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와 조언은 다르다
이제 진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저는 대학교에 와서 오랜 시간 저의 길을 찾기 위해서 방황했습니다. 처음에는 학력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서 주변의 나름 강했던(?) 푸시 때문에 변호사, 회계사 등의 직업을 권유받았습니다. 코딩 적성이 없는데도 개발자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도 추천받았습니다. 오해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직업들은 모두 좋은 진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도 높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지요. 하지만 저에게 맞는 진로는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것은 부모님이 직장생활에 대한 미련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직장을 다니셨으나 사업을 하기 위해 직장 생활을 그만두셨고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으셨기 때문에 직장생활만이 올바른 진로라는 인식이 저희 집 기저에 깔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되고 싶으면 자식을 의대로 보내려 하지 말고 본인이 의사가 되라'는 교육학자의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려는 태도는 위험합니다. 물론 가이던스를 주는 것은 좋습니다. 아이들이 능력도 되고 적성도 맞다면 좋다고 여겨지는 진로로 가는 것은 아이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아이도 모르는 진로가 있을 수도 있지요.
예를 들어 요즘 메디컬 열풍을 들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여자는 크면 육아휴직이나 결혼 등 제약 조건이 많으니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고 수련 과정을 꼭 거치지 않아도 되는 한의사나 약사를 준비해 보는 건 어때,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아이가 성적도 되고 의학계에 꿈이 있다면 준비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가 싫다고 했을 때입니다. 더군다나 그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약 아이가 싫다고 하면 그때는 부모님들도 그 문제를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아이의 선택에 맡겨야 합니다. 가령 부모님이 의대만을 강요해서 아이가 어찌저찌 메디컬에 진학을 했더라도 도저히 그 과정을 견딜 수 없다면 어떨까요? 제가 서울대에 갔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미 너무 고생을 많이 했고 사회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진로이기에 차마 그 학교를 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계속 다니고 그 진로를 추구하는 모든 과정에서 아이는 매우 힘들 것입니다.
반대로 의대를 강요해서 12년간 노력했지만 만약 아이가 의대를 입학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까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던 아이는 방황할 것입니다. 실패자라는 자괴감을 가질 것이고 부모님으로부터도 외면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저찌 해서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더라도 단지 몇 달 쉬는 것만으로 자기 꿈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면 몇 년 간의 긴 방황이 계속되고 새로 뭔가를 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노력한 세월에 대한 매몰비용을 생각하게 되고, 이미 많은 노력을 쏟았기에 번아웃이 오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저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부모님을 설득시키기를 포기했고 그저 저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부모님도 이제는 저의 방황의 시간을 이해하시고 제가 어떤 길이든 찾으면 지지해 주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길을 꼭 타인에게 설득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설령 그 분들이 부모님이시거나 가족 분들이실지라도 때로는 심적인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시간을 두려워하거나 외로워하지 마시고 자신에게 어떤 길이 맞을지 묵묵히 나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