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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있는 밤 Aug 02. 2024

7. 한국과 외국 교육의 차이

폴리매스를 위한 다학제적 전공

제가 찾은 한국과 외국 대학 시스템의 차이점은 바로 같은 분야의 전공일지라도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대학들을 구글에서 서치해 봤었는데요. 직관적인 사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대학 옥스포드를 예시로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conde nast traveller


구글에 'Oxford undergraduate majors'라고 검색하면  A-Z courses라는 사이트를 볼 수 있습니다. 알파벳 순서대로 모든 학부 전공을 나열한 것입니다. 보시면 생물, 화학, 이렇게 구분되어 있는 한국과 달리 학부 때부터 이미 생화학(분자 및 세포), 생물학, 생물의학으로 구분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의대 같이 자격증이 나오는 학과 외에 기초과학 연구가 많지 않지만 영국 같은 경우 biomedical science라는 생물의학 전공이 인기가 많습니다. 줄기세포 등을 연구하면서 꼭 의사가 되지 않아도 생물학에 포인트를 두고 인간 생리에 대해서 연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공계뿐 아니라 문과라 여겨지는 전공도 매우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고전을 연구하는 'Classics' 전공도 5가지나 됩니다. 'Classical Archaeology and Ancient History,' 'Classics and Asian studies,' 'Classics and Modern Languages' 등처럼 말이지요. 전통이 깊은 학문인 'History' 전공도 다른 학문과 연관지어서 'Ancient and Modern History,' 'History and English' 뿐만 아니라 경제나 정치, 미술과 연관지어서 'History and Economics,' 'History and Politics,' 'History of Art'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흔히 한국에서는 '문사철'로 여겨지는 전공인 고전, 역사, 철학이 이렇게 세분화되어 전공으로서 중요도를 가지는 것은 놀랍습니다. 역사뿐 아니라 Philosophy 전공도 여러 가지의 선택지가 있는데요. 그중 '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라고도 하는 'PPE' 전공은 옥스포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경쟁률이 치열한 전공 중 하나입니다. 영국의 많은 총리를 배출하기도 했고 한국인 학생들도 일부 있지요. (여담이지만 <브리저튼> 시즌 2에서 '에드위나' 역할을 맡은 배우 '차리드라 찬드란'도 이 PPE 전공 출신입니다)


일반 인문학뿐 아니라 한국에선 중요도가 낮은 사회과학이나 수학도 살펴봅시다. 우리나라 학부에서 심리학을 배운다면 '심리학과'뿐이지만 옥스포드에서는 학부 수준에서부터 이미 'Experimental Psychology'와 'Psychology, Philosophy and Linguistics'라는 선택지가 주어지고 다학제적 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있습니다. 수학도 단순히 '수학과'가 아니라 수학을 컴퓨터 사이언스, 철학, 통계학과 연관하여 배우는 전공들도 존재합니다.


출처: the british education system in netherlands


이러한 교육의 차이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영국과 한국의 교육을 단적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사례가 영국 최고의 대학인 옥스포드였기 때문에 옥스포드만을 기준점으로 삼을 수는 없고, 영국 교육도 장단점이 분명합니다. 또한 교육이라는 것은 단순히 커리큘럼이나 제도만으로 평면적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교육은 해당 국가의 직업 환경, 진로 선택의 자유도, 임금, 생활 수준, 사회적 복지, 육아 정책, 빈부 격차 등 수많은 요소와 얽혀 있는 다면적인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옥스포드뿐 아니라 영국의 다른 대학교, 네덜란드, 북유럽 등 교육강국이라 여겨진 대학들의 학, 석사 과정을 알아보았고 미국이나 스페인 등 다른 국가 대학의 전공들도 알아본 결과 공통적으로 전공 선택의 폭이 넓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단순히 수학과, 철학과, 심리학과, 역사학과, 언론정보학과, 컴퓨터 공학과와 같이 단적이고 통칭적인 전공으로 나뉘지 않고 한 분야 내에서도 3~4개의 전공이 존재했으며 서로 다른 분야와 엮어서 전개되는 다학제적 전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석사 전공은 더욱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단적인 사례지만 스웨덴에서는 리코더학 전공도 있더군요. (물론 제가 형편상 유학을 간 것은 아니기에 실제 외국 대학 교육을 겪어보신 분들이라면 생각이 다르실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인지합니다. 너그럽게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한국의 교육도 지금보다 융합형 인재를 위해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더이상 전공이 취업을 보장하지도 않고, 결국 미래의 일자리를 찾으려면 다양한 것을 많이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을 수 있고 설령 그것이 취업이 아닐지라도 뚝심 있게 나아갈 원료와 일을 수행할 기반이 되는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대상을 수상한 박은빈 배우님의 말처럼 더 이상 '한 우물을 팔 필요가 없습니다.' 학생들도 '폴리매스,' 즉 다양한 것을 배우는 데 관심을 가지고, 거기서 얻은 지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모아서 정량적 분석을 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훨씬 더 잘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통찰력'이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저는 20대가 꽤 지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스스로 이런 폴리매스의 모습을 갈구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그런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 친구들은 경영, 심리 등 하나의 전공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던데 정작 저는 하나의 전공 말고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한 전공보다는 얕게 공부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저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학부건 석사건 정해진 하나의 전공을 따라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방황의 시간이 길었습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이제 교육계에서는 무전공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공부했을 때에는 그런 일이 없었고 자유전공도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저의 시기에 자유전공이나 무전공, 또는 서울대의 학생설계전공이 보다 보편화되었다면 저에겐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 영화 브런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문화콘텐츠학 등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요(실제로 드물지만 이런 전공을 만드시는 훌륭한 학우 분들도 계시더군요.)


