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향인 구함 Jul 20. 2022

선택적 함구증은 유전인걸까

아마도 함구증이었을 나, 함구증 문턱에 서 있는 내 딸


“여보, 다람이 인사하는 거 본 적 있어?”     


아내의 질문에

순간 아득해졌다.


나는 다람이가 가족 외의 사람에게 인사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얼마 전 만난 6살 서아 언니와 함께 점심도 먹고, 뮤지컬도 보고, 놀이터에도 같이 갔지만, 헤어질 때 결국 인사하지 못한 우리 딸.


이모들의 방문에 안방으로 숨어버린 채 6시간이나 나오지 않았던 우리 딸.       


아마도 나는 다람이의 상태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별거 아니라고 내 안에서 부정했던 날들, 그 날들이 쌓인다고 해서 다람이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확인을 받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가게 된 놀이상담센터였다. 그런데,

      


"함구증은 고치기 정말 어렵고, 오래 가요."




고 말하는 선생님의 말이 상담실을 가득 채웠다. 그보다 크게 가득 찬 건 아마도 내 한숨.


알고 있었다. 우리 다람이의 증상이 선택적 함구증 증상과 너무도 비슷했기에.

우리 아이가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전문가의 입을 통해 확인을 받고 싶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정말 함구증인가요? 그럼 어느 정도로 심한건가요? 저는 뭘 어떻게 해줘야 하나요? 저도 함구증이었던 것 같아요. 저를 닮아서 그런걸까요? 저처럼 사람들 만나는 걸 힘들어 하면 어쩌죠? 저처럼 나이 마흔을 향해가는 때 까지도 힘들어하면 어쩌죠?  


수 많은 질문들이 머리 속을 헤집어 놓았지만 밀려 오는 걱정 끝에는 그래! 역시 함구증이 맞았어! 하는 어떤 묘한 쾌감도 있었다.

등 어딘가가 가려운데, 가려워서 미칠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딘지를 모르고 있었는데,

”여기가 가려우시네요“ 하며 긁어준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이내 우울해졌다. 상담을 마치고 마주한 다람이에게 티를 안내려 최대한 밝은 모습으로 말을 했지만. 그랬지만.

목 끝까지 뜨거운 것이 꾹꾹 차올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있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아무래도 나를 닮아서일까.

어렸을 때 기억들도 떠올랐다.


슈퍼 아줌마에게 계산을 시키는 엄마에게 등을 억지로 떠밀렸던 기억. 문방구까지 나 혼자 심부름을 다녀왔던 기억. 나도 모르는 캠프에 끌려 가서 처음 보는 친구들과 억지로 조별 활동을 했던 기억.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너 어렸을 때? 넌 더했어."


그때에는 아마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거다.

그저 낯 가리는 아이라고 생각했을 우리 엄마는 당신 나름의 방식으로 나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거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날 닮은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이런 아빠도 문제 없이 잘 산다는 걸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딸의, 내성적인 사람들의 장점을 내 스스로 찾아내어 말해줘야겠다. 조금 부족한 부분은 보완시켜 주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의 삶을 더 번듯하게 만들어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딸이 나를 보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일단 문제를 알았으니 해결하면 된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은 선명해졌다.

나는 선택적 함구증에 대해 닥치는대로 찾기 시작했다.




 



이전 02화 어느 날 내 딸에게 침묵이 찾아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