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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있는 밤 Jul 21. 2024

4. 특목고 = 특별히 목 빠지게 힘든 고등학교

다사다난했던 특목고 생활

중학생 때에 특목고 열풍이 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부모님도 자연스럽게 특목고를 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특목고에 진학했습니다.


기숙사 학교였기 때문에 24시간 중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학우들과 함께했습니다. 한창 10대의 후반부에서 자아를 찾아나가는 질풍노도의 아이들에게 기숙사 학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명이 기숙사 방을 공유했기에 하교를 하고 나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바로 자습 시간을 거친 후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야자를 하고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늦은 시간까지 공부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등학생 중 안 바쁜 사람은 없다지만 허수가 없는 특목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상상 이상의 노력을 요구했습니다. 국어나 수학뿐 아니라 영어도 조기교육이나 사교육 한 번 받지 않고 회화, 작문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뒤에 얼마나 많은 고생이 있었는지 아는 것은 저뿐입니다.


출처: freepik


특히 수학은 늘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중학생 때까지는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어떨 때는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수학을 포기하면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지금은 더하지만 그때에도 수학은 중요한 과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수학 학원에 가거나 과외 등을 할 수 없었고 학교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보다 시험이 훨씬 어려웠기 때문에 혼자 수학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방학 때는 하루에 10시간 동안 수학만 푼 적도 있었고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 외 최대한 시간을 활용하여 수학 문제에 전념했습니다.


노력과 성적이 반드시 일대일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특출나게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고 이해하는 데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일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보다 적게 공부하고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두는 놀라운 친구들도 있었지요) 기숙사에는 복도에 작은 공간이 있어 늦게까지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모두가 다 방에 돌아간 늦은 시간 하늘을 보면서 수학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노력이 결국에는 빛을 발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처음엔 수학에 자신감이 없었지만 어느 순간 친구들이 시험 전날 제게 수학을 물어보았고, 수업 시간에 칠판에서 문제를 푸는 날이 왔습니다. 수학 1등급을 받은 적도 있고 수능 수학도 최종적으로는 1등급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어반브러시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학과 같이 어려운 과목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사교육을 감당할 형편이 되지 않는 많은 학생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번 글을 써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수학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전보다 더 중요하다면 더 중요하지요. 하지만 수학은 내용도 어렵고 특히 찐 문과 머리라면 (물론 문이과 통합입니다만 적성은 존재하니까요)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입시 수학은 정말 많이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말 많이'입니다. 저도 학원에 다니거나 대치동 현장 강의 등은 꿈도 꾼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루 10시간씩 수학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문제가 풀리더군요.


수학에 자신감을 잃을 때면 이 말을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명제를 증명하고 연구하는 수학과 교수가 될 건 아닙니다, 그러니 입시 수학은 아무리 어려워도 일정한 범위가 있습니다,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의대를 지망하거나 메디컬 입시를 하고 싶으시다면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제 특목고 동기 중에서는 학교 다닐 때에는 문과였고 이과 수학도 잘 못했으며 학교 시험 4~5등급을 받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5~6년 동안 수능을 치다가 결국 원하는 메디컬에 이과로 진학한 경우가 있습니다. 즉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보이는 수학도 언젠가는 넘을 수 있게 됩니다.


출처: lovepik


다만 특목고에서는 수학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조기 유학을 다녀와서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서울대에는 훨씬 더 많았지요) 학교 수업뿐 아니라 고등학교 3학년 때 면접 준비하기 위해 영어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은 더욱 고역이었습니다. 요즘엔 스픽이나 야나두가 있지만 제가 어릴 적에는 없었고, 일본 외에 해외 여행을 가 본 적도 없어 스피킹이 되지 않는 토종 한국인이 특목고에서 영어 수업을 듣고 수시 영어 인터뷰를 준비하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원어민처럼 되지는 않을지라도 하루에 15분씩 CNN과 라디오 방송을 듣고 유튜브에서 연사들의 강연을 영어로 들으려 애쓰다 보니 조금씩 실력이 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놀랍도록 많았던 수행평가와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공부 외에도 많은 시간을 쏟고, 동아리와 방과후 스펙을 쌓아 생기부를 채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생 때 과제들이 오히려 수월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높은 강도로 예행연습을 했으니까요.  


이렇게 원없이 공부했던 특목고 생활에서 의외로 더욱 힘들었던 것은 인간관계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특목고는 선별효과가 있어 학우들이 더 매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3년 지내면서 느낀 것은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개성이 강했기 때문에 학우들은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내성적인 성향의 아이들은 은근히 무시되었습니다. 내향적이었던 학생들은 학교에서 존재감을 가지기가 어려웠고 복도에서 아는 친구들에게 인사해도 씹히기 일쑤였습니다. 급식줄에 서 있을 때 친구들과 함께 있음에도 가끔 혼자 오리알처럼 덩그러니 서 있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학생들이 자는 시간 빼고 매 시간을 함께해야 하는 기숙사 생활이었기에 패 나누기, 그룹 나누기는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크지 않은 이슈로 단톡방에서 일부 학생들 간에 싸움이 나서 학교 분위기가 냉랭하고 상담실이 붐볐던 적도 있습니다.  


특히 기숙사 룸메이트들의 다른 생활 패턴도 많은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간혹 가다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룸메이트들을 만나면 생활이 더욱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좋은 룸메이트들이 많았지만 주변을 보면 친하게 잘 지내다가 갑자기 나머지 룸메들과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룸메이트도 있었고, 룸메이트들 중 가장 기가 약한 아이를 골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연중에 괴롭히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컨디션 난조로 쉬고 있는 룸메이트를 위해 불을 꺼주며 방에서 나가다가 '푹 쉬어'라는 말을 한마디 했을 뿐인데 쉬고 있는 학생이 시끄럽다며 쌍욕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처럼 특목고 생활은 공부, 과제, 인간관계의 면에서 상상했던 모든 것을 뛰어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특목고를 가고 싶다고 말한다면 저는 굳이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훌륭한 학우들을 만나 자극도 많이 받지만, 일반고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한다면 그러한 피어 그룹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습니다. 더불어 특목고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이나 활동들이 매력적인 부분도 존재하지만 중학생 때 기대했던 모습은 현실과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활동들은 일부이고 공부와 산더미 같은 과제 속에서 3년을 보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본인이 어떤 길을 가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제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는 특목고에 진학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은 꼭 특목고에 가지 않아도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하지만 멘탈도 단단하고 주변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특목고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특목고에 진학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것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권유 때문에, 특목고가 멋져 보여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이 원해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아서일 때에만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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