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의 자발적 고립
1877년 독일 의사 아돌프 쿠스멀은 의도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사례를 보고하며 이를 ‘자발적 실어증(aphasia voluntaria)’이라고 명명했다. 그로부터 약 60년 후 ‘선택적 무언증’으로 바뀌고 1994년에는 소아정신장애 중 하나로 ‘선택적 함구증’이란 용어가 채택되어 현재까지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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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빨리 센터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딸아이의 이모들(아내의 사촌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였다. 근처에 왔다가 다람이를 보고 싶다며 갑자기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하루 전에 미리 말을 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주 어릴 때 잠깐 봤던 사람들이 하나도 아닌 둘이라니, 다람이는 고개를 저었다.
만나기 싫다는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고선 이모들의 방문 예정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했다.
띵동
벨소리를 듣자마자 다람이는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생각 없이 그저 하하 웃었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방문이니 당황했겠지. 한 30분 있다가 나오겠지 했다. 그런데
아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와 아내 중 한 명이 교대로 아이 옆에 있었다. 다람이를 보고 싶어 하는 이모들이 방 가까이에만 오면 침묵했다. 굳게 닫힌 입은 열릴 생각이 없었다. 아이의 마음이 닫히니 입이 닫혔고, 그래서 방문도 닫았다. 안방 문을 닫고 아이가 선택한 자발적 고립의 시간이 지날수록 이래선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에서 다람이의 이모들(아내의 사촌동생)과 치킨을 먹으면서도, 기름에 튀겼다고 다 맛있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아내의 사촌동생들에게 미안하고 민망했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손님들이 왔는데 아이에게만 신경 쓸 수는 없어서, 부부가 돌아가며 거실에서 식사를 하고 맥주도 한잔 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대화하고 웃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치킨이 진짜 맛있다~~거나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정말 달다~~ 거나 하는 유혹의 대화를 해봤지만 다람이는 침묵으로 응답했다. 결국 다람이는 이모들을 만나길 거부한 채 안방에서 잠이 들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모들은 4시쯤 방문해서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있었는데, 다람이는 안방을 벗어나지 않았다. 다람이 평소 취침 시간은 10시~10시 반 정도니까 6시간을 넘게 안방에 있었던 거다. 결국 이모들은 자고 있는 다람이의 얼굴만 간신히 보고선 돌아서야 했다. 그마저도 혹시나 깰까 봐 제대로 못 봤다.
괜찮아요 형부~ 다음에 보면 되죠.
어색하게 웃으며 보내줬지만 그날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보던 선택적 함구증의 아이들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키워드가 아주 작은 점이었다가 점점 그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올해 4월 초의 일입니다. 이후 6개월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주 작은 변화들이지만 분명히 다람이는 나아지고 있습니다.
혹시 제 딸과 비슷한 증상의 아이들이 있다면 제 노력을 담은 글들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