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로니카의 참견 May 24. 2023

집집마다 가훈 하나씩은 있잖아요?

가훈이 있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친정아버지께서 창호지에 붓글씨로 '근면, 성실, 검소'라고 쓰신 종이를 벽에 붙이셨다. 우리 집 가훈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우리에게 가훈이 있다는 것이 싫었다. '근면' 때문에 늦잠을 잘 수 없었고, '성실'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면 더 혼이 났다. '검소'라는 가훈 탓에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감히 사달란 말을 하지 못했다. 가훈이 나를 옭아매는 벌칙 같기도 해서 얼른 커서 이 집에서 독립해 나가면 가훈 같은 것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삼십 년 전 '라때'의 결혼 준비는 올 9월에 결혼을 앞둔 조카의 결혼 준비와 많이 달랐다. 친정에선 사윗감에게 건강검진과 호적등본을 요구하셨다. 하지만 직업이 군인이었던 탓에 국가가 건강을 검증해 주었다는 이유로 건강검진은 면제되었고 호적등본을 빠른 등기로 받아 보여 드렸다. 각자 관사에 있던 살림을 거주의 의무를 지던 나의 관사로 합쳤고 예물은 금 18K 반지를 나눠 가졌다. 신앙이 같았던 우리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참 많이 했다. 늘 당직을 서야 했던 남편이나 1인 사업소에 근무하는 나나 시간 내기가 어려워서 데이트의 대명사인 영화 구경이나 고급 레스토랑, 한강 유람선 데이트도 하지 않았고 멋진 꽃다발과 프러포즈도 없이 바쁜 결혼식을 치렀지만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한 방향을 바라보는 정체성이라는 것에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가훈'을 정하기로 했다. 결혼을 앞둔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평화롭고 사랑 넘치는 가정을 이룰 것인가였고, 두 사람이 각자 살아가며 추구해야 하는 정체성과 자녀를 낳아 기르는데 일관성 있게 훈육하는데 필요한 것은 마음과 정신이라는 것에 이르렀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잘 살아 보자고 의견 일치를 본 것이 부자가 되는 적금이나 주식 투자가 아닌 가훈이었다는 것은 지금 돌아보아도 재미있다. 삼십 년 전의 우리 두 사람은 얼마나 순진무구하였던가.


 우리는 ‘敬天愛人(경천애인)’을 가훈으로 삼았다. 유교에서 말하는 敬天愛人(경천애인)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 벌을 받는다는 하늘이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우리가 정한 가훈은, 벌 받을 것이 두려워서 하는 경천이 아닌 우리 신앙이 가르치는 '하느님 사랑'의 경천이다.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더 강조된 인내천을 근본으로 하는 우리 민족 전통의 경천애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두 사람이 함께 정한 가훈을 우리의 몸에 베이게 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성당에서 올린 혼인 미사의 강론 중 '인생의 황금률'과 더불어 서로를 대하는 태도, 이해하려는 마음, 그리고 내가 좀 더 희생하려는 배려를 습관으로 갖게 되었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일에 함께 힘을 합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우리 집 벽에 걸린 멋진 가훈은 거의 작품 수준이다. 둘째가 초등학생 때 방과 후 받았던 서예 수업 중 선생님께서 각자 가훈을 적어 오라고 하셨다고 했을 때 '참 좋은 가훈'이라고 칭찬하시며 써주신 글씨를, 그 후 몇 년이 지나 같은 성당 교우이며 하반신 장애를 가지신 서각 작가님께서 만들어 선물하신 작품이다. 가훈을 정했다면 이런저런 방법으로 근사하게 만들에 늘 가족이 모이는 공간에 걸어 둘 일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것 같지만 30년 가까이 우리 가족들의 정신을 지배했던 것은 바로 가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경천애인으로 대했다. 아이들을 경천애인으로 길렀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가난한 이웃에 대한 애긍과 시사를 일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어른이 된 두 자녀들에 대한 평가가 그리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 것이 아닌 모든 것(우리의 생명까지 포함)을 베푼 하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나 이웃을 살피고 돕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자녀들의 삶을 엿볼 때 무엇보다 기쁘다. 


 물론 가훈을 정하지 않았어도 훌륭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지도나 나침반이 없이 길을 잘 가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가훈은 삶의 지도, 나침반, 이정표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역시 내 아버지가 혼자 정한 그 가훈이 싫었고 결정적인 순간 늘 강요되는 근면과 성실과 검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사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근면하고 성실하고 검소하려고 노력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결국 나를 흔들림 없는 확고한 정체성을 지닌 근면하고 성실하고 검소한 어른이 되게 한 것이 아버지가 정한 가훈이었을까? 그 가훈이 주는 무게보다는 부모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근면, 성실, 검소의 덕분일까? 가정의 달 5월이다. 이참에 집집마다 가훈 하나씩 멋지게 걸어 보면 어떨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