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차 달리기를 한 이후 1주일 간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그 동안 더위가 조금이나마 누그러졌기를 바랬지만, 휴가를 보냈던 강원도와 달리 수도권에는 여전히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휴가 동안 달리기 생각은 나지 않을 정도로 잘 쉬고 잘 먹다가 돌아온 덕분인지, 휴가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다시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달리기를 하러 밖에 나가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TV를 켜고, 먹을 것 없나 냉장고를 뒤지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지난 한 달 반 동안 밤에 달리기를 한 것은 크나큰 일탈이었던 것이다. 원래의 모습대로 1주일을 보내다보니 힘들었던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래, 아직 날씨가 더우니 좀 쉬고, 몇 주 지나 선선해지면 운동하기에 훨씬 좋은 날씨가 되잖아, 그때 다시 달리를 하면 되는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이미 5분대 러너이니 좀 쉰다고 내 실력이 어딜가겠어라고 생각하며 운동화를 신지 않는 나를 합리화했다.
밤 중에 달리기를 안 해도 되니 몸이 편해졌다. 퇴근 후 굳이 땀을 흘릴 일도 없었고, 달리기 할 시간에 TV도 보고, 아내와 얘기도 하며 평화로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이대로 일주일만 더, 일주일만 더를 몇 번 반복하니 어느새 9월이 되어 버렸다. 간간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아침저녁 바람이 더웠던 여름을 저 멀리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몸은 이전의 편안한 일상에 길들여져 있었다. 운동하러 갈까말까를 고민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 때마다 나의 선택은 운동 대신 TV를 보는 것이었다.
9월이 끝날 때까지도 몇 번을 그랬다. 이제 한 번은 달리기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든 것은 10월 초가 되어서였다.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운동을 하러 나갔다. 지난 번 마지막 달리기로부터 거의 두 달이 지난 때였다. 이제 다시 열심히 달려서, 5분대 페이스로 쉬지 않고 3.5키로를 달리면 되는 일만 남았다, 그 동안 해 놓은 게 있으니 조금만 하면 금방 되겠지라는 편안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아파트 현관을 나오자마나 느껴지는 10월의 밤 11시의 날씨는 선선함을 넘어서서 추운 정도였다. 10월 초이기는 하지만 낮 동안에는 반팔로 다니기에 문제는 없었는데, 밤 11시에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밖을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산책나온 사람들은 이미 긴팔, 긴바지를 입고 있었고, 러너로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긴바지를 입은 사람이 꽤 있었다.
그래도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온 이상 나오자 말자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몇 달 만에 나온 것인데, 뛰면 괜찮아 지겠지라고 생각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 것이 느껴진 것은 조금 뒤였다. ‘6분대 후반 페이스 정도는 원래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그냥 뛰었는데, 왜 이러지’ 마치 오늘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것처럼 헉헉대는 것이었다. 오래간만의 달리기라서 아직 적응을 못한 것이겠지, 조금 속도를 올리면 다르겠지하는 기대와 함께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잠시 동안 5분대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을 뿐 이전과 같은 정도의 시간 동안 5분대의 속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속도를 내려서 천천히 뛸 수 밖에 없었고, 그것마저도 힘겨워 곧 멈춰섰다.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워서 쉬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제 나는 예전의 5분대 러너가 아니었다. 잠시 달리기를 멈추니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의 러닝이지만 흘렀던 땀은 시원한 바람에 금새 식어버렸다. 호흡을 가다듬고 뛰는 것을 다시 시작했지만 나를 스쳐가는 바람은 6월의 따뜻한 기운이 담긴 그 바람이 아니었다. 관악산에서 내려오는 차디찬 가을 바람이 얇디 얇은 반팔 티셔츠를 관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잘못됐나?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나는 5분대 러너가 아니었나. 달라진 것은 두 달 동안 달리기를 안 했던 것 밖에 없잖아. 그래 날씨가 추운 게 탓일거야. 이번에도 나는 핑계를 날씨에 돌리기로 했다. 이것이 나를 합리화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주말에 긴팔, 긴바지를 사서 몸을 따뜻하게 한 다음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3.24km, 6분 38초 페이스. 10월의 달리기. 이것이 올해의 마지막 러닝이 될 줄을 그 때는 몰랐었다.
직전 달리기를 작년 10월에 하고, 해가 지난 지금은 벌써 3월이니 달리기를 못한, 아니 안한지가 벌써 6개월째다. 도저히 반팔과 반바지로는 견딜 수가 없어서 운동복을 사러가야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이것조차 하루이틀 미루는 날이 계속되었고, 급기야는 11월이 되어버렸다. 출퇴근 길에는 코트를 입어야 하는 날씨가 되었고, 옷장 속에 있던 스웨터를 꺼내 놓는 시기가 온 것이었다. 장갑을 끼지 않으면 달릴 때 손이 시렵고, 바람막이 잠바도 하나 있어야 될뿐만 아니라, 더 추워지면 얇은 패딩의 러닝조끼도 필요하고, 귀와 머리의 보온을 위한 모자 등등 겨울 용품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겨울철 달리기 특집이라는 어느 인터넷 글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해는 점점 짧아져서 저녁 6시만 되어도 밖은 이미 어두워지는 날씨였다.
