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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글방 Jan 02. 2024

그 우주의 나는 아마

[내가 네가 될 수 있다면] 호두

어떤 우주에서 나는 이과다. 


그 우주에서 나는 아마 수학을 잘하겠지? 지금의 나는 중학교 문제도 어려워하지만, 분명 그 우주의 나는 훨씬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어내겠지. 아마도 그 우주의 나는 그렇게까지 최고는 아니더라도 노력해서 2~3등급을 맞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겠지.


그 우주에서 나는 아마 학원에 다니고 있겠지? 성적을 유지해야 하니까, 지금의 나는 학교-집-학교를 반복하면서 인강으로 호흡기를 달며 겨우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분명 그 우주의 나는 철저한 예습으로 학교 수업 따위는 지루하겠지. 학교에선 친구에게 숙제가 많다고 푸념하며 숙제하는 척을 하고, 결국 숙제는 밤늦게 집에서 하겠지. 아마도 그 우주의 나는 매일매일 학교가 끝나면 한숨을 내쉬며 학원으로 가고, 어둑어둑해지면 축 처진 어깨 위에 무거운 가방을 이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 숙제를 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겠지.


그 우주에서 나는 아마 여러 친구를 사귀겠지? 그 우주에서도 친구가 없는 건 재미없으니까, 지금 나는 선생님이 조별 과제를 주는 게 무서운 그저 흔한 반의 병풍이지만 그 우주의 나는 분명 조별 과제라 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옆에 오는 그런 멋진 학교생활을 하고있겠지. 점심시간에는 급식 메뉴가 맘에 들지 않아 투덜대며 매점에 가고,  좋아하는 운동은 축구 그리고 모두가 다하는 게임을 열심히 하겠지, 아마도 그 우주의 나는 자연스레 나와 비슷한 무리 사이에 스며드는 그런 사람이겠지.


그 우주에서 나는 멋진 학교생활을 노력 중이겠지? 학교에 앉아 있다만 가는 지금의 나와 달리 분명 그 우주의 나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겠지. 피곤한 아침을 찌뿌드드하게 일어나 대충 준비해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로 가 조회 시간에는 영단어를 외우고,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필기하다. 간간이 자체 휴식 시간을 갖는다. 가정통신문도 열심히 읽고, 선생님 옆도 알짱거리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 우주의 나는 기억에 남는 존재로 학교생활을 하려 노력하는 사람이겠지.


그 우주에서 나는 아마 글을 쓰지 않겠지? 무난한 중학교 시절을 보낸 그 우주의 나에게 글을 쓰는 계기는 딱히 없겠지. 매일매일 늦게까지 학원에 갔다가 돌아와 숙제하고 또 학교 가고, 키보드에 손 올릴 틈이 없겠지. 아마도 그 우주의 나는 글쓰기는 독후감밖에 안 써본 그런 사람이겠지.


그 우주에서 나는 아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겠지. 그렇게 노력했는데 행복하게 살겠지. 지금의 나도 그렇게 살았으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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