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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글방 Jan 02. 2024

내가 네가 된다는 상상

[내가 네가 될 수 있다면] 몽

어떤 우주에서 나는 너다. 세상에 아주 많은 우주가 존재해서, 그 우주마다 다른 모습의 내가 살고 있다면, 너처럼 살고 있는 나도 있지 않을까. 너의 우주가 나의 우주가 되어… 네가 내가 되어… 우리 사이에 어떤 틈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상상한다. 그렇게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네가 네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자, 나는 우리가 한 번도 함께였던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같은 것을 추억하는 건 아니구나. 추억이라는 어설픈 단어로 너와 나 사이의 틈을 메꿀 수는 없겠구나. 마음 한구석 쌉쌀해지는 마음으로 생각한다. 허공을 붕 뜨던 말들, 전해지지 못했던 말들, 이해할 수 없었던 말들의 정체가 비로소 뚜렷해진다. 그건 우리가 서로 다른 우주에 살고 있었다는 간단한 진실이었다.


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기억의 심연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본다. 그때 나는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이었다.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아무렇지 않게 부를 수 있었고, 교사의 정치적 발언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었고, 사실은 교사라는 위치를 가진 자가 그런 말을 해주어서 묘한 기쁨을 느꼈다. 나는 알지 못했다. 나에겐 기쁨이 되는 일에 네가 받는 상처. 집 밖에서 하루 종일 들려오는 외침 혹은 고함 소리. 그 소리 속에 섞인 네 세상을 향한 분노.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또 그들에 대한 너의 분노. 그 모든 것과 분노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때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온전히 내 것만은 아니었듯, 네가 입은 상처 역시 온전히 네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네가 입어야 하는 상처가 아니지 않았을까. 우리의 부모, 부모의 부모, 그들의 부, 부가 만드는 세상. 그 세상에 사는 우리는 그런 것들과 결코 분리될 수 없겠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던 나는 그럼에도 너의 친구가 된다. 


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머리가 멍하다. 우리 사이의 틈이 너무 크다는 걸 알게 됐고, 그 틈은 앞으로 더 벌어질 거라는 걸 예감했다. 너도 나도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나 벌어진 틈이 조금 두렵다. 너와 내가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갈 앞으로의 많은 날들에 그 틈은 또 얼마나 벌어질까.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우리 사이에 아무런 틈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올까. 참, 우리는 같은 날 태어났지. 그러니까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게 존재했던 한, 우리는 다른 우주에 살고 있었구나. 


그래서 나는 상상한다. 내가 네가 되는 아마 영원히 오지 않을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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