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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공 Sep 13. 2020

삐딱함은, 상수였다.

농촌유학이야기


Y는 늘 삐딱했다. 쌍수 붓기가 채 빠지지 않은 눈으로도 망설임 없이 사람을 불편하게 바라봤다. 그렇다고 나한테 나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쌤!하고 와서 몸을 배배 꼬며 요구사항을 얘기할 땐, 뜻밖에 애교도 있네, 당황하곤 했으니까. 물론, 조퇴가 하고 싶다거나 보건실에서 쉬고 오고 싶은 등의 지극히 ‘지 필요할 때 한정판’이긴 했어도, 나쁜 아이는 분명 아니었다. 그런 Y의 눈빛에서 완전히 가시가 빠지는 순간은 오직 J와 있을 때 뿐이었다.     

 

J는 Y의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수학 시험 시간, Y가 오엠알 카드에 컴싸로 하트 도안을 만들어 내며 예술 감각을 뽐내는 동안, J는 성실하게 소인수분해를 하고 방정식을 푸느라 조금 덜 예쁜 답안을 제출했다는 점이 달랐지만. Y의 출결 기록에 사연 없는 날이 하루도 없을 때, J는 꼬박꼬박 학교에 앉아있었다는 점이 조금 달랐지만. 그런 건 매우 하찮고 사소한 차이일 뿐이었고, 그냥 둘은 잘 어울렸다. 가끔 절친 인증을 하느라 삐지고 투닥이던 것까지, 완벽한 조합이었다.      


늦은 교직 입성, 대한민국 교육에 이 한 몸 바칠 각오는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교사가 되어버렸다. 처음 해보는 선생 노릇도 낯선데,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더더욱 적응이 안 됐다. 첫 발령을 받은 중학교에서 근무한 2년 동안 그나마 내가 한가지 위안을 받은 건, 삐딱한 애들만 삐딱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게 뭔 소리냐, 그러니까 사실 아이들은, Y부터 J까지 몽땅! 삐딱했다!!      


교사가 되기 전까지, 세상은 모범생과 노는 아이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둘은 완전 다른 종의 사람들이고 굳이 중간층까지 세 단계 정도로 나누어도 어른들에게 삐딱한 건 오로지 노는 아이들, 즉 일부라고 생각했었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열다섯 즈음의 아이들은 세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혼자 있을 때, 친구들과 있을 때, 어른과 있을 때, 각각 다른 얼굴을 내비치곤 했다. 그리고 어른들을 대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삐딱함은, 상수였다. Y도 J도 갖고 있는 그 나이 특유의 그것.      


아이들은 열심히 어른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들이 삐딱한 건 내가 싫은 게 아니라 단지 어른을 밀어내고픈 그맘때 아이들의 종특이다! 희한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완전히 독립하고 싶어? 관심을 끊어줘? 아니었다. 삐딱한 눈빛과 날카로운 말투, 지리한 힘겨루기 끝에 얻어낸 결론, 너희 지금 사실은 두려운 거구나. 열심히 밀어내고 있지만, 사실은 밀려날까 겁나는 거구나.      


나는 어른들을 계속 밀어낼 거지만, 어른들은 튕겨나가지 말고 버텨주세요.      


매달 출결 기록이 책 한 권쯤 나오던 중학교에서, 제멋대로 삐딱하고 어딘가 불안한 그 시선들의 정체가 간절한 호소임을 깨달았을 즈음, 나는 중학교를 떠났다. 중딩은 다 그런 거야, 노하우 하나를 품에 안고.      





어서 와! 반가워!      


여름 캠프 보조 교사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학생 같은 이 보조 교사의 정체는 유학생과, 졸업생이라 했다. 유학생이라고요? 유학이라면 미국이나 유럽쯤은 가줘야 하는 줄 알았던 내게, 유학생이란 말이 낯설었다. 어디로 유학을 다녀왔단 말이야? 그제야 눈에 들어온 사무실의 간판, 이곳은 ‘한드미 농촌유학센터’였다.      


얘네 좀 이상하다. 어째서 저 나이대 아이들이 저렇게 마냥 밝을 수가 있지? 어른을 대하는데 가시가 하나도 없는 게 정상이야?? 중학교를 떠난 지 7년, 뜻밖에도 한드미 마을 초입에서 나는 내 견고한 노하우를 수정해야 했다. 농촌유학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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