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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odok Jun 08. 2022

교수님에게 드리는 편지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14

서사 창작 특강시간이다.  

수업 전에 각자가 직접 쓴 서사 형식의 글을 사전 제출했다. 수업 진행 방식은 제출된 글을 복사해서 학생들이 읽고 각자가 받은 느낌을 발언하는 식이다. 원고에 특별한 기준은 없기에 제출 형식은 다양했다. 원고량은 A4용지 한 장부터 최고 11장까지 있었다. 장르 형식은 소설뿐만 아니고, 웹소설이나 시나리오도 있고 시놉시스 형태도 있었다.


수업 시작 전부터 강의실 안은 긴장감이 팽배했다. 창밖에서는 몇 년 만의 축제라고 스피커 소리가 방방 날아다니는데, 특강이 진행되는 강의실은 축제와 무관한 듯 창문을 꽁꽁 닫고 별세계다.


작품 제출 순서대로 학생들이 먼저 돌아가면서 감평을 하고, 담당교수가 최종 평가와 문제점 지적 그리고 작품 개선방향을 제시한다. 감평이란 것이 참 애매하다. 처음엔 서로 체면 살려가면서 살살 이야기하자고 묵언의 약속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교수님의 부추김과 학생들의 열의가 더해지면 후끈 달아오른다.

앞선 감평에서 학우들의 소설을 무지 까댄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본의 아니게 너무 세게 발언이 나간 것 같았다. 미안했다. 수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표현을 해도 상대의 감정선까지 건드리면 안 되는데 수양 부족이다. 그뿐만 아니다. 다다음 순서가 내가 제출한 작품인데 내 글에 악감정을 실을까도 은근히 걱정이 됐다. 수업 중에 슬그머니 문자를 보냈다.

"본의 아니게 씹어서 미안해요"

바로 답장이 왔다.

"칭찬받으려고 제출한 글이 아니고 문제점을 찾으려고 하는 시간이니까 괜찮아요."

아량이 넓은 답장이 왔지만 은근히 걱정이 됐다. 아직 내 차례가 남았는데 급 후회가 밀려온다. 연습용 습작이니까 배운다는 자세로 쓴 글들이다. 따라서 아무리 분투해도 허점투성이 일 것이다. 아직 배우는 학생들 습작품이라  읽으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눈에 더 잘 들어올 것이다. 단점은 백주대낮같이 훤하게 노출되어있고, 장점은 캄캄한 한밤중에 미로 찾기처럼 숨겨져 있을 것이다. 작품평을 할 때 단점 3-4가지에 장점 1-2가지를 포함시키고 싶은데도, 매번 단점은 눈에 팍팍 잘 띄는데 장점은 찾을래도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문학 초보들에게 장점 찾기는 어려운 분야다. 평가자 본인이 일정한 문학적 역량이 없는 상태에서는 장점 찾아내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숨겨져 있는 장점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다면 이미 기성작가 수준일 것이다.


옛말에 '그림을 그릴 줄은 몰라도 볼 줄은 안다'라고 하지 않는가, 다들 완성도 있는 글쓰기는 아직 미흡할지 몰라도 문학 지망생답게 읽을 줄은 아는 것이다. 물론 '약은 입에 쓰다'라고 당연히 듣기 좋은 미사여구보다는 단점을 콱콱 집어주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 될 것이다. 그런 마음을 당연히 먹고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분신이 낭자하게 피 흘리며 일방적으로 깨지고 문장이 삭제당하고 있으면 얼굴은 화끈거리고 속은 뒤틀릴 것이다. 아무리 수업용 습작이라고 할지라도 일방적인 핀찬을 받으면 속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쓴 소설 차례다. 중편을 겨냥해서 일단 A4용지 11장으로 써서 제출했었다. 다양한 변주로 탐색의 의미가 강한 글이다.  드디어 평가가 시작된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완전히 두 패로 갈린다.

"좋은 작품이다. 감동적이다."        

"뭔 소릴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중구난방이다." 

