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써놓은 채로 몇 주째 글을 쓰지 못했다. 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과거의 상처를 다시 들추고 쑤셔야 하기 때문이다. 아문 줄 알았던 상처는 한동안 아팠고, 아픔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래도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으며 써낸다.
쓴다가 아니라 써낸다.
기록하기 전에 분명히 짚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지금 사회에서 통용되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말이다.
괴롭힘이라는 명사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한다. 그들의 아픔은 단순한 괴로움이 아니라, 가끔은 자살로 내몰릴 정도의 극심한 고통이다. 실제로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로 자살을 택한 사람들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하단의 기사에도 지적하고 있지만, 아마 수치보다 더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겠지.
고작 괴롭히는 정도로 사람을 죽인다? 그건 명백한 폭력이며, 괴롭힘이라는 말은 적절한 수사가 아니다.
학교폭력도 있고, 가정폭력도 있고, 사이버폭력도 있다. 심지어는 팩트로 사람을 패면 팩트폭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직장에서 행해지는 폭력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점잖고 에두른 표현일까. 나는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에 관해서는 피해자였던 적이 없지만, 직장폭력만큼은 내내 피해자로 살아왔다. 직장 내의 폭력 가해자들에게 피해를 입으며 사는 사람들을 나는 너무도 숱하게 봐왔다.
내 기억 어둡고 후미진 곳에 숨어 있는 직장폭력의 기억은 지금도 번뜩번뜩 바퀴벌레마냥 튀어나온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가장 독한 바퀴벌레 약을 설치하는 심정으로. 하지만 바퀴벌레는 백악기에 출몰해서 빙하기도 버텨냈다고 한다...
앞으로 종종 기억을 끄집어 내 쓰겠지만 내 글을 더하거나 과장하지는 않을 거다. 나는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진실의 칼이 정확하게 가해자를 노리는 상상을 하며 말이죠.
나에게 직장 내 폭력을 행사했던 상사는'성격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주어진 일 하나는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성격은 좀 괴팍하고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거 같긴 해, 근데 뭐 일은 잘하니까. 뭐 어때? 하는 평가를 받는 사람 말이다.
나는 그에게 이용당한 사람 중 하나였고 어느 시점부터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인격 모독이 일상이었던 그 사람 밑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그와 일하기 힘들어했지만, 그 많은 직원들 중에서도 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던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비록 경력은 있었지만 늦깎이 신입이었던 나는,서른을 넘겼고 어린아이가 있는 기혼남자라는 사실에 손발이 묶인 채 묵묵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지만 나에게 지옥은 밖이 아닌 회사였다.
바로 옆 자리에 위치한 인사팀장은 그 모든 현장을 지켜봤음에도 그 역시 회사를 위해 일하는 직원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인사팀에 인사이동을 요청했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 노동청에까지 신고할 패기는 없었던 나는 그의 폭력 밑에서 2년 반을 견뎠다. 상사는 승승장구해서 더 높은 위치로 날아갔고 그제서야 나는 사람답게 살게 됐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던데, 어느 퇴근길 나는 16층 우리 집 앞에 내려 아름다운 핑크빛으로 지는 해를 보며 생각했다. 여기서 떨어지면 아프겠지. 당연히 죽을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그 끔찍한 시간을 지나 온 지금에 감사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그 지독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내가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사실 하나였다.
내가 문제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날들이 많았다. 다 이렇게 사는데, 나만 힘든 건가? 내가 좀 더 아부를 잘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면접에서 나를 너무 부풀렸던 탓은 아닐까, 내가 요령이 너무 없나, 나는 사회생활을 이렇게도 못하는 쓸모없는 남자인가.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분명하게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넌 그냥 피해자였을 뿐이었다고. 너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언젠가부터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연예계에서 퇴출되기 시작했다. 나는 직장폭력의 가해자들도 어디서든 퇴출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이 글이 많은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직장폭력의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를 기억하지 못하고,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평생 기억한다. 내가 입었던 피해를 꾸준하게 기록할 생각이다. 그럼으로써, 내 기억이 조금은 희미해지고 상처가 아물길 바란다. 나는 직장폭력의 가해자들이 XXX하고 XXXXX 돼서 XXXX XXXXX 하며 XXXXXX XXX XXX 되면 좋겠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언제부터인지 우리 부부의 꿈은,많은 돈을 버는 것이 됐다. 여기서 '많은'의 척도는 직장을 그만둘 수 있을 만큼이다. 그리고 내 딸이 나와 같은 피해자로서 살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런 날이 올까.
매일 아침 광화문 역에 내리며 생각한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 몇 명은 아마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텐데. 그들의 삶이 내일은 더나아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