출처: 미주중앙일보


가령 역사와 미디어를 좋아하기에 영국사 + 시대극을 결합한 커리큘럼을 스스로 설계해도 재밌을 듯합니다. <브리저튼>이나 <다운튼 애비>, <길디드 에이지> 등을 통해 영국의 리젠시 시대, 20세기 초 1차 세계 대전의 사회적 혼란, 그리고 19세기 메이플라워호를 통한 영국인들의 미국 이주를 배우는 것입니다.


또는 언어학의 측면에서도 영어를 가르칠 때 <Gilmore girls> 등 일상적인 드라마, Vogue interview 등의 영상 자료 등을 결합해 실생활에 익히 쓰이는 표현 위주로 스피킹 기술을 가르친다면 영문학과에서 꼭 언어학적 사례를 분석하지 않아도 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를 배우는 건 영문학의 기반을 다지는 것으로서 중요하지만 하버드 영문학과 교양 수업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를 가르치듯이 21세기 셰익스피어와 시인은 음악가나 아티스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대가 변했다는 증거에 맞게 교양 과목에서라도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외국은 FILM AND ENGLISH, FILM AND HISTORY, CINEMA AND MEDIA, TOURISM AND CULTURE, WELLNESS 등 다양한 과정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꼭 학위가 아니더라도 diploma, certificate 등 배울 수 있는 형태도 다양하고 lifelong learning and adult education이라 해서 평생교육이 확립되어 있습니다. 정규학위 자체도 매우 다양한 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전공은 영화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영어영문, 영어교육, 관광학 등 학문이 다학제적이지 않고 분절적이었습니다. 근 몇 년 동안 비로소 문과대학에서도 영화가 연구되고 미디어학과에서도 미디어아트나 한류를 주로 연구하는 추세지만 아직도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변화 속도는 느립니다. 이것은 이론과 실제가 분절되어 있고 대학교육의 효용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저와 같은 학생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전공으로 입학해 커리큘럼에 묶이는 게 아니라 직접 배우고 싶은 전공을 설계하고, 더 나아가 다학제적인 공부를 통해 폴리매스가 되고 싶은 학생들 말이지요. 실제로 융합학문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학문의 경계가 유연해져서 다양한 주제를 통합하여 공부할 수 있는 것. 저는 오히려 그것이 요즘 시대에서 요구하는 전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육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고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지요. 특히 직업 환경, 복지, 육아 등 사회 전반적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교육 혼자 개선되기는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선택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배우고 싶은 건 많지만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전공이 없어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여겼었고 상처도 받았습니다. 다양한 관심사가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저의 길에는 더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요.


학부에서 다양한 과목을 배우며 자신의 커리큘럼을 만들고, 심지어 석사에서도 서울대의 학생설계전공처럼 원하는 과목들을 모아 자신만의 전공을 만들어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세상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파격적일지언정 오히려 재미있는 연구가 많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 분들도 학교에서 최대한 많은 수업을 듣고, 원한다면 자유전공이나 설계전공 등 제도를 마음껏 이용해보시길 권합니다. 자신을 빨리 알고 자신의 분야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선례는 없을지언정 그만큼 자유로운 배움의 경험입니다. 저도 전공과 공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제 길을 찾고 있고 지금도 그 과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학생 분들의 방황의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며 용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사진 출처: https://www.google.com/url?sa=i&url=https%3A%2F%2Fm.blog.naver.com%2Fspne2020%2F222778626579&psig=AOvVaw00ymC9NahFydA2IZ5G62m5&ust=1721123732261000&source=images&cd=vfe&opi=89978449&ved=0CBcQjhxqFwoTCJif0djjqIcDFQAAAAAdAAAAAB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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