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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있는 밤 Jul 22. 2024

5. 선택도, 후회도 '나의 것'

후회해도 제가 선택하고 싶어요

우리는 흔히 무언가 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오히려 심리학자들은 해 본 일들로 인한 후회보다 '안 해 본 일들'로 인한 후회가 더 크다고 합니다. 해 본 일들은 적어도 시도해 봤기 때문에 후회가 남을지언정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되지요. 하지만 안 해 본 일들은 결과가 어떨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그 때 용기를 내서 해 볼 걸,' 하는 후회가 남게 됩니다.


저는 십대가 지나서 이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길만 걷기 위해서 모험을 해 보지 않았지만 만약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제가 원하는 것을 한 번이라도 지켜내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남습니다.


출처: pngtree


저에게는 그것이 바로 고등학교와 대학교 전공의 선택이었습니다. 누군가 제게 인생에서 후회되는 선택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특목고를 간 것, 많은 고민 없이 대학 전공을 선택한 것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 대답을 들으면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학벌을 얻은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말이지요. 물론 저도 치열한 노력을 했던 경험에 대해서는 뿌듯함을,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학력을 얻은 결과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의 눈에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가 아닙니다.


일전에 세계테마기행 등 여행 프로그램에서 한 한의사 분이 캐나다에서 한인 마트를 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들 눈에는 그 좋은 한의사라는 직업을 왜 포기하고 먼 나라로 갔을까, 싶겠지만 그 분은 그 분의 선택에 확신을 갖고 계셨습니다. 인생토록 아름다운 호수를 직장 삼아 일하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가 아니라 나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주는지입니다. 누군가에겐 명품백보다 에코백이, 비싼 수입산 자몽보다 밭에서 딴 못생긴 귤 하나가 더 좋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이비리그를 나와서 변호사가 되거나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남 눈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정작 매일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너무나 우울하다면 그들에게 그 직업은 좋은 직업이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출처: 통계청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특목고나 서울대에서 배웠던 내용은 제가 자아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전공 적성이 맞지 않아서 정작 제가 배우고 싶었던 내용은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정체성을 찾았던 것은 방황하며 학교 밖에서 했던 활동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가족 분들과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주전공(무엇인지 밝힐 수는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과 경영을 전공했지만 정작 그 내용은 정말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졸업 요건이 까다로운 터라 그 조건 안에 있는 과목을 듣고 졸업 논문을 쓰며 졸업 규정을 맞추느라 벅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과를 하고 싶어도 학교 내 TO 부족과 더불어 가족 분들의 심한 반대로 인하여 전과를 허락받지 못하여 결국 그대로 원치 않는 전공을 가지고 졸업하게 되었지요.


여기서 저는 제가 배웠던 학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제가 배웠던 내용은 정말 큰 배움이 되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누군가와 달랐습니다. 12년 동안 대학만을 바라보고 노력했음에도 정작 대학에서는 저의 적성과 흥미에 맞지 않는 내용을 배우면서 결국 졸업한 후에도 그 교육이 제게 큰 의미가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제가 내린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대신 내려준 결정이어서 더욱 아쉬웠습니다.


출처: 학교도서관저널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가지도 못하는 상태. 인간이 가장 불행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저는 그녀처럼 앞으로 갈 수도, 다시 뒤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도 주변 분들은 1월부터는 다시 공부하며 지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수능이 끝나고도 쉬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대학만 가면 무엇이든 해줄게, 라고 말씀하셨던 부모님의 이야기와 달리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제가 했던 것은 최대한 많은 장학금을 알아보고 과외를 준비하며 새로운 학부 공부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퇴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쉽게 자퇴 원서를 낼 수 없었습니다. 혹자는 서울대니 당연히 자퇴할 수 없었겠지, 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자퇴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서울대여서뿐만이 아니라 저에게 서울대란 제 12년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퇴를 해버리면 12년 동안 행복감 없이 고생하며 지내온 제 세월을 져버리는 것이기에 저는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는 알려진 바와 달리 전과가 꽤나 어렵습니다. TO가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복수전공을 한다고 해도 기존 전공 자체를 계속 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졸업 규정이나 배워야 할 내용은 계속 남습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학부를 마쳤습니다.


제가 만약 과거의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다면 다음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스토리나 문화와 관련된 전공을 갔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직장에 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다수이기 때문에 좋은 직장에 가거나 전문직의 꿈이 있다면 예술 쪽이 아니라 통상의 다른 학과나 상경계열로 진학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저에게 맞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서울대 내에도 제가 배운 전공 외에 흥미로운 전공들이 있었는데 가족들의 반대에도 전과를 시도해보거나, 전출이 꽤나 어렵긴 하지만 도전해볼걸, 하는 후회가 남습니다.


제가 입시를 할 때에는 선생님들도 학교의 입결을 더 중시했고 부모님들은 대학교의 네임 밸류를 더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전공은 아무거나 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학교에도 제가 보다 흥미를 갖고 공부할 수 있었던 미디어나 사회과학, 인문학 등 전공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후 책의 다른 부분에서 설명 드리겠지만 직장에 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공의 취업률을 걱정하기보다 제가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전공을 택했다면 대학에서 보낸 4년의 시간이 훨씬 더 유의미했을 것 같습니다.


출처: 탑티어


또는 제 어릴 적 꿈은 한의사였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한의대나 약대에 지원해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문과라서 당연히 안 될 것이라 생각했었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특목고 열풍이 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적이 되는 학생들이 특목고에 지원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눈총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문과라서 두려워하지 않고 남의 눈을 신경 쓰지도 않고 일반고에 진학해서 한의대나 약대를 갔더라면 어땠을까요. 한의대 교육이 매우 빡세기 때문에 대학 시절에도 열심히 공부해야 했겠지만 나름 유의미한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의대 열풍 때문만이 아니라 저는 정말 한의학이나 약학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공부가 재밌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지방 일반고를 졸업해 지역 인재 전형으로, 또는 내신 교과 전형으로 다시 수의대나 약대, 한의대 등을 진학하는 동창들의 경우를 많이 보면서 조금 부러웠습니다. 저도 수능을 잘 본 편이었고 일반고 내신으로 환산하면 한의대에 갈 수 있는 여력이 되었지만 이미 특목고를 갔던지라 수시 내신은 다시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능을 준비하는 길도 있겠지만 12년간 공부에 너무 지친 저는 수능을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메디컬만이 답은 아닙니다만 만약 정말 메디컬의 꿈이 있어서 N수하면서 수능을 통해 메디컬의 꿈을 이루신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런 후회도 무색할 만큼 이미 먼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의대, 약대보다도 스토리나 문화를 좋아하는 제 적성에 맞는 길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순 없지요. 그래서 저는 다시 저의 길을 찾아 보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과거에 대해 후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자신의 뜻에 따라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진로나 학업 등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타인의 의견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수의 의견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결국 그 선택으로 인해 결정된 세월을 살아가는 것은 자신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의견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본인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길을 잘 찾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학생 분들, 요즘 교육과정이 계속 개편되고 인공지능과 의대 열풍 등 다양한 영향으로 전공이나 진로를 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의 본질을 잘 지켜야 합니다. 결국 AI가 얼마나 발전할지, 의대 선호 현상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무소의 뿔처럼 그 길을 향해 나아간다면, 나중에 세상이 바뀔지라도 후회는 남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월을 즐겼다는 것을 알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껏 즐긴 것을 바탕으로 또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글들에서도 '나의 쪼대를 지키고 사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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