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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pectum Sep 15. 2021

2021.09.15

쓰고 싶었지만, 쓰기 싫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쓴다.

1. 

 최근까지만 해도 난 아이폰 유저였다. 하지만 최근보다도 더 근래에는 갤럭시 Z플립 3으로 바꾸었다. 넓어진 커버 디스플레이의 높아진 활용도와 방수, 기본 앱에서 광고 제거, 접었을 때의 휴대성 등등의 이유들 때문이었는데 상당히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바 형태의 스마트폰을 썼을 때에는 알림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큰 화면을 켰어야 했지만 지금의 스마트폰에서는 커버 디스플레이에서 간략하게 확인할 것들은 빠르게 넘어가고 간단한 동작들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저런 앱들을 아무 일도 없으면서 켜보는 모바일 중독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느낌도 든다. 버즈 2에 대한 만족도도 상당히 높고 디자인도 훌륭해서 사실 아이폰을 쓸 때보다 더 좋다. (Face ID가 아닌 지문인식을 쓸 수 있다는 점도 더해서 말이다.)

 나는 사전예약을 통해 구매하여 굉장히 빨리 Z플립 3을 수령할 수 있었는데, 직장 동료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서 같이 구경하며 놀라워하고 부러워해줬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이 가장 신기해하고 감탄했던 기능이 Z플립 3을 펴서 전화를 받고 접어서 전화를 끊는 기능이었다는 점이다. 일부러 전화를 걸고서 펴서 받고 접어서 끊는 모습을 보면서 '와 저게 되는구나!' 하면서 연신 감동하는 장면은 나에게 있어 올해 하반기 최고로 신기하고 즐거웠던 순간이다. 

 문득 처음부터 바 형태의 스마트폰을 썼던 연령대에게는 이 기능이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했다. 아마 시큰둥하고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버튼을 누르면 되는걸 굳이?' 하면서 공감을 못하는 데에 더해서 '어른들이란...' 하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2.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창현 글/유희 그림)이라는 만화를 정말 좋아한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손에 쥐고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활자를 좋아하고 책을 즐겨 읽는 이들의 생각과 감정, 은근한 허세들을 기분 좋게 그려나갔다는 점과 캐릭터들의 엉뚱함, 그보다 더 엉뚱한 전개는 나의 취향에 딱 맞았다. 근처에 도서관이 없으면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니 당장 이사를 가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 저)에 등장한, 정말 마르고 닳도록 인용되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정말 재미있었다. 하지만 떠올려보면 가장 생각나는 글과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첫 부분에 인용된 [책과 세계](강유원 저)의 글이다. 


...

"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 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을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얼룩말처럼 살다가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겨서 잠든다.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자기반성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지금까지의 얼룩말 잡아먹기를 반성하고 

남은 생을 풀만 뜯어먹으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 것처럼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르게 다시 떠올리면 참 아픈 문장이다. 수많은 책들을 읽고 쓰는 작가들은 얼마나 삶에 탈이 있었을까. 그 책들을 읽으면서 생긴 생각들이 너무 쌓여버려서 머리에 베고 잠들지 못하는 독자들은 얼마나 아픈가.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읽고자 하는 나는 자신조차도 모르게 아파하고 있는 것일까. 

 한동안 책이 없으면 살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왜 그랬을지 돌이켜보니 삶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요한 활자로 박혀 있는 책 속은 관념은 있지만 실체는 없어서 나에게 물리력을 가하지는 못하는, 몰입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곳이었다. 책에서 눈을 떼면 마주하는 이 세계는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 벅찼다. 당장의 나 자신과 상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희망을 찾으려고 하면 '왜? 어차피 다 거지 같은데.' 하고 골목길에서 수많은 막막함이 전조등을 끈 채로 전속력으로 달려와 나를 치고 지나갔었다. 

 지금은 어떤가. 다행히 그 감정들을 많이 떠나보냈다. 흔적이 남아 여전히 괴로울 때가 많지만 이 또한 실체가 없음을 자신에게 설득하며 다독일 수 있는 단계까지는 왔다. 그 때문일까, 난 전보다 책을 훨씬 덜 읽고 있다. [책과 세계]에서 나온 저 문장에 따르면 난 더 이상 위장이 탈이 난 사자가 아니라 슬슬 본성에 맞는 식욕이 돌기 시작하는 사자일지도 모르겠다. 병든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좋은 게 아닐까? 그런데 왜 이리도 조바심이 들고 마음에 썩 들지는 않는 걸까. 

 아마 당시의 나는 한심하게도 싫었지만 책을 읽었던 나는 그리워하게 되는 듯싶다. 쏙 패인 볼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무언가를 잡아먹듯이 읽던 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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