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했어요

by 감자발

칠순을 바라보시는 우리 우아한 장모님은 자주 깜빡깜빡하신다.

정수기로 1L 물통에 물을 담으시다가 어디 가셨는지.

“여보! 물 넘치잖아!! 그걸 못 참고 다른 걸 하고 있어!! 아이 참나”

바닥이며 어디며 물이 철철 넘쳐흘러야만 끝이 난다.


냄비에 요리를 하다가도,

“여보 탄내 난다!!! 아이고 불을 쓸 때는 신경 좀 쓰지~”

뒤늦게 불을 끄고 부랴부랴 움직여 보지만 이미 온 집안에 탄내가 진동을 한다.

장인어른이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시커멓게 탄 냄비를 뒤처리 하셨다.


한번은 낮잠을 주무시는데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음식 태우세요?~ 민원이 들어와서요!!!”

“예?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저런 죄송합니다~”

찜기에 올린 고구마가 새카맣게 변하는데 곤히 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밖에서는 이웃들이 탄내가 진동을 한다고 불나는 거 아니냐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이래저래 민폐가 아닐 수 없었다.


큰 사건이 터질 뻔한 적도 있었다.

아내랑 결혼 전 부동산을 운영할 때 작은방과 부엌이 딸려 있었다.

부엌에서 음식을 자주 해 먹곤 했는데.

볼일을 보기 위해 와이프와 장모님은 차를 타고 일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핸드폰이 울리자 전화를 받은 장모님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부엌에 가스불 켜고 외출하신 겁니까? 지금 난리 났어요!!”

“네?! 어머나... 이걸 어째? 주전자!!”

상가 주인한테 전화가 온 것인데 시커먼 연기가 상가 주변을 덮었다고...

지나가던 행인이 급하게 119에 신고를 했고 소방차가 출동했다.

그야말로 주변은 한바탕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행히 상가 주인과 소방대원들이 잘 대처해서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되었지만

큰 화재로 번질 뻔한 아찔한 사건이었다.

욕을 먹고 당장에 쫓겨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이제라도 그때 그 상가 주인의 깊은 배려에 감사드린다.

보리차를 끓이기 위해 주전자를 올려놓고 가스불을 켜 놓은 채 그냥 나오셨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후로도 장모님의 냄비는 멀쩡한 날이 없었고 물통의 물은 주기적으로 줄줄 흘렀다.

고구마, 감자, 만두, 각종 찌개 등 시커멓게 변하는 게 이제는 놀랄 일도 아니었다.

옆에서 이 광경을 목격하고 묵묵히 환기시키고 뒤처리 하시는 장인어른이 안쓰러웠다.


“여보 정신 좀 차리고 살아!!”

“너는 실수 안 하냐!!!”


역시 우리 장모님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무시무시한 건망증...

치매랑도 무관하지 않다는데..

건망증에 좋은 게 있는지 좀 알아봐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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