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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있는 밤 Sep 10. 2020

Carpe Diem의 향이 나는 카페《카페 벨 에포크》

현재는 힘이 있다는 희망

찬찬한 호흡으로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맛보았는가. 잠시 숨을 고르고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보자. 어느새 누군가의 자녀에서 부모가 되어 어머니 아버지의 감사함을 느끼고 자녀들을 바삐 키우다 보면, 세월 빠르다는 옛말 하나 틀린 것 없음을 느낀다. 그렇게 앞만 보며 달리다가도 언젠가 우뚝 멈춰서는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과거를 되돌아본다. 그중에서도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어느새 메인 디쉬도 서서히 마무리가 되어 간다. 우리의 17번째 영화 요리《카페 벨 에포크》에서는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향기처럼 퍼진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를 말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아드리아나'가 벨 에포크 시대를 동경했듯이 사람들은 과거의 좋은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특정 시대가 아닐지라도 인생 속 과거의 한 시점을 다시 경험해보고 싶을 수도 있다.《카페 벨 에포크》의 '빅토르'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젊었을 적 첫사랑과 함께한 시절을 다시 지나고 싶었다. 


'빅토르' 캐릭터 포스터 ㅣ 네이버 영화


 빅토르는 아내 '마리안'과 3~40여 년의 결혼생활을 보냈다. 마리안은 만화가로서 생활비를 잘 벌지 못하는 남편에 대해 불만을 품었고 외도를 하기에 이른다. 결국 빅토르는 마리안의 손에 살던 집에서 내쫓기게 된다.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그에게 아들 '맥심'의 친구인 '앙투안'의 초대장이 들어온다.


 잘 나가는 영화 사업가인 맥심은 앙투안에게 의뢰해 아버지 빅토르에게 독특한 문화체험의 기회를 드린다. 앙투안 또한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해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하룻밤 동안의 시간여행'이 프로그램의 테마였다. 고객이 경험해 보고 싶은 과거의 시점이나 시대를 이야기하면 앙투안의 회사에서 그때의 배경과 똑같이 세트를 만들어주고 고객은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빅토르의 마음속에는 다시 가고픈 과거가 명확히 있었다. 바로 아내 마리안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다. 


'카페 벨 에포크'에 앉아 있는 빅토르 ㅣ 네이버 영화


 그래서 앙투안은 빅토르가 마리안을 처음 만났던 '카페 벨 에포크'를 꾸며준다. 그곳은 몇십 년 전의 장소이기에 사람들이 신문을 보고 오프라인 파티를 즐기는 등 오래된 문화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빅토르에게 가짜로 만들어진 그 현실이 현재보다 중요했다.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마리안 역을 맡은 배우 '마고'이다. 앙투안의 연인이기도 한 마고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마리안의 역할을 해낸다. 마리안은 원체 자유분방한 사람이었기에 과거에도 낯선 이의 앞에 앉아 서슴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처음 보는 빅토르에게도 말을 붙였다. 둘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에게 빠졌고 함께 카페에서 하루를 즐겼다. 내성적인 빅토르는 카페에서 사람들과 흥겹게 춤을 추는 마리안을 잊지 못했다. 이렇듯 다채로운 마리안의 역할을 마고가 완벽한 싱크로율로 연기한다. 


마고와 빅토르 ㅣ 네이버 영화


 빅토르는 마고를 보며 과거의 마리안과 똑같은 대사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이런 빅토르를 통해《카페 벨 에포크》는 '가짜이지만 진짜 같은 현실'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준다. 앙투안이 꾸며준 카페가 워낙 사실적이라 빅토르는 점점 카페 벨 에포크를 실제라고 믿고 싶어 한다. '카페 벨 에포크'는 연극 속의 현실이지만 빅토르에게는 진짜 같은 현실로 느껴진다.


 결국 빅토르는 마고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착각에 이른다. 아마 연극인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는 힘이 없지만 빅토르는 그리운 순간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세트 속에 계속 머무는 빅토르 ㅣ 네이버 영화


 이런 빅토르의 절박함을 알면서도 연극은 계속 펼쳐진다. 영화 전반적으로 마고와 앙투안이 나오는 장면들은 모두 가짜로 꾸며진 시나리오이다. 그래서 《카페 벨 에포크》에서는 빅토르의 아이러니와 더불어 마고가 겪는 심리적 모순이 표현된다. 


  마고는 배우로 살아가는 것에 모순을 느낀다. 시나리오에 따라 가상현실을 진짜처럼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고는 앙투안의 지시에 따라 카페 벨 에포크를 떠나고 나서도 가정집처럼 꾸며진 다른 세트장에서 연기를 한다. 


 그 가짜의 집에 빅토르가 찾아오는데, 그는 그곳에서 누군가의 아내를 연기하는 마고를 본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착각을 버리고 상처 받은 채 세트를 떠난다. 마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앙투안의 계획에 화를 내고 배우로서의 삶에 아이러니를 느낀다. 


계속되는 연기에 화가 난 마고 ㅣ 네이버 영화


 이처럼 《카페 벨 에포크》는 빅토르와 마고의 방황을 보여주며 '현재'의 중요성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품고 산다. 때론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현재를 붙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고 넌지시 말해준다. 작품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데 빅토르와 마리안의 사이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결국 현재를 해결하는 것은 현재뿐이다. 과거가 아무리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어도 그것은 지나간 시간일 뿐이다. 카페 벨 에포크는 과거를 보여주었지만 빅토르는 '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는 메시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빅토르와 마리안이 카페 벨 에포크에서 다시 만난 장면은 현재가 힘이 있다는 것을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카페 벨 에포크' 일러스트 스틸 ㅣ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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