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말이야,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살이 5키로나 빠졌어." 내 삶에 달리기가 끼어든 것은 용용이와 함께한 어느 날 점심 무렵이었다. 같은 회사를 다니다 작년에 회사를 옮긴 용용이가 얼굴 한 번 보자는 연락을 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뭔가를 먹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취미로 대화가 옮겨졌다. 문든 용용이가 달리기에 대한 얘기를 꺼낸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13년 차 변호사, 초등학교를 다니는 남자 아이 2명의 아빠. 주중에는 일로 바쁘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에 바쁜 나와는 달리, 아직 아이를 가지지 않은 용용이는 이것저것 재미난 취미생활을 많이 하고 있었다.
"이제 살려면 운동해야지.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 언제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해 초에 시작된 코로나는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던 무렵이었다. 내 말에 용용이는 뜻밖의 말을 했다. “최근에 달리기 하고 있거든. 헬스장 말고 밖에서 말이야. 살이 쑥쑥 빠지는데 너도 한 번 해봐.” 가끔씩 야외에서 러닝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밖에서 뛴다는 사람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어서 용용이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좌우로 스크롤하더니 앱을 하나 클릭했다. 앱을 실행하자, 화면에는 지도 비슷하게 생긴 것이 하나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앱의 이름은 ‘나이키 런클럽’이었다. 뭔가가 움직인 궤적을 나타내는 것 같은, 길게 이어진 선이 지도 위에 여러 색깔로 표시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2km, 3km와 같은 거리도 적혀 있었다. 지도 말고도 여러 가지 숫자들도 같이 확인할 수 있었는데, 내가 본 것은 ‘일요일 오전 러닝, 8km, 평균 페이스 6분 30초’, 시간 50분, 칼로리 얼마’ 등이었다. 용용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거는 달리기 할 때 사용하는 앱인데, 달리기를 시작할 때 시작버튼을 누르고, 마친 뒤에 종료버튼을 누르면, 내가 달린 거리가 몇 키로인지, 속도는 어느 정도로 빠른지, 페이스는 얼마인지 등을 알려줘.” 나머지는 대충 아는 말인데, 페이스가 뭔지를 몰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페이스 말이지?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리면 시속 9키로, 10키로 이렇게 화면에 표시되잖아? 달리기하는 이쪽 사람들 사이에서는 시속 몇 키로라고하는 대신에 1km를 달렸을 때 몇 분이 걸리냐를 속도의 기준으로 삼더라고. 그게 바로 페이스야. 여기에 6분 30초라고 되어 있으니, 1km 달렸을 때 6분 30초 걸렸다는 얘기고, 그러니까 속도로 바꿔보면 시속 9키로 정도 되겠네. 6분 페이스면 딱 시속 10키로거든.”
드디어 이해를 했다. 용용이의 손이 앱 속의 화면을 왔다갔다하자 더 많은 숫자와 기록 같은 것들이 보였고, 용용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앱을 사용하면 좋은 게 말이야, 그 동안 달렸던 모든 기록이 저장이 되거든. 여기 봐봐. 지난 번에는 5키로를 달렸고 한 달 전에는 7분 이었고, 이런 것들 보이지? 이런 기록들 말이야. 이걸 보면 내 달리기 실력이 좋아지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정도로 뛰는지를 알 수 있고, 그걸 바탕으로 앞으로는 어떻게 달려야겠다는 계획도 세울 수 있어.” 앱속의 화면을 얼핏 봐도 용용이는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달리는 것 같았다.
"살이 빠지는 것도 좋기는 한데, 무엇보다 생활에 활력이 생겼어." 활력이라. 오랫동안 잊고 있던 말이라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사전을 찾아봐야 될지도 모를 단어였다. 무기력한 생활 속에서 활기를 잊어가는 나에게 용용이의 말은 단비와 같았다.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무언가 몸을 움직이는 취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어쩌면 달리기가 나에게 맞는 취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달리기가 좋은 게 또 뭐냐 하면 돈이 별로 안 든단 말이야. 이게 골프였어봐. 골프채에 옷에 신발에, 거기에 레슨비도 추가되잖냐. 요즘 그린피는 또 오죽 비싸냐. 돈도 돈인데 요즘에는 골프장 부킹은 좀 어려워야지. 그에 비하면 달리기는 거져야. 동네 공원이나 한강에서 달리는데 누가 돈 달라고 하냐? 신발도 하나 사면 한참을 신어. 너 운동화는 하나 있을 거잖아. 집에 굴러다니는 운동화 있을 테니까 그거 신어도 되고, 아니면 이 참에 러닝화 하나 사자. 얼마 안 하거든. 장비가 좀 갖춰져야 운동하는 맛이 나지 않겠어?” 신이 난 용용이는 신발은 뭐를 사고, 앱은 이렇게 사용하면 되고 등 초보자에게 이것저것 정보를 나누어 주었고, 듣기만 하던 나는 어느덧 용용이가 알려주는 것들을 하나하나 핸드폰의 메모장에 기록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의지라는 것이 갑자기 샘솟았다. 어릴 적부터 운동에는 소질이 없던 나였지만 가끔씩 운동이 하고 싶어 질 때가 있었다. 포핸드, 백핸드를 배운 이후, 서브 넣는 방법을 배우다 그만둔 테니스 이후로 4년 만의 일이다.
