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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공 Aug 25. 2020

시절도 엄마도, 봄날이었다.

[일일딸공] 못다한 엄마의 이야기 

 포항으로 시집온 엄마가 어떤 계기로 대구에 온 건지는 알지 못한다. 줄곧 지입 버스를 운전했던 아빠였으니 직장을 따라 대구에 왔다기보다 대구에 와서 직장을 새로 구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테니까. 아빠가 지입으로 운영하는 낡은 중고 버스 두어 대는 주중엔 통근버스가 되고 주말엔 관광버스가 되었다. 내 기억이 닿지 않는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엔 탱크로리라고 불리는 유조차도 몰았다 했다. 일본에서 직수입한 차라 운전석이 반대에 있었고, 그래서 고속도로를 지날 땐 두 살 위 오빠를 조수처럼 태우고 다니며 ‘논공 하나요!’를 외치게 했다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족했던, 호시절이었다.      


 내가 백일 남짓한 갓난쟁이일 때, 큰 나무 대문이 있는 이층집으로 이사를 했다. 연갈색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에 사과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사과나무 너머 일곱 개의 계단을 오르면 현관문이 있는, TV에 나올법한 집이었다. 엄마는 그 집 마당을 꼭 ‘정원’이라고 불렀는데, 방학 숙제로 질경이나 민들레 같은 풀을 뜯어 식물채집표본 같은 걸 만들어 갈 때도 채집장소에 꼭 ‘정원’이라고 적었던 걸 보면, 나도 그 단어를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마당 있는 집보단 정원이 있는 집이 더 부잣집 같잖아. 대체 둘이 뭔 차이냐고 굳이 따진다면, 왠지 마당엔 상추가 자라고 정원엔 장미가 자랄 것 같은 차이랄까. 마당 한복판에 자리 잡은 사과나무에서 자라는 열매는 사실 먹지 못하는 꽃사과였는데, 엄마는 매년 가을 꽃사과주를 담그며 사과나무의 존재 가치를 끌어 올리곤 했다. 술을 담그기 위해 사과를 따는 게 아니라, 사과의 가치로운 소모를 위해 술을 담그는 느낌이랄까.     


 정원을 기준으로 일곱 계단 위에 집이 지어진 탓에 아래로 세 계단만 내려가면 지하실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한여름에도 새카맣고 서늘하고 눅눅한 공기가 짐승처럼 뭉쳐있던 이곳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하실이라는 음침한 이름 대신 ‘차고’라고 소리 내어 부르면 우리 집이 좀더 부잣집처럼 보였기 때문에, 친구들이 놀러 올 때면 또박또박하게 소리 내어 ‘차고’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이곳을 소개하기도 했다. 뭐, 아빠가 처음으로 버스가 아닌 차를 중고로 사던 날부터 지하실에 셔터를 열고 차를 집어 넣었으니까,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버스 기사였지만 지입이어서 사람들은 아빠를 사장님이라 불렀다. 김사장이란 호칭은, 우리가 살던 큰 나무 대문의 이층 양옥집과 매우 잘 어울렸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이상적인 4인 가족. 시절도 엄마도, 그저 따사로운, 봄날이었다.      


1983년, 나무대문집의 우리 
젊은 날의 엄마. 무언가에 삐진 오빠. 1984년. 봄. 
따사로운 시절, 싱그러운 엄마가 살던, 효목동 나무대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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