그래 겨울은 길고 추우니 이번 겨울은 그냥 쉬고, 내년에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라는 마음 속의 유혹이 밀려왔다. 이번 한 번이 마지막이라는, 어쩌면 지키지 못할 약속을 다시 한 번 하며 현실과 타협했다. 과연 내년의 나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은 이렇게 넘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달리기에 대한 기억은, 금새 끄집어낼 수 없는 철지난 여름 옷을 두는 장롱 속 깊숙한 서랍장 속에 넣어 두기로 했다.
마침내 약속했던 봄이 왔다. 겨울철에는 잘 보이지 않던 러너들이 어느 순간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을 보니 그 동안 있고 있던 달리기에 대한 의지가 샘솟았다. 그러나 마음 먹은 대로 일이 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러닝 시간이 문제였다. 그 무렵부터 회사일이 바빠지기 시작해서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아졌고, 밤 중에 달리기를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평일에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잠만 자고 다시 출근하는 날이 계속되었고, 주말에도 해야 되는 일들이 쌓여서 달리기를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부터 아이들이 토요일 오전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수업 끝날 때까지 기다려서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일까지 더해졌다. 이번 봄에도 달리기는 이렇게 물건너 가는구나 낙심을 하니, 달리기에 대한 기억은 점점 옅어져가기만 했다. 그런 던 어느 날 아이들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인라인장에서 좋은 생각이 났다.
인라인장은 체육공원 야외에 자리잡고 있는데, 육상 트랙처럼 생긴 타원형의 트랙이 설치되어 그 안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게 되어 있는 곳이다. 인라인장 옆에는 풋살장이 있고, 인라인장과 풋살장의 가장 바깥 쪽으로는 산책로가 크게 있었다. 그 주위를 산책하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문득 생각이 났다. 애들이 강습받는 동안 나는 여기 체육공원 주위를 돌면서 달리기를 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 말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장소가 어딘들, 시간은 어떻든 상관은 없었고, 일단 이렇게라도 시간이 나는 것이 땡큐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날 강습을 받으러 가는 아이들에게 말을 했다. 아빠가 여기 운동장 주위를 달리고 있을테니까, 쉬는 시간에 아빠 안 보이면 걱정 말고 쉬다가 다시 수업을 해. 여기에 물이랑 간식 있으니까 이거 먹으로 되고. 이따가 수업 끝나기 전에는 와 있을게. 그렇게 그해 3월, 4월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인라인장 주변의 공원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3키로 남짓이라서 비록 긴 거리를 뛴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거리가 문제겠는가 장소가 문제겠는가 일단 어디에선든 조금이라도 뛰는 것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가 힘든 상황이 계속되어 2주에 한 번 정도 만 평일 달리기가 가능했다. 마음먹은 것만큼 자주 운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바쁜 와중에도 달리기 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는 열정을 가진 나를 칭찬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화양연화, 꽃 같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먼저 인라인 코치님께서 갑자기 퇴사를 하셨는데, 센터에서는 후임 코치님을 구하지 못해서 강습이 열리지 못하는 상황이 몇 달간 계속되었다. 애들이 강습을 안 받으니 내가 달리기를 할 시간도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 시간에 혼자서 달리기를 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 의지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한 때 좋아졌던 코로나 상황은 더 심해져서 이제는 집합금지로 인해 야외활동도 쉽지 않은 상황까지 되어버렸다. 물론 혼자 달리는 나에게 집합금지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마스크를 쓰고 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나에게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크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을 하게 되었다. 업무로도 바쁜 상황이 계속되면서, 달리기를 위한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없어져만 갔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 어영부여 달리기를 거의 하지 않은 채 여름이 지나갔고, 금새 10월이 되었다. 달리기를 시작한지 1년이 훌쩍 지난 시점인 것이다. 그러나 처음 달렸던 1년 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것은 크게 없었다. 한 번 뛰는 거리는 아직도 4키로대이고, 페이스는 6분 초중반 정도, 달리기는 이제 일, 이 주에 한 번 할까 말까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마지막 남은 올해의 달력 두장처럼 올해 달리기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은 이런 때에 맞는 말일 것이다. 11월의 어느 날 아침, 몽롱한 상태에서 일어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술에 취해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머리속이 너무나 어지러워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누워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좀 누워 있으면 괜찮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30분을 누워 있어도 증상은 나아지지를 않았고, 이틀에 걸쳐 몇 군데의 병원에서 수 회의 검진을 통한 끝에 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달팽이관에 이석 가루가 들어가서 전정기관이 원래와 다르게 느끼는 바람에 어지럼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특별한 약도 없고, 그렇다고 수술을 통해 해결되는 병도 아니라고 했다. 이석치환술이라는 처치를 통해 돌가루가 원래 자리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처지는 잘 되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며칠을 가지 못해 재발을 했고, 여러 번의 이석치환술과 한 동안의 휴가를 통해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의사 선생님은 다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와 약해진 몸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때부터 몇 달 간은 조심조심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재발했을 때의 힘듦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기에, 잠자리에 누울 때도 최대한 조심조심하고, 몸을 갑자기 돌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정상 생활을 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달릴 때의 흔들거림이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나만의 판단으로 한 동안 달리기도 쉬었다. 달리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해가 지나가고 어느덧 다음해 봄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한지 2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