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사랑했던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했던 딸
부모님께 받은 내리사랑은 놀라운 힘이 있다. 그것은《온워드》처럼 소중한 누군가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자녀의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하며 그들이 새롭게 관계를 시작할 용기를 준다. 동시에 자녀가 부모님께 드리는 치사랑도 내리사랑만큼이나 소중하다. 부모님과 자녀가 서로 인생의 지지대가 되어 살기 때문이다. 이번 요리《파더 앤 도터》는 자녀를 사랑했던 아버지만큼 아버지를 사랑했던 자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요리의 맛은 아버지 제이크와 딸 케이티가 함께 먹었던 따뜻한 핫도그 맛이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 새살이 돋아 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파인 자리를 새살로 덮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이번 영화 요리 《파더 앤 도터》에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윗세대로부터의 내리사랑, 그리고 새로운 인연이 불어넣는 용기. 이들이 있다면 황량한 화분에서도 사랑의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다.
《파더 앤 도터》에서 시간의 흐름은 거꾸로 되어 있다. 성인 역할의 '케이티 데이비스'가 어렸을 적 아버지 '제이크 데이비스'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방식이다. 제이크 데이비스는 영화 제목과 같이 '파더 앤 도터'라는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이다. 아버지와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며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케이티는 어릴 적 아버지와 이별하고 마음에 구멍이 있는 어른으로 자라난다.
그녀는 심리학을 전공한 후 사회복지사로서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지만 정작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을 잃었다. 케이티는 스스로 자기 파괴적인 사람이라 말하고 보통 때에는 'feel nothing, '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는 역순행적 구조를 가지지만 시간이 교차 편집된다. 아버지에 대한 케이티의 기억, 그리고 사랑이 없는 어른 케이티의 삶. 특히 과거의 제이크와 현재의 케이티는 비슷하다. 둘 다 무채색의 환경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과거 제이크는 사고로 아내를 잃는다. 그리고 부유한 이모네가 조카인 케이티를 입양하고 싶어 하자 제이크는 딸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길을 택한다.
한 학기에 1달러를 받고 명문 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생들의 글쓰기 수업 강사가 된 것이다. 그렇게 제이크는 케이티가 집 근처의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게 도왔지만 생계를 위해 매일 글쓰기에 전념해야 했다.
제이크의 과거에 이어 어른이 된 케이티가 상담사 일을 하는 현재가 펼쳐진다. 그녀는 부모를 잃고 충격에 빠진 루시와 소통에 나선다. '소통(疏通)'은 서로 뜻이 통해야 하는 일이기에 마음을 여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 하지만 루시가 닫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케이티는 지름길 대신 긴 굽이길을 택한다. 두 사람은 2달 동안 함께 대화하고 그림도 그리고 공원에 간다. 그리고 2달 뒤 케이티가 상담을 그만두게 되자 루시는 '싫어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변화는 마음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케이티에게 처음으로 '온기'라는 감정이 느껴지게 한다.
케이티는 루시를 만나며 조금 변화하지만 여전히 마음의 상처를 지고 산다. 그래서 어른이 된 케이티가 나오면 항상 회색 옷에 무채색 느낌의 연출이 이루어진다. 어른 케이티도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제이크가 나올 때 관객들은 더욱 큰 슬픔을 느낀다. 어린 케이티는 아버지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제이크는 딸을 학교에 보내고 뒤돌아서선 소설에 쏟아지는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이런 제이크의 노력을 모르는 이모부는 제이크에게 '입으로는 사랑한다 말하면서 아빠 노릇 못 해주는 것은 최악의 위선이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이크의 고군분투를 모두 지켜본 관객은 그의 말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안다. 제이크는 방과 후에 늘 케이티를 데리러 갔고 저녁엔 같이 음악을 들었다. 딸이 심술이 나면 풀어주려 장난을 쳤고 생일 축하 파티도 해 주었다. 그렇게 제이크는 케이티에게 '전부'를 주었다. '아빠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케이티에게도 '전부'가 되었다.
제이크가 케이티를 돌보는 장면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케이티가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운 날이었다. 흔한 스토리지만 그만큼 보편적이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또 제이크가 케이티의 학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원고를 썼던 장면은 영화를 보고 난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제이크는 딸과 함께 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침에 케이티를 데려다준 후부터 학교 수업을 다 듣고 나올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썼다.
극 중에서 그는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것 말고도 딸에게 위로를 해준다. '아빠에게 케이티는 인생 최대의 행복이자 삶의 이유야.' 이모부가 양육권을 위해 제이크를 찾아왔을 때에도 그는 솔직하게 생각을 표현한다. '엄마를 막 잃은 슬픔에 힘들어하는 한 아이를 아버지로부터 떼어내는 것,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가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 케이티를 떼어내는 것, 그것이 당신이 하는 일이야.'
이모부네가 케이티에게 양질의 환경에서 더 좋은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었기에 그들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제이크가 말했듯이 케이티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잃어야 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코 떠나가지 않으리라 믿었던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아버지와 이별한 후부터 늘 혼자 지낸다.
그럼에도 케이티는 성인이 된 후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준다.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운 것처럼 루시에게도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준다. 여기서 사랑의 속성을 한 가지 알 수 있다. 과거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물을 가득 채운 장독대는 구멍이 뚫리면 그대로 새기 마련이지만, 땅에 묻힌 씨앗에 물을 충분히 준다면 더 부어주지 않아도 싹이 난다. 씨앗이 받은 물을 머금고 자라나기 때문이다. 케이티는 그런 씨앗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빈 우물'이라 표현했지만 아버지의 보살핌이 한 번 부어진 케이티는 받은 사랑을 스스로 펌프질해 루시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늘 케이티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 그 상처 때문에 케이티는 남자 친구를 새로 사귈 때마다 지레 겁먹고 도망치곤 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 '카메론'이 나타난다. 케이티는 조금이라도 불안해지면 다른 사람을 만나 공허함을 채우려 했지만 카메론은 그녀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해준다.
카메론의 지지는 결국 케이티의 용기를 낳았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이별 후 10년 만에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카메론을 찾아가 '사랑한다고 진작 말해줬어야 했는데, 그동안 모든 것에 고마웠다'라고 털어놓는다.
마음의 상처는 극복하려 애쓰는 데서 치유되지 않는다. 윗세대에게서 받은 사랑이 자신에게 남아 다른 이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가고 새로운 인연이 용기를 부여해 줄 때 마음에 새 살이 돋는다.
사랑에 상처 받은 사람이 다시 누군가를 아낄 힘을 얻는다는 것은 놀라운 과정이다. 그래서 《파더 앤 도터》에서 아버지가 사랑한 딸, 딸이 사랑했던 아버지,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은 더욱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