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송사 FOX의 장수 프로그램 <심슨 가족(The Simpsons)>은 1989년 12월 시즌 1을 시작으로 현재 32시즌을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 시트콤입니다. 시즌마다 만화적 설정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주, 스프링필드를 배경으로 호머(아빠), 마지(엄마), 바트(아들), 리사(딸), 매기(딸)로 구성된 심슨 가족이 겪는 에피소드들로 채워지는데요, 특히 미국의 문화 전반에 대한 풍자로 가득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소적인 대사도 종종 등장하는데, 때문에 정치인, 배우, 가수 등 유명 인사들이 특별출연하기도 하지요. 오늘은 <심슨 가족>에서 패러디된 명화 몇 점을 (에피소드 방영 순서와는 상관없이) 그림이 그려진 순서에 따라 간략하게 살펴볼까 합니다.
이탈리아의 초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비너스의 탄생>입니다. 비너스(아프로디테)는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났지요. 비너스가 탄생하자 봄바람 제피로스와 미풍의 여신 아우라가 바람을 일으켜 비너스를 키테라 섬으로 데려갑니다. 해변에 도착한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를 계절의 여신 호라이 중 한 명이 봄에 피는 꽃들로 장식된 옷으로 맞이하네요.
<심슨 가족>의 악역(?) 번즈 사장의 차에 치인 바트의 영혼이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색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국으로 향합니다. 침을 뱉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