귀를 최대한 쫑긋 세우고 학우들의 평가를 받아 적었다. 그러나 같은 문장이나 글을 놓고  매번 두 가지 해석이 대립하니 무슨 소리를 더 귀담아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글의 방향을 못 찾아서 어디를 어떻게 첨삭해야 하는지 답답했는데 더 난감하다.  


교수님이 최종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간략하게 "장편으로 쓰시면 좋겠네요"였다.

장편? 중편도 못써서 쩔쩔매는 놈에게 '장편으로' 쓰라니..... 일단 작품 방향성이나 글을 끌고 가는 힘은 괜찮았다는 평가라는 아전인수식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 안에 다른 학생 작품도 평가해야 하는데, 내 작품을 놓고 질문을 계속할 수도 없고 답답했다. 수업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뒤숭숭하다.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


교수님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불쑥 편지를 드려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지난 특강시간에 제가 과제로 제출한 소설(A4 약 11면 정도 분량)에 대해 궁금한 부분과 함께 지도를 받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편지드리게 됐습니다. 그날 합평 시 여러 학우님들에게 비평과 칭찬을 교차로 듣다 보니 혼란한 머릿속이 아직도 정리가 안되고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질의를 하고 싶어도 다음 순서가 있기에 꾹꾹 눌렀습니다. 다음 주 중으로 한 30분 정도 시간을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면 지도를 받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미리 서면으로 몇 가지 사전 질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1) 먼저 변명부터 하겠습니다. 프롤로그라는 형식을 채택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나쁜 아버지라고 매도를 하지만 부자간의 혈육은 이어지기에 그에 대한 자식 된 도리로서 용서와 사과를 드리는 측면으로 썼습니다. 물론 소설적 언어가 아니다. 또는 소설 내용과 맞지 않는다는 학우들의 평가가 있었습니다만 저는 역설적으로 소설적 이미지와 결합한다고 봤습니다. 모든 인간은 한 면만 가지고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따라서 나쁜 아버지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변호를 하고 싶었습니다. 본문으로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하나의 변명 공간을 별도로 주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변명하는 공간 그리고 읽는 독자들에게는 "아버지와의 불화 이야긴가?" 하는 느낌으로 읽다가, 본문에서 이율배반적 충격을 받고 다시금 프롤로그를 읽도록 하겠다는 나름의 방안으로 썼습니다. '프롤로그'라는 용어가 어색하다면 다른 적합한 단어는 뭐가 있을는지요? 또 제가 사용한 기법은 잘못된 것인지요? 중 단편소설을 쓰면서 '프롤로그'를 나만의 소설 형식의 하나로 매번 집어넣을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본문과 동 떨어진 듯하면서도 뭔가 상호 보완적인 인트로를 별도 단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어떨는지요?


2) 일부 합평하시는 학우님들이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시기인 경우에 '국민학교'가 적절한 표현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저도 글을 쓰면서 '초등학교'냐 '국민학교'냐 그 문제로 고민했었습니다만 역사물이 아닌 바에야 요즘 공식 호칭인 '초등학교'가 맞다고 보았습니다만 아직도 판단을 못하겠습니다.   

3) 소설과 수필의 차이가 무엇인지요? 제가 제출한 글이 수필에 가깝나요? 그날 일부 학생이 수필 같다고 이야기한 부분이 신경 쓰입니다. 심지어 '일기 쓰냐'라고 혹평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4) 사용하는 문체는 어떤가요? 저는 진지한 것을 일부러 외면하고자 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너무 무거운 주제인데 거기다가 더해서 진중한 문체를 쓰면 글이 우울해지고 딱딱해질까 봐서 의도적으로 문체를 가볍게 가고자 했습니다. 이런 문체는 저만의 문체로 가져가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쓰는 모든 글을 내용은 진지하지만 문체는 가볍게 가고자 하는데 제 문체의 방향성이 맞는 건가요? 그날 일부 학생이 "이야기는 심각한데 문체가 가벼워서 집중이 안된다"라고 한 이야기가 신경 쓰이네요.


