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믿지 않습니다.
1998년 11월 17일 수능을 하루 앞둔 밤, 동아리 친구들과 팔공산에 갔다. 매년 11월 쏟아지는 사자자리 유성우지만 이날은 33년 주기의 절정을 이루는 특별한 날이었다. 밤새 유성우를 보고 새벽에 수능 치는 선배들을 응원하러 갈 요량으로 핫팩과 담요와 패딩을 챙겼다. 여기까지 들으면 엄청나게 위험한 밤길 산행처럼 들리지만, 사실 팔공산 갓바위는 낮이나 밤이나 그때나 지금이나 삼백육십오일 사람이 바글대는 곳이다. 특히 그날은 삼십삼 년 만의 우주쇼가 있는 수능 전날이었으니, 가만히 서 있어도 인파에 떠밀려 앞으로 앞으로 갈 지경이었다. 유성우를 볼 생각에만 빠져있느라 갓바위란 곳이 경상도 지역 입시 기도의 최고 핫플인 걸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게 실수였다. 사진 한 번 찍어보겠다고 챙긴 삼각대는 세울 곳도 없었고, 엉덩이를 붙일 공간만 있으면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와 절을 했다.
야, 우리 하늘을 쳐다볼 게 아니라 여기서 부처님한테 절을 해야 될 거 같은데? 뭐라카노, 니 설마 유성우 따위에 소원이라도 빌게? 당연하지! 별똥별은 원래 소원 비는 거 아이가? 야 그럼 그냥 여기서 절을 해라! 이 조명은 다 뭐고, 야구장보다 밝구만! (찰진 대구 사투리로 읽어야 함 주의 ㅋㅋ)
야, 우리 차라리 학교 가까?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가운데 본관을 두고 양옆으로 별관이 날개처럼 붙은 ㄷ자 모양의 구조였는데 애매한 산 중턱의 위치를 그대로 살려두느라 본관과 별관 사이에 반 층의 높이 차가 있었다. 덕분에 본관 4층 여자 화장실 마지막 칸에서 허리 높이께의 벽만 뛰어오르면 별관 물탱크실 옥상으로 진입할 수 있었는데, 여자 화장실을 통과해야 한다는 아주 작은 이유 하나로 여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한 밤에는 아무도 우리를 잡으러 오지 못했다. 별관 옥상에서도 아슬아슬한 사다리 하나를 더 올라야 하는, 평범한 진입로 자체가 없는 버려진 공간이었다. 때문에, 못 쓰는 사물함 하나에서 시작했던 옥상의 소박한 살림은 돗자리, 버너, 코펠이 더해지다가, 학교생활이 무르익을 때 즈음엔 침낭까지 품게 되었다. 화장실 옆이니 라면 몇 봉지만 들고 올라가면 아쉬운 것이 없었다. 물론 언제나 틀림없이 혼났지만 언제나 그것은 늘 다음 날의 문제였다.
우리 학교는 수능 고사장이 아니었고, 텅 빈 학교에 건성으로 앉아 있는 수위 아저씨를 피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유성우가 쏟아지기로 한 수능 전날 늦은 밤, 환기를 이유로 늘 살짝 열어두던 반 지하 층 무용실 창문을 넘어, 우리는 우리만의 공간으로 숨어들었다. 함께 산을 올랐던 일곱 중, 넷이었다.
으아 춥다!! 진짜 얼어 죽을 거 같은데? 여기서 죽으면 아무도 못 찾을 텐데 어떡하지? 난 조용히 죽고 싶지 않다고! 아 진짜 미친년! 그럼 그냥 뛰어내려, 즉시 세상이 떠들썩하게 알아줄 것이다! 내 하나 뛴다고 세상이 떠들썩해지겠나? 그건 맞다. 수능 친 학생이 뛰어내리면 뉴스에라도 나오지, 수능도 안 보고 그냥 뛰면 뉴스에도 안 나온다. 자자, 사랑하는 나의 미친 친구들아! 수능은 치고 죽어야 하지 않겠니, 죽을 때 죽더라도 우리 대학은 간 담에 좀 놀아 보고 죽기로 해요. 그러니까 일단 라면 좀 끓여볼래? 근데 유성우라더니 뭐 이렇노? 유성이 비처럼 쏟아진다며 다 뻥이가? (유성우는 비처럼 쏟아지지는 않았다. 한 개, 어쩌다 또 한 개. 원래 그런 건가요.)
