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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새 Jul 31. 2020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 때

지금은 맞고 미래엔 모른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요즘 꼰대들을 향한 세상이 던지는 말들이 참 많아졌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어른들 말하는데 말대꾸는 하는게 아니라는 풍토가 강했는데 세상이 점점 변화하고 있긴 한가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말들을 꼰대의 면전에 던지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또 나의 깊은 사고 속엔 지금은 맞지만 먼 훗날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욱 조심스럽게 된다.


내가 마치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 같았다. 늘 내가 맞다는 생각을 했고 독단적으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현실이 눈에 들어오더니 내가 꿈꾸는 삶은 이상향일 뿐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더불어 나는 왜 적응하지 못하는건지 나라는 인간은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자기 혐오감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울함을 느끼면서 깊이 잠드는 것은 포기했다. 깨어있는 시간도 늘 피곤했고 예민해져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병은 음식도 잘 삼키지 못하게 만드는 병을 내게 주었다. 처음으로 식도가 타들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럼에도 달라질건 없다는 생각에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삶의 끝은 어디일까 .언제쯤 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결국 죽음밖에 없을까.

죽음이라는 것이 무섭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차피 인간은 유한적으로 살아가고 필연적으로 마주할 죽음이라면 언제가 됐든 무슨상관일쏘냐 싶었다. 먹고싶은 음식도 사랑스러운 감정들도 느낄 수 가 없었다. 감정 바보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감정 바보도 느끼는 감정은 한가지 있었다. 바로 바보같은 나를 바보로 만드는 말 들 이었다.

나를 깎아내리는 말들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나를 무시하는 말들에 무너지고 별것 아닌 말들에도 '저 사람은 나를 무시하고 있다' 라는 생각을 했고 자괴감에 빠졌었다. 다 포기하고 싶었고 사람들을 대면하는게 극도로 어렵고 불안해졌다. 나의 행동이 누군가의 눈엔 바보로 보일 수 있으니 아무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기 시작했다.


언제나 튀고 발랄하던 나는 이제 없었다. 조용히 구석에 앉아 남들의 스포트라이트를 구경하는 내성적인 아이로 변해있었다. 사람들의 일에 관심이 없으면 그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으리라 믿었다. 그렇게 벽을 쌓기 시작했다. 잘나지 못한 나의 모습을 구태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생각만큼 되는일이 없어 속상한 마음을 그런식으로 풀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심할 땐 그렇게 오래 쓰던 일기를 쓰지도 않았고, 거울을 보기도 싫었다. 거울속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건 마주하면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으니 말이다.



주변에서 밀려오는 압박감에 나는 이 상태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사건건 부딪혔다. 세상에 그리고 사람에. 그렇기에 난 나 자신을 더욱 구제불능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한바탕 할 만큼 부당한 일 들도 마음속으로 부딪힐 뿐, 당당하게 내 목소리 낼 수 있는 용기가 사라져버렸다. 그 누구에게도 나의 의견을 이야기 하지 않았고 속으로 생각할 뿐 이었다. 나의 생각이 올바르지 않을까 남들은 다르게 생각할까 수없이 의심하며 책의 힘을 빌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 있겠지만 귀가 아플 것 같아 포기했다.


책은 내게 참지 말라고 했다. 새로운 인생을 살고싶으면 지금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리라고 말했다. 난 나의 자존감 도둑인 나의 일자리를 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세상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내가 제일 문제구나 싶었다. 남들은 편하게 잘 살아가는데 뭘 먹고 자랐길래 나만 부적응자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울고 말았다. 나는 이제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으니 울일도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결국 내 자신이 그 일을 해내고 말았다. 소리내고 싶지도 않아서 주륵주륵 눈물만 흘리는데 엄마의 전화가 왔다.

아빠와 이혼한 후 새로운 삶을 살고있는 엄마였다. 힘들어도 지금이 행복하다는 말을 늘 달고 사는 엄마였고 잘나지도 못한 딸이지만 언제나 믿어주고 잘 할 수 있다고 다독여주는 사람이다. 사실 이 건 최근에 알게된 사실이고, 그 통화를 하기 전 내가 알던 엄마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딸이 원하지도 않는 전문대를 억지로 보냈었다. 꿈을 찾아 재수를 하고싶다는 딸에게 인서울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며 종이접듯 꿈을 접게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내게 말했다.

"당당해져라 은새야, 너는 죄짓지 않았어. 세상이 아무리 뭐라고해도 넌 네가 맞다고 생각한 길로 가면돼"

엄마가 나를 응원해주면 기분이 좋아야하는데 가슴이 아프면서 눈물이 더 세차게 흐르는게 아무래도 기분이 좋아서 그런것 같진 않았다. 미안하면서도 꼭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끝까지 열심히 너의 삶을 살아봐"


아직도 내가 맞는지 틀린지 조금은 혼란스럽다.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한 선택에 대해서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콩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알게됐다. 나는 그저 두려웠을뿐이다. 나의 행동에 어떠한 결과가 따라올지에 대해서 두려웠고 조심스러웠을 뿐이다.

틀렸을 수 있다. 하지만 틀릴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실수는 아무래도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마주해야할 무한개의 정오표가 있겠지만, 다음번 시험에선 정답을 맞추면 된다는 마음 가짐으로 살아갈것이다. 본인의 삶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인정하게된 우리 엄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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