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베개 맡에 둔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시간은 6시 20분, 평소보다는 거의 1시간이나 빠른 기상 시간이었다. 옷을 갈아입는 것에 10분, 스트레칭 5분, 달리기 30분, 샤워 10분에 약간의 여유시간을 고려하면, 달리기를 하고 나서도 8시 30분인 보통 때의 출근시간에 집을 출발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제밤에 미리 챙겨둔 옷을 입고, 허리에는 러닝벨트를 둘렀다. 어릴 적 소풍날에 러닝벨트와 비슷하게 생긴 가방을 허리에 둘렀던 기억이 났다. 요즘에는 힙색이라고 한다는 말도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니, 뭔가 어색해보이는 차림의 사람이 서 있었다. 심지어 운동과는 전혀 친하지 않은 모습을 하고서 말이다. 머리에서부터 아래로 스캔을 하면, 배 부분의 티셔츠는 평평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앞으로 불룩 튀어 나와 있었고, 양팔과 양다리는 이와는 반대로 이상하리만큼 앙상해서 어릴 적에 본 ET를 연상케 했다. 심지어 자세가 구부정한 것 같기도 했는데, 이런 모습을 한 사람이 아주 편하게 보이는 옷을 입고 있으니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동네 슈퍼 가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민망함을 남기지 않으려는지 그 날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두고두고 이야기거리가 될 만한 난생 처음의 달리기 날인대도 말이다.
발걸음을 옮겨 집을 나서니 초여름 새벽의 거리는 벌써부터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처럼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으며,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들까지 군데군데 있어서, 나에게는 다소 낯선 새벽 거리의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집 밖을 나온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빨라야 밤 12시가 지나서야 잠이 들고, 그 덕분에 빨라야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는 삶을 몇 년째 살고 있던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다행히 구름이 끼어서 햇살이 느껴지지는 않은, 6월 초의 날씨치고는 그렇게 덥지 않은 날이어서, 첫 시작이 좋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본격적인 달리기에 앞서서 일단 스트레칭을 했다. 어제 퇴근길에 유튜브를 통해 스트레칭을 어떻게 하는지 잠깐 찾아봤었다. 뛰지 않고 한 자리에서 하는 정적 스트레칭이란 것도 있었고, 이것과는 다르게 살짝살짝 뛰면서 하는 동적 스트레칭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동작은 머리 속에서 날아가버린양 기억이 나지 않았고, 결국 한참 전부터 몸에 익어 있던 국민체조를 하고 말았다. 국민체조 시작, 하나둘셋넷. 국민체조 구령을 외치는 익숙한 아저씨의 음성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장기간의 습관이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달리기가 습관이 되어 생각하지 않아도 잘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으니 잠시 무릎을 펴고 접었을 뿐인대 아이고 힘들다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바로 선 자세에서 허리를 굽혀 손가락 끝을 바닥에 닿게 하는 동작에서는 아무리 허리를 굽혀보아도 손이 땅에 닿지 않는 것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이것은 운동이 아니다. 몇 년 동안이나 잠들어 있던 내 근육을 깨우는 의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의 달리기 장소는 집 근처의 양재천으로 정했다. 양재천은 관악산에서 시작해서 과천, 서초, 강남을 지나 탄천으로 합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양재는 우리 동네 과천에서는 꽤나 떨어진 곳인데 왜 이 개울의 이름이 관악천이 아닌 양재천이 되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는 했다. 뭐,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하는 하천의 이름도 태백강이 아니고 한강과 낙동강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니 납득이 될만한 일이었다. 어찌되었건 양재천을 따라 계속 가면 양재동이 나오니, 언젠가 그곳까지 달리는 날이 혹시라도 온다면 나의 달리기 인생은 대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뛸 것인지도 어제밤에 한참을 고민을 했던 것 중의 하나였다. 우선은 내가 마지막으로 달렸던 것이 언제인가를 생각을 해봤다. 그게 언제 였더라하고 한참이나 기억을 더듬어봐야 할 정도로 최근에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중학교 체육 시간에 1500미터 오래달리기를 했던 것이 떠올랐고, 어른이 된 지금은 1500미터보다는 많이 뛰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이후로 달릴 일은 없었고 20대 초반 군대에서 구보를 한 적은 있지만 이거를 운동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했다. 좀 더 생각을 해보니, 몇 년 전에 이미 끝난 일이기는 하지만, 간혹 가던 헬스장에서 티비를 보면서 걷다가 뛰다가를 5km 정도 했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간단한 산수를 거쳐서 1500미터와 5km의 중간 즈음인 3km를 뛰기로 정했다. 일단 5km를 쉬지 않고 뛰는 것을 1차 목표로 도전해보라는 용용이의 말이 생각이 났지만, 5km는 너무나 아득한 거리였기에 이쯤에서 타협하기로 한 것이다. 뭐 3km 정도야 지금도 무리없이 그냥 뛸 수 있겠지라는 약간의 근거없는 자신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집에서 양재천 초입으로 걸어오면서 착용감을 느껴본 아식스 젤카야노 25 러닝화는 마치 예전부터 신어서 길들어진 신발인양 발에 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요즘에 유행한다는 두꺼운 쿠션의 신발과는 달리 쿠션이 얄팍했는데 러닝화는 다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최근의 러닝화 업계는 두꺼운 쿠션으로 무장해서 착지시에 오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신 트렌드라고 하는데, 우리 젤카야노 25는 나온지 몇 년 된 것이라 이런 트렌드와는 다르게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과거의 기술력에 따른 홀쭉한 신발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한참 뒤에나 알게 되었다.