핫팩을 쏟아부은 침낭에 몸뚱이를 쏙 담고 콩콩대며 움직이다 릴리즈 리모컨 줄에 걸렸다. 기우뚱 넘어질 뻔한 삼각대를 풀쩍대며 잡는다. 꺅 지금 내 순발력 봤나? 가시나야 목소리 좀 낮추라고! 지금 니 소리가 더 크거든? 아 몰라 누가 잡으러 오면 난 그냥 뛰어내릴 거야! 미친년아 그럼 진짜 신문에 나올 건데? 학교 옥상에서 라면 먹다가 걸렸는데 겁나서 자살했다고? 와 진짜 생각만 해도 제대로 미쳤다.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하라고! ㅋㅋㅋ!!
깜깜한 밤, 버너의 불빛은 유일한 조명이고 유일한 온기였다. 하루 이십사 시간 중 열여덟 시간을 함께하던 우리였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너무 많았다. 몰라, 걸리면 뛰어내리자, 남은 사람이 더 쪽팔릴 텐데 그럼 그냥 다 같이 뛰자! 이 말을 대체 몇 번이나 했던가. 근데 여기서 떨어지면 진짜 죽긴 하는 건가? 안 죽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여기가 4.5층 높이쯤 되니까 한 층에 2.5미터씩 잡고,, 중력가속도는 대충 10이라 치고 니 몸무게 몇인데? 야 하지 마라! 쫌!
아니,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겠냐고! 신발도 벗어 놓고 유서도 쓰고 그래야지, 갑자기 뛰어서 그냥 죽어버리는 게 말이 되나?
몰랐다. 사람이 죽는 데에는 특별한 준비나 엄청난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태어날 때는 누구나 열 달을 준비하지만 떠날 때는 한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죽고 싶다는 말을,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때로는 부사로 때로는 감탄사로 내뱉으며 웃고 떠들었다. 옥상의 침낭과 화장실을 오가며 하룻밤의 추위를 버텼다. 예상보다 날카로운 바람에 그만 내려갈까 하다가도 수다의 끈을 잡고 깔깔대는 사이 동이 터버렸다. 자살에 대하여, 죽고 싶었던 순간에 대하여, 죽는 방법에 대하여, 진지하고 삐딱하고 길게 떠들며 조금은 웃다가 조금은 울었다. 우리 중 누구도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죽음이란, 자살이란, 진지하고 삐딱하게 말할 수 있는 그 무언가였다. 죽음과 자살에 대한 그 길고 사치스런 대화는, 그 밤이 마지막이었다.
4년 뒤, 친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정말로 죽는 거였네. 그동안의 슬픔과 아픔과 지루함 따위의 감정은 일상이었고, 모두 가짜였다. 평범했던 하루 어느 구석에도 없던, 진짜 어둠과 뼈를 에는 차가움이 나를 덜덜 떨리게 했다. 원주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빈소가 있던 서곡이란 곳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한 세계의 벽을 넘어버렸다고. 사람이란 그냥 죽을 수 있는 거였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천체 부스러기가 대기권과 마찰해서 타오른 불덩이 따위에 소원을 비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조명하나 없는 그 밤 옥상에서 곱은 손에 릴리즈 리모컨을 말아 쥐면서도 당연히 소원은 빌지 않았다. 그러니 그날 밤 핫팩 붙인 침낭에 겨우 눈만 빼낸 채로 나눈 이야기가 몇 년 뒤 이루어졌다면, 그건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그러나 그 밤의 어린 나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한번 이야기하고 싶다.
밑져야 본전인데 기도 한 번 해보지 않을래. 앞으로 네가 겪을 어떤 슬픔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떠난 자의 몫까지 잘 살려고 애쓰지 마. 네 한 몫 살아감으로 충분하니까. 이 밤의 가벼운 대화를 두고두고 곱씹지 마. 네 잘못이 아니야, 그때 넌 이 세계에 없었으니까.
그 후로 나는 여러 번의 죽음과 몇 번의 자살을 겪어야 했다. 그 때마다 자살에 대하여 나누었던 길고 삐딱한 그 밤의 대화가 모두 잘못인 것만 같아서 온전히 슬퍼할 수가 없었다. 떠난 자의 몫까지 잘 살아 달라는 주문이 버거워서 더 슬펐다. 그러나 나는 계속 살아가고 있다. 내 한몫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뻔뻔하게,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11월 5일, 오늘은 J의 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