논스톱 달리기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 다음 목표는 5분대 페이스로 쉬지 않고 3.5키로를 달리는 것으로 하자.
그러나 목표를 정한 시점은 7월 중반이었고, 더위는 정점을 향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뉴스에서는 열대야라는 얘기가 연일 나왔고, 덕분에 밤 10시에도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밖에서 달리기를 하기에는 많이 더운 날씨였고, 정상적인 러너라면 기록에 집착하기보다는 몸을 아끼며 무리하지 않는 것에 신경 써야 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이런 기초적인 사항도 몰랐었고,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고 계속해서 강행군을 이어 가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생각했던대로 5분대 페이스로 힘차게 달려보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몇 주 전과는 달리, 달리는 중간에 멈추는 횟수, 아니 멈춰야만 하는 횟수는 오히려 늘어만 갔다. 1키로를 계속해서 달리는 것이 힘들었고, 3.5키로의 달리기 동안 쉬는 횟수는 세 번, 네 번으로 늘어갔다. 날씨 탓이겠지, 5분대의 러너라면 이 정도는 논스톱으로 달리겠지만 날씨가 이 모양이니 내가 빨리 달릴 수가 없는 것이지. 모든 핑계를 날씨로 돌리고 나니 5분대 러너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어찌되었건 14회차 달리기를 한 오늘도 5분대 러너의 명성에 금이 가지는 않게 평균 페이스 5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도 하지 않아 5분대 러너가 되었음을 어디 자랑할 곳도 없는 나는, 누군가가 달리기 얘기를 꺼내 주어 넌지시 자랑할 날만 생기기를 바랬다. 여전히 힘들었고, 밤 중의 운동 후 각성으로 빨리 잠들지 못하는 날들은 계속되었지만, 그것보다는 5분대 러너라는 명성이 더 중요하니까.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은 다음에 하면 되니까.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