그 날 오후 용용이가 알려준 브랜드의 런닝화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아식스에서 나온 젤카야노라는 신발이었는데, 아식스라는 말에 고개가 약간 갸우뚱하기는 했다. 신발은 모름지기 나이키나 아디다스 아닌가. 그런데 아식스라니. 들어본 적은 있지만 신어본 적은 없는 아식스를 산다는 것이 모험인 것 같기도 했지만, 달리기 신발은 아식스가 좋다는 용용이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미리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아식스 젤카야노 런닝화의 결제 버튼을 누른 것은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였다. 내 인생 처음으로 런닝화를 주문한 것이다. 돌리기에는 늦었다. 이제 달리기를 시작하는 수밖에.
‘주문하신 상품이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며칠 뒤 이른 저녁 무렵 카톡이 하나 왔다. 그저께 주문했던 런닝화가 집에 잘 도착했다는 택배업체의 반가운 연락이었다. 사실 용용이를 만났던 날 저녁 시간에 용용이가 추천해준 아식스 런닝화를 사러 잠시 신발 매장도 둘러보았다. 용용이는 인터넷으로 사는 것이 싸다고 했지만, 그래도 신발은 신어보고 사야된다는 내 고집 때문에 길을 나선 것이었다. 회사 근처에 있는 평일 저녁 시간의 신발 매장은 조용했고, 종업원이 찾아준 바로 그 신발은 보기에도 좋았고 신어보니 편하기까지 했다.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그 신발을 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16만 원이라는 가격이 문제였다. 잠시 고민을 하다 매장을 나왔다. 동시에 인터넷에서 같은 상품을 찾아보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이거 좀 비싼데라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반응이었다. 근래에 아울렛에서만 신발을 샀던 내 머리속에는 아울렛에서 봤던 10만원 미만의 운동화 가격이 생각이 났다. 그렇지 않은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내 마음에서 정한 가격의 상한선을 넘지 말라는 신호가 강하게 오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문든 그 동안의 나의 운동 경력이 떠올랐다. 좋아해 본 운동이 없음은 당연하고, 잠시 관심을 가졌었지만 언제나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수영, 테니스, 자전거가 생각이 났다. 달리기 역시 이들과 같이 스쳐 지나가는 운동 인연 중의 하나일 확률이 아주 커 보였다. 더구나 안 신는 러닝화가 오랫동안 신발장에 있다는 것을 아내가 발견하게 되면,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다는 명목 하에 소리소문 없이 당근으로 사라질 것이 뻔했기에 정상가로 신발을 사는 것은 일종의 모험임이 뻔했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같은 모델명의 철 지난 아식스 러닝화를 8만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당장 주문을 했다. 발에 맞지 않으면 내가 맞춰서 신어야 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격이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었다. 아차, 운동한 시간은 핸드폰앱이 측정을 해준다고 하니, 달리는 동안 핸드폰을 넣어 둘 러닝벨트도 있어야 된다고 용용이가 얘기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날 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러닝벨트도 함께 주문을 했다.
