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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글방 Jan 02. 2024

식어버린 피자 살리기

[내가 네가 될 수 있다면] 퍼핀

어떤 우주에서 나는 열여덟 살이다. 


“자퇴하고 뭐 했어?” 묻는 사람들에게 습관적으로 “엄마랑 피자 먹으러 갔는데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이런 질문들은 대개 무례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원하는 답을 말하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기에 그런 대답을 한 것도 맞지만. 정말로 사실이라서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는 것도 맞다. 자퇴 서류를 낸 그날 나는 정말로 엄마랑 버섯 피자를 먹으러 갔으니. 배려 없는 질문 덕분에 식은 버섯 피자의 맛을 자주 곱씹곤 한다.   


버섯 피자를 먹은 그날은 열여덟 살의 여름 방학이었고, 학생들 없을 때 방문한 학교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복도 끝에 위치한 교무실까지 걸어가는 내내 나의 발자국 소리밖에 울리지 않는 것이 낯설어 걸음의 힘을 뺐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수없이 이 복도를 지나갔는데, 단 한 번도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는 이상한 우울의 기운으로 잔뜩 축축해 발소리 따위가 들리는 곳이 아니니까. 축축함에 잡아먹힐 것만 같을 때마다 교실 밖으로 나와 이 복도를 걷고는 했다. 교실 문을 지날 때마다 수업하는 선생님의 목소리, 소곤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 의자를 끄는 소리들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이제는 그 모든 소리들이 다른 먼 세계의 소리 같지만. 


교무실에서의 절차는 민망하리만큼 단순했다. 담임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서류 몇 장을 건네주었고, 나는 종이의 가장자리마다 서명을 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괜히 이리저리 찾은 인터넷 정보에서는 보통 담임선생님이 몇 번의 면담을 진행하며 말린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지만 금방 잊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나는 아마 늘 점심을 먹지 않고, 책을 베고 자는 학생일 테니. 하지만 그건 정말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니까요, 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도 금방 잊었다. 사물함에 든 나의 물건들을 정리할 겸 마지막으로 한 번 교실을 보고 가라는 선생님의 제안도 조금 고민하다가 거절했다. 굳이 챙겨갈 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오자 큰 잔디 운동장이 보였다. 학생들의 건강에 좋은 천연 잔디 운동장이라는 설명을 입학식 때부터 들었지만 정작 나는 그 잔디를 밟아본 적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이 그럴 것이다. 천연 잔디는 예민하기에 함부로 밟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잔디 출입이 허락되는 유일한 시기는 5월이었는데, 그때는 가장 큰 입시 설명회가 열리는 달이기도 했다. 무성하게 자란 초록 잔디는 내빈들을 위한 주차장이 되었고. 6월이면 잔디가 이렇게 수명이 짧은 식물이었나 생각했다. 마지막이 된 그날도 웃통이 모두 꺾인 잔디들을 바라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그 긴 길을 돌아 나왔다. 


집에 도착하여 절차가 완료되었다고 하니 엄마는 버섯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피자를 자주 먹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먹게 되더라도 매장에서 먹는 경우는 더욱이 없었는데. 그날은 그냥 매장에 앉아 피자를 먹었다. 평일의 애매한 시간대에 테이크 아웃 피자집의 작은 테이블에 굳이 굳이 앉아 피자를 먹는 것은 우리밖에 없었다. 배달 주문을 알리는 벨소리가 반복하여 울렸고, 직원들은 피자들을 포장하면서 우리의 존재를 잊었다는 듯 시끄럽게 대화했다. 그 소음들이 너무나도 한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것은 한적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입맛이 없어졌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피자를 입에 넣던 엄마는 남은 조각들을 먹으라고 권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피자 한 조각을 잡아 베어 물었다. 그새 식어버린 피자는 딱딱했으며, 버섯은 메말라 있었다. 맛이 없네, 나도 모르게 뱉어버렸고 엄마는 그렇네, 다음에는 다른 곳에 가자고 했다. 


물론 그 이후로 다른 버섯 피자를 먹으러 가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너 그간 무얼 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식어버리는 피자의 맛을 생각하는 것이 그 탓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맛이 없더라도 꾹 참고 피자를 다 먹었더라면 다른 대답을 했을까. 평소처럼 포장하여 남은 피자를 냉동실에 보관하는 나를 상상한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냉동된 피자를 꺼내 토스트기에 5분 데운다. 따뜻해진 피자의 도우는 말랑하게 씹히고 버섯은 적당하게 쫄깃하다. 우물거리며 종종 피자를 다시 사 먹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되돌아보지 않았던, 새 페인트칠이 된 학교 건물을 생각하고, 푸릇하게 자란 잔디를 생각하고, 가득 차 있던 나의 사물함 속 교과서와 양치 도구들을 가방에 옮겨 담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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