5)  '비유적 표현이 많지 않으냐'라는 지적도 일부에서 있었습니다. 소설에서 내용과 묘사의 비례를 어느 정도 맞춰서 가야 하는지요, 제 글에서 이야기와 묘사에 대한 물리적 비례가 적당한지요 아니면 더 넣어도 되는지 아니면 좀 줄여야 하는지, 그 기준은 어디다가 둬야 하는지요?  

6) 교수님께서 짧은 제 글을 읽으시고 장편으로 바꿔 쓰라고 말씀하시는데 감사드립니다. 소설적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구나 혼자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만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잡고 장편에 도전해야 하는지 쉽게 감이 오지 않습니다. 장편으로 갈 경우 전편을 통해 뭔가 관통하는 주제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이 뭐가 되어야 할는지 쉽게 감이 오지 않습니다. 아니면 토막 사건(단편)을 이어 붙여놓은 형국이 될 텐데 아니면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연작 형태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순수 장편으로 끌고 갈 내 안의 무기는 무엇인지요?


7) 기 제출한 과제 소설은 화자가 독자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1인칭 시각으로만 이끌어가도 될는지요. 아니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갔다가 1인칭 시각으로 갔다가 왔다 갔다 해도 될는지요. 막상 한다면 유의점은 무엇인지요?

8) 지난번 소설에서 '시간의 시점이 왔다 갔다 해서 불편하다'라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연대기 형태의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하는지요.  제 개인적 견해는 그런 식으로 하면 너무 답답할 것 같고 글을 쓰는데 제약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한 사건을 가지고 글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고 장편이라면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였다가 사라지는데, 시 공간적 순서는 화자가 임의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견해입니다. 특히 글을 생동감 있게 쓰기 위해서는 단락의 구성은 시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고  작가가 임의로 시공을 앞 뒤로 넘나들면서  쓸 수 있어야 하지 않냐는 견해입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9) 상당수 학우들이 제 글 속의 성 문제, 젠더 문제에 대해 불편해하더군요. 매우 짧은 두세 줄인데도 그런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젠더 문제는 저도 글쓰기 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의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저급스럽게 통용되는 현실이기에 소설 구성상 집어넣은 것인데 빼거나 완곡하게 가야 하나요. 이번 제출한 과제 소설에서는 부각할 개연성이 적어서 그 부분을 가볍게 짧게 터치하고 넘어갔습니다만 다음 작품에서는 그 부분을 "노르웨이의 숲"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 수위를 높여갈 생각이었습니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다음 구상하는 작품은 '방황하는 35세가량의 성년 이야기'니까 성애 문제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수위나 표현방법에 대해 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나 학우들의 반발이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중을 겨냥한 소설을 쓰고자 하는 제 입장에서는 내 안의 검열을 하나 더 하려니 좀 답답합니다. 그리고 좋은 배움의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합니다. 그런 표현이나 묘사는 스스로 독학해야 하는 건가요? 대다수 문학작품에서 표현되는 '성애'부분에 대해 문학적 차원, 학구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별도 수업이 '특강'형태로 존재했으면 합니다. 요즘에는 10대 이전에도 성교육을 시키는 마당에 성애 부분을 노코멘트하거나 외면하는 문학수업이라니 뭔가 한참 아쉬웠습니다.          


10) 그날 합평에서 어느 학우분께서 제 '소설이 클라이맥스가 없고 지리멸렬이다'라고 표현하던데, 제 견해는 한 이야기만 가지고 승부하는 단편이 아닐진대 중편 이상을 겨냥하게 되면 클라이맥스를 한 군데 둘 수 없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항변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주인공인 화자가 이순신 장군같이 장렬하게 전사하는 게 아닐진대 앞으로 쓸 1인칭 장편소설에서는 어떻게 클라이맥스를 둬야 할까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1인칭 소설이 될 텐데 실용서가 판치는 세상에서 어느 무명 씨의 이야기가 먹일까요? 독자들에게 먹히게 쓸려면 기 제출한 소설 구조에서 장편 소설로 전환 시 어디다가 힘을 주어야 할까요?  


교수님의 지도를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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