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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Oct 14. 2020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18

4성 체계-1 왜 생겼을까?

화성에 새 안내판을 세우면서 4성 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관심이 높은만큼 오류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4성(四城) 체계-1 왜 생겼을까?


화성을 흔히 동성, 서성, 남성, 북성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혹자는 "화성동성"처럼 앞에 화성을 붙이기도 한다. 그런데 의궤 전체를 아무리 찾아도 이런 명칭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산상동북성, 산상서성, 남북평지성 명칭만 권수(卷首) 도설(圖說)에 보일뿐이다.


그렇다면 4성 구분은 편의상 후세에 만들었을까?


의외로 권 5 재용(財用) 실입(實入)에서 찾았다. 실입이란 실제 공사에 투입된 자재, 인력 등을 기록한 것이다. 이곳에 성 쌓는 돌(城石)의 사용량을 구분하여 기록하며 "평지북성, 평지남성, 산상서성, 산상동성"이란 명칭과 설명을 붙인 것이다. 성역 당시부터 사용하였다는 것은 확인되었으나, 동성, 서성, 남성, 북성 명칭과는 전혀 다르다.  

창룡문(東門) 밖에서 연날리기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주변을 함께 보면 어엿한 산상성이다

기록 중 한 예로 평지북성(平地北城)에 대한 의궤 기록을 보자. "평지북성은 8개소(凡八所)인데 화홍문의 서쪽으로부터 서옹성의 북쪽까지로 전체가 737보 4척이다"라 기록하고 있다. 다른 3성도 똑같은 형식으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4성 기록에서 유의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명칭, 기록 순서, 개소(所) 단위, 그리고 4성 구간 길이와 전체 길이이다. 

고색(古色)이 배어있는 화성 성 돌에서 아직도 선조의 숨결이 느껴진다

좀 더 살펴보자.

첫째, 4성의 명칭이다.

"평지북성, 산상서성, 평지남성, 산상동성"이란 4성 명칭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명칭의 주체는 방위(方位)가 아니라 지형(地形)이다. 즉 동, 서, 남, 북보다 평지(平地)와 산상(山上)이 주체인 것이다.


다만 평지성과 산상성으로 먼저 구분한 후 2차로 동서남북으로 분류하여 활용에 쉽도록 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권수(卷首) 도설(圖說)에도 화성을 평지성(平地城)과 산상성(山上城)으로 구분되어 있다.

동남각루를 감싸고 있는 성은 곡성(曲城)이 아니고 원성(元城)이다. 

둘째, 4성의 기록 순서이다.

북, 서, 남, 동 방향순(方向順)으로 하였다. 이는 행궁(行宮)의 좌향(坐向)을 중심으로 좌측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진행한 순서다. 매우 유의미한 점이다. 화성 전체 배치(城之全局)도 행궁 좌향(坐向)을 중심으로 후진(後鎭), 안산(案山)을 정해 부르고 있다. 


화성에서 행궁이 중심인 것은 당연하다. 도설(圖說) 개기(開基)에도 행궁 좌향에서 좌측인 북수문에서 시작하여 북, 서, 남, 동 순으로 진행하며 설명하고 있다. 의궤 전반에 걸쳐 같은 체계로 하였다.

권 5 재용(財用)의 4성이나 권수(卷首) 도설(圖說)의 개기(開基)에서 모두 북수문부터 시작하여 북, 서 방향으로 진행하며 기록하였다

셋째, 4성 별 "개소(所)" 단위와 구간 수이다.

권 5 실입(實入)에서 보여주는 단위 1개소는 1 원성 구간을 의미한다. 1 원성구간이란 곡성이 끝나는 A부터 다음 곡성이 시작되는 B지점까지 사이에 있는 순수한 원성(元城)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봉돈에서 동2치까지 114보 1 원성구간"에서 시작점을 "봉돈의 북쪽(自烽墩之北)"으로, 종점을 "동2치의 남쪽(至東二雉之南)"으로 분명히 하였다. 이는 곡성에 해당하는 봉돈과 동2치의 돌출된 3면의 길이를 제외한다는 의미이다. 이 돌출된 3면이 바로 곡성(曲城)이다. "1개소"는 두 시설물 사이의 순수한 원성 길이 114보를 말하는 것이다. 

