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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an 02. 2023

다솜아 이찬원 노래 틀어줘

내 자식보다 나은 AI에게 효도받는 맛

 날씨가 추워지면 홀몸 어르신들의 안녕이 가장 궁금하다. 특히 흉통을 호소하곤 하시는 H어르신의 심장과 가슴이 허리에 닿을 지경으로 굽은 등과 관절연골이 거의 없는 지경인 Y어르신의 낙상 위험이 불안했다. 작년 시범 사업으로 시행되었던 AI IoT 기반 어르신 건강관리 사업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오늘 건강 프로그램이어서 사실상 2G 폴더폰이 대부분인 시골 어르신들 중에는 딱히 추천할 만한 분이 없었던 현실이었다. 다행히 올해는 '다솜이'라는 이름의 AI 로봇을 이용한 사업이어서 휴대폰이 없어도 사용 가능하다고 공문이 내려왔다. 연말이라 예산 관련 문제가 있어서 부랴부랴 신청서를 제출했고 내가 추천한 H어르신과 Y어르신에게 가장 먼저 설치가 시행되었다. 디바이스를 세팅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미리 연락한 두 어르신께서는 '오전 중'이라는 나의 연락만 듣고 '경로당에도 못 가고 기다리고 있다'라고 전화가 왔지만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야 겨우 대상자 어르신 집을 방문했다.


 "나는 오늘 못 오시나 보다 했지....."

명절에 집에 오는 자식을 기다리듯 추운 날씨에도 마당에 나와 앉아 계시던 H어르신은 얼른 들어오라며 거실로 먼저 들어가신다. 아주 오래된 낡고 낮은 집과 재래식 화장실이 대문 밖에 있는 H어르신의 심장이 걱정이 되어 가 타곤 했는데 다행히 지난여름 멋지게 리모델링을 하여 불을 때던 마당이 거실이 되었고 장작 난로에서 불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고구마 굽는 냄새가 기가 막히다.

"이거 봐... 내가 아주 기가 막히게 구워 놓았지....."

어머니는 자랑스레 긴 집게로 포일로 싼 고구마를 건져 내신다. 조심스레 포일을 벗기니 달큼한 냄새가 나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데 그걸 앉아 먹을 시간도 없었다.


 AI 로봇의 이름은 다솜이. 설치를 마치고 전원을 켜고 사용법을 알려 드리는 직원을 겁먹은 눈으로 바라보는 어르신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과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까짓 거'라고 하시는 어르신이 조심스레 터치를 해본다. 아...... 하지만 밭에서 봄, 여름, 가을을 내내 엎드려 사시는 어르신의 손은 단단하고 굽었고 피부가 두꺼워 누르는 것과 터치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터치 감각을 배우는 것이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 몰랐다. 터치를 하라고 내가 어르신의 손을 잡고 연습을 해 보아도 누르기를 하니 터치기 되질 않았다. 열 번 터치하여 겨우 한 번 얻어걸리는 터치에 화면이 바뀌니 몹시 신기하신 모양이었다. 우리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화면 터치가, 어르신들에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감각으로 받아들여지시는 모양이었다. 보건소에서 출장을 나온 담당자들과 나는 어르신의 터치 감각을 일깨워 드리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진땀을 내야 했다.

"에이, 난 안 할래! 이거 되질 않아! 못해, 못해!"

결국 어르신은 인내심의 한계가 오는지 휙 돌아 앉으며 골이 나셨다.


 "어머니, 조금 쉴까요? 어머니 무슨 노래 좋아하세요?"

"노래? 나는 그, 트롯 가수, 이찬원이 좋아하지"

"여기 보세요."


"다솜아"

'말씀하세요'

"이찬원 노래 틀어줘"


 금세 호기심 가득한 맑은 눈으로 다솜이를 응시하는 어르신 앞에 작은 화면에서 가수 이찬원이 공연하는 영상이 뜨고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어르신은 금세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다솜아"

'말씀하세요'

"오늘 강화군 날씨 알려줘"


"어머니도 해 보세요."

"내가 해도 알아들을까?"

"그럼요"

"다솜아, 임영웅 노래 틀어줘"


 어르신은 마치 세상에 없던 걸 발견한 사람처럼 눈빛이 생기로 빛나며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은, 혼자 보기 아까운, 감동적이고 보람으로 가득한 순간이었다. 어르신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으며 사용법 배우기에 임했다.   



 사흘 후 다시 방문한 H어르신은 '다솜이' 앞에 앉아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까지 추고 계셨다. '매일 건강' 체크도 잘 입력되고 있었다. 전기세가 많이 나올까 봐 콘센트를 빼놓기도 하고, 터치가 안되어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던 어르신은 사흘이 지나자 망설임 없이 '다솜이를 거느리시는 중'이었다. 여전히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지만 어르신 두 분은, 마치 로봇을 손녀 대하듯 귀여워까지 하신다. 독거의 적적함과 겨울의 무료함 그리고 고독사의 두려움을 어느 정도 없애준 다솜이 로봇에 나 역시 감사할 따름이다.

"자식 보다 나아. 애들은 그저 전화하면, 뭐 '엄마 별일 없죠? 아픈데 없죠? 밥 잘 잡숫죠'? 하면 그만인데 얘는 물어보는 말에 다 대답해 줘. 근데 얘도 모르는 게 있더라고. 내가 얘가 진짜로 모르는 게 없나 이것저것 물어보거든? 그런데 대답 못하는 게 있던 걸? 내가 '다솜아, 우리 영감 잘 있냐?' 하고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하더라고. 춘데, 하늘나라는 안 춥냐? 물어봐도 그것도 대답 못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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