신발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카톡을 받고 나서는 마음이 급해졌다. 신발이 왔으면 오늘 당장 운동을 개시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아 있는 업무를 빨리 마무리하고 퇴근하면 저녁에 30분은 뛸 수는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초보자가 쉬지 않고 30분을 한 번에 뛸 수는 없다는, 지금은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을 안타깝게도 그 때는 몰랐었다. 그 날 저녁 후다닥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는 러닝 관련 영상을 뒤져 보았다. 용용이에게 대략적인 설명은 들었지만, 호흡은 어떻게 하는지, 자세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용기 있게 일단 부딪혀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그 반대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예상되는 점들을 미리 생각하서 진행하는 편이다. 전자의 사람들은 일단 시도해보고 부족한 것을 발견하면 그때그때 메꾸는 실천 지향적인 사람들인데, 반대로 나는 뭔가를 미리 최대한 파악하고 나서야 실천에 옮기는 안정 지향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미리 머리로 알게 된 것과 나중에 실제로 행동에 옮겼을 때 겪는 일은 언제나 차이가 있게 마련이어서, 내가 택하는 방법은 들인 시간 대비 효율은 낮고, 재미는 없는 방법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잘하지 못할 것처럼 생각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렇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았다. 혹시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미리 핑계거리를 찾으려는 방어적인 행동에서 나오는 건지도 몰랐다. 달리기에 대한 예감이 좋지는 않았다. 제발 아니기를 바랬다.
더구나 달리기를 시작하겠다고 아내에게 호언장담을 한 며칠 전, 무릎 나가지 않게 조심하라는 충고까지 들은 마당에,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구나, 발 가운데로 착지하면 되는데 이거를 미들풋이라고 하는구나. 호흡은 다양하게 하면 되는데,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하니 나는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뱉는 것으로 해야겠다. 오케이, 퇴근길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튜브를 보면서 이론은 대략 완성했다.
서둘러 집에 도착했다. 시계는 이미 밤 10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최근 몇 주 중에는 퇴근이 빠른 날 중의 하나였다. 거실 구석에 놓여 있던 택배박스를 조심스럽게 풀어 헤치니 그 안에 나의 젤카야노 러닝화가 영롱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회색, 검정색의 무채색 계열 신발만 신다가 파란색이 곳곳에 과감하게 새겨진 신발을 보니 화려한 신발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다. 신발을 꺼내 보았다. 멀쩡하네, 이걸 이월상품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어? 다행히도 주문한 신발은 발에 잘 맞았고, 이것만 신으면 당장 풀코스 마라톤이라도 뛰겠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꼭 맘에 들었다. 내 생애 처음의 러닝화라 그럴 것이다. 자, 이제 신발은 됐고, 이제 옷은 뭘 입을까나. 뭔가 통풍이 되는 옷이 필요해보였다. 몇 해 전 테니스를 배울 때 입었던 반바지를 입기로 하고, 이곳저곳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철 지난 옷을 넣어두는 겹겹이 쌓인 보관함을 한참이나 뒤진 이후에야 그 반바지를 올 해 초 이사하면서 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동안 입지 않았던 옷을 정리를 했었는데, 그 선택이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옷 찾느라 꽤 시간을 쏟다 보니 시계는 밤 11시가 넘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부터 운동을 30분 동안 하고, 끝나고는 샤워까지 하고 나서 바삐 뛰었던 가슴을 가라앉히고 잠을 청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 오늘은 아니다. 차라리 지금 바로 자고, 대신에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난생 처음의 달리기 데뷔를 하기로 금새 마음을 바꿨다. 아니다 싶으면 금방 다른 것을 찾는 것이 내 특기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오늘도 그 특기가 스리슬쩍 튀어 나온 것이었다. 옷장을 더 뒤져서 편해 보이는 반바지와 동네에서 어슬렁거릴 때 입는 반팔 티셔츠, 그리고 양말 하나를 골라 놓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면 100%라고 적힌 반바지, 통기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역시 면 100%의 non-기능성 티셔츠, 양말 역시 스포츠 양말은 없어서 서랍장을 뒤적이다 손에 잡힌 회색 정장 양말을 신기로 한 것이었다. 한참 지난 지금에서 보면, 기능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정말 초보다운 선택으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모범사례에 해당할 정도였다. 운동 중에 생기는 땀을 방출하는 대신 족족 흡수해버려서 금새 축축하고 무거워지는 면 100% 티셔츠, 벨트를 하지 않으면 흘러내리는 운동용이 아닌 일상용도의, 그것도 무릎을 살짝 덮는 애매한 길이의 역시나 면 100%로 된 반바지, 종아리 절반 위로 올라오는 정장용 회색 양말, 거기에 출고된지 2년이 지나 대폭 할인가로 구입한 아식스 젤카야노25, 이렇게 뭔가 어울리지 않는 복장으로 내일 나의 인생 첫달리기를 하게 되리라는 것은 용용이를 만났을 때만 해도 상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