봉돈의 성 밖으로 돌출된 3면을 곡성(曲城)이라 한다. 직선이 아니라서 붙인 이름인 것 같다. 사진은 성 안쪽 모습이다

유의할 것은 곡성에 해당되지 않는 시설물은 아예 원성 구간 개소(所)를 계산하는 시설물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예을 들면 서북각루를 감싸고 있는 돌출된 듯 보이는 성은 곡성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북각루에서 서1치까지를 1개소, 즉 1 원성 구간으로 보지 않고, 화서문 남쪽부터 서1치 북쪽까지를 1개소로 본다. 화서문이나 서1치는 인접한 곡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외해야 하는 경우, 즉 곡성이 아닌 시설물은 첫째, 성 안에 있는(在城身之內) 시설물인 동북각루, 서북각루, 동남각루, 서노대, 서장대, 동장대, 동북공심돈이고, 둘째, 용도 안에 있는(甬道之內) 서남각루, 셋째, 체성(體城) 밑에 위치한 북은구, 남은구이다. 이상 곡성이 아닌 시설물은 잊지 말아야 한다.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의 모습이다. 평지북성의 일부다.

넷째, 4성 구간 길이이다.

4성에 대한 의궤 기록을 보면, "평지북성은 전체가 737보 4척, 평지남성은 전체가 282보, 산상서성은 전체가 1,193보 4척, 그리고 산상동성은 전체가 1,751보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두 원성(元城) 길이이다.


합해보면 평지성이 1,019보 4척, 산상성이 2,94보 4척으로 총 3,964보 2척이다. 이 원성 길이에 전체 곡성 길이 635보 4척을 합하면 4,600보가 된다. 바로 화성의 길이와 일치한다. 이 모든 수치는 권수(卷首) 도설(圖說)의 수치와도 일치하고 있다.

평지북성의 일부로 성의 높이가 높다. 산상성에 비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지형에 의한 분류가 필요한 이유다.

4성 체계를 정리하면 첫째, 화성에는 성역 당시부터 방위(方位)를 기준으로 한 4성 체계는 없었다. 다만 실입(實入) 기록의 필요성 때문에 지형(地形)을 기반으로 한 "평지북성, 평지남성, 산상서성, 산상동성"의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둘째, 4성 체계의 표현 순서는 행궁(行宮)의 좌향(坐向)을 기준으로 좌측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는 순서로 기록했다. 개기(開基) 등 다른 두 가지 경우도 같은 형식으로 했으므로 의궤의 체계로 보아도 무방하다.


셋째, 의궤의 4성 체계는 성(城) 전체가 아니고 원성(元城)만 분류한 것이다. "개소" 단위 자체와 4성 별 길이 합계를 비교해 보면 순수한 원성 구간을 보여주고 있음이 확실하다.


의궤 실입(實入)에서 보여준 4성 체계의 의미는 무엇일까?

평지성과 산상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모두 보인다.

성역(城役)은 지형에 지배를 받게 되어 있다. 높은 산상과 평탄한 평지는 그 지형에 따라 방어에 알맞은 성(城) 높이나 시설물 간격을 설계해야 하며, 인력, 자재, 장비의 투입량 계산이나, 인력, 감독의 배치 등을 위한 기준을 삼기 위함이었다.


정조(正祖)는 방위(方位)에 의한 단순한 식별(識別)보다 평지(平地)와 산상(山上)이라는 지형(地形)에 의한 실무 활용(活用)을 우선하였다. 그리고 2차적으로 방위를 붙여 장인과 백성도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4성(四城) 체계를 갖춘 것이다. 4성 체계로부터 정조(正祖)의 경영 마인드를 엿보았다.


다음 편에는 4성 체계의 문제점인 경계선과 구간 길이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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