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딸공 Aug 24. 2020

따지고 들면 사기결혼이었다.

[일일딸공] 못다한 엄마의 이야기 

엄마는 아빠랑 어떻게 만났어?      


 서울 사람 엄마와 경상도 토막이 아빠는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차, 버스를 운전하는 아빠가 자랑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을 놓고 잰다면, 어린 내 눈에도 엄마가 한참 아까웠다. 미스코리아 방송을 보면서 우아한 걸음과 반짝이는 미소를 연습하던 나는, 나중에 크면 내가 미스코리아가 될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나는, 내 부모의 러브스토리 정도는 알아둬야 했다.      


음.. 서울에서 부산가는 기차 안에서 만났어. 부산 이모 있잖아. 이모네 집에 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군인이었던 아빠가 옆 자리에 앉은 거야. 어쩌다보니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연락처를 주고받고, 그렇게 만났어.     


 부산으로 시집간 언니네 집에 가려고 기차를 탔다가 우연히 앉은 옆자리 군인과의 만남이라니! 미스코리아가 될 내 부모의 러브스토리로 전혀 손색없는 이야기였다. 한참 공주 드레스와 미스코리아에 빠져있던 예닐곱 살의 나는, 엄마의 이야기가 만족스러웠다.      

 

 막내 동생의 재혼처를 소개한 게 고모였다는 사실을 안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동사무소 서기한테 몇푼 쥐어주고 흔적까지 깔끔하게 지워, 초혼처럼 보이려 했다는 것도. 따지고 들면 사기 결혼이었다. 그래도 멀리 시집가는 막내딸에게 제일 비싼 나비 자개장을 사서 용달차에 실어줬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강조하며 전한 건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용달차에 실어 보낸 나비 자개장의 상판이 고속도로에서 날아가 버려, 엄마 모르게 급히 포항에서 비슷한 걸 찾아 맞췄다고 했다. 결혼 후 며칠이 지나서야, 자개장이 짝짝이인 걸 깨달았다고. 우리집 나비 자개장의 상판과 하판이 아주 조금 다르다는 걸, 나 또한 그 얘길 듣고서야 깨달았다.      

 

 어릴 적 엄마가 해준 이야기의 꽤 많은 부분은 거짓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만남도,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도.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너무 어렸고,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너무 컸다. 현실에 상상을 더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운 삶이 있다는 걸, 엄마를 통해 이해했다.      


지금 밖에 나가시면 바로 택시 못 타시겠죠? 길에서 요쿠르트라도 하나 드셔야지, 목이 말라서 절대 못 걸으실 겁니다. 계속 목이 마르고, 물을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죠? 지금 그 혈당이면 그게 당연합니다.      


 자꾸 목이 마르고 이유 없이 살이 빠지던 날, 참다 참다 찾아간 대구의 한 병원에서 엄마가 들은 병명은 ‘당뇨’였다. 부잣집에 입양이 되어서도 진한 피를 지울 수는 없었던 건지, 어른이 된 막내 외삼촌과 엄마가 나란히 받아든 것은, 가족력이 강하다는 당뇨 판정.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현미밥만 먹는 사람이었다. 요즘에야 건강의 이유로 GI 낮은 식품을 찾아먹는 게 유행이라지만, 그 시절 당뇨는 그야말로 배불러 생기는 병이랬던가. 부족한 정보와 어설픈 편견으로, 엄마는 두 번 울어야 했다. 






이전 01화 내 이름은 김딸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