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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공 Sep 10. 2020

아들 둘을 키웁니다.

농촌유학 이야기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언제나 어렵다. 문제는 이 어렵다는 정도가 갈수록 더 커진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분명 최댓값을 찍을 텐데 나의 두 아이에게 그 시점은, 아직인 것 같다. 먹고 자는 기본 돌봄이 필요한 시기를 벗어나면서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지나친 선행이고, 어디까지가 적기교육인가. 학교에서 지나친 선행에 지친 아이들을 볼 때면 역시 아니야 싶다가도 꾸준한 뒷바라지로 꽤 괜찮은 결과를 내는 아이들을 보면 또 마음이 흔들린다. 네 아들이 공부를 못할 리 없잖아! 라는 주변 사람들의 쉬운 말에는 뾰족하게 날을 세우면서, 내 새끼니까 중간은 하겠지, 은근한 믿음을 갖는다. 자식 일 앞에서 일관성 따윈, 애초부터 없다, 없었다.      


 큰아이는 두 돌부터 어린이집을, 다섯 살부터 사립유치원을 다녔다. 사립유치원이라니까 꽤 부잣집 같지만, 07년생 또래의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대충 알 것이다. 국공립 유치원을 다닌 아이가 오히려 소수라는 걸. 그러니 큰 아이는 맞벌이 가정에서 자라는 또래들의 평균적인 교육과정을 잘 따라간 셈이다.      

 

 큰아이는 뭐든 또래보다 빨랐다. 수 감각이나 공간 감각도 꽤 괜찮았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데 당연히 문제가 없었고, 교과서나 수학익힘책에 나오는 문제는 늘 가장 먼저 풀었다. 단원평가에서 가끔 실수가 있긴 해도 문제집 한 권 안 푼 녀석치고는 괜찮은 점수를 받아왔다. 그래, 수학 학원 안 다녀도 역시 문제 없잖아! 잘하는 아이일수록 부모가 욕심내서 끌어줘야 한다는 동네 언니들의 말은 한 귀로 흘렸다. 내가 수학 선생인데!


 둘째는 네 살부터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첫째와 굳이 다른 과정을 택한 이유는 나에게 둘째가 너무나도 낯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아이, 겁이 많고 조심스러우며 매사가 예민한 아이, 하지만 조금만 친해지면 누구보다 웃음이 많고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 둘째에겐 공동육아 터전이 잘 어울렸다.      


 둘째는 학습 면에서도 큰아이와는 딴판이었다. 한글을 떼는데도 남들보다 몇 배는 걸리더니 숫자 10의 가르기 모으기에서 이미 눈물 바람이었다. 때 되면 다 한다고 미뤄둔 탓이었다. ‘때’라는 것이 남들보다 몇 개월, 아니 몇 년쯤 늦게 오는 아이도 있다는 걸 둘째를 키우며 깨달았다. 아이는 학교의 기본적인 교육과정조차 버거워했다. 이제 겨우 초2, 아홉 살인데.      


 매일 오후 큰아이의 학교 앞에는 수학 학원 버스들이 서 있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버스의 규모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커졌다. 4학년이 되자 놀이터에 함께 놀던 친구들이 모두 사라졌다. 시차를 두고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 틈에서 놀이터 죽돌이로 버티던 아이가, 더는 친구가 없다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방학이 되자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보충수업으로 매일 출근하는 나와 혼자 집에 남은 아이. 교육도, 보육도, 무엇 하나 마음대로 완성되지 않았다.      


학원을 보내주던가, 스마트폰을 사주던가!
친구도 없는데 게임도 못하면 어쩌라는 거야!!!      


 어느 날 터진 큰아이의 비명이 나를 멈춰 세웠다. 학원 갈래? 아직은 초등이라 들어갈 자리가 있을 거야. 원하면 보내 줄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아이는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저녁을 때우며 선행을 달리는 삶을, 이제 시작해야 하는 걸까?




어디가 팔이고 어디가 다리인지. 어디가 사람이고 어디가 바닥인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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