첫 발걸음을 가볍게 떼었다. 드디어 시작이다. ‘이야!! 애들과 자전거 타고 다니던 곳을 내 두 발로 달리기를 하러 나오다니.’ 나의 의지에 감탄을 했다. 정말 오래간만에 하는 운동이었지만, 야외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은 색다른 느낌이었고, 달리기를 하러 나온 사람들과도 꽤 마주치게 되자, 남들과는 달리 일찍 일어나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몸을 소중히 여기는 현대인이라는 착각마저도 들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웬걸...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려야 되는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여기가 헬스장 러닝머신 위라면 지금 얼마의 속도로 뛰는지를 알 수가 있을텐데, 속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지금은 나의 감대로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믿었던 나이키 앱에서도 매 1km를 달릴 때마다 1km 구간의 평균 속도를 알려줄 뿐, 현재 어느 정도의 속도인지를 알려주지는 않는 것이었다. 오늘의 달리기는 단거리달리기가 아니라 오래달리기일테니, 100미터를 달릴 때처럼 전력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천천히 달려야 될텐데, 조금 천천히라는 지점을 찾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일단 걷는 것보다는 빨라야 될 것 같아 조금 천천히 뛰어보니 난생 처음의 어색한 저속도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속도를 높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전력은 아니더라도 일단 빠르게 뛰어보자라는 생각에 발을 빨리 돌려보았다.
그러나 잠시 뒤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후후하고 숨을 쉬는 간격이 빨라졌고, 그것도 큰 소리와 함께 숨을 깊게 들이쉴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으로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쿵쾅쿵광 거리는 심장 소리에 심장이 터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서 온 몸에서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얼굴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만 갔다. 체감상으르 달리기를 시작한지 3~4분 정도는 된 것 같았다. 멈출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달리다가 힘들면 걷고, 괜찮아지면 다시 뛰면 되니까 부담 없이 뛰어’라는 용용이의 말이 귓가를 스쳐갔다.
뛰는 것을 멈췄다. 잠시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달렸나 뒤를 돌아보니 많이 쳐줘야 이삼백미터 남짓인 것 같았다. 자전거로 자주 다니던 곳이기에 대략적인 거리감은 있어서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3~4분이 아니라 1~2분도 채 못 뛰었을 정도의 거리였다. 자전거 페달을 몇 번 구르면 가는 거리인데, 내가 이것 밖에 못 뛰는 것이라고?? 몇 년 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다녔던 헬스장에서는 시속 9키로로 10분은 뛸 수 있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 이렇게 달라진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목표한 3키로 완주는 당연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삼백미터 달리기가 힘들 정도였다니...
이렇게 생각을 하는 동안 호흡이 진정되었고, 심장이 조금씩 천천히 뛰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목표로 한 3키로를 채우려면 아직 한 참이나 더 달려야되니 다시 뛰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보기 좋게 더 망해버렸다. 이번에는 삼백미터는 커녕 이백미터도 못 가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시 호흡이 가빠지고, 힘이 들어 계속 뛸 수가 없었다. ‘나를 추월해가는 러너들은 숨도 허덕이지 않으면서 저 앞선 지점까지 잘만 뛰어가는데 나는 왜 이런가?’ 이유를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짧은 다리와 보기 좋게 나온 배를 희생양으로 삼으면 될 것 같았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역시나 이번에도 조금만 뛰어도 호흡과 심장이 계속해서 구조신호를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한 번 멈춰서 쉴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도, 조금 달리다가 멈춰서고, 쉬었다가 다시 뛰고, 멈췄다가 다시 달리는 것을 계속했고, 이렇게 몇 차례나 뛰는 것과 쉬는 것을 반복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목표로 했던 1.5키로 지점의 반환점은 1.5키로가 아니라 15키로는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달리다 쉬었다 사이를 한참이나 반복한 끝에 간신히 출발장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드디어 나이키앱의 운동종료 버튼을 눌렀다. 듣기 좋은 아나운서 톤의 목소리가 오늘의 운동결과를 알려주었다. 총 주행거리는 3.4킬로미터, 평균페이스는 7분 11초입니다. 나의 첫 달리기 기록이다. 잘 달렸는지 아닌지 가늠은 안 되었지만, 첫 달리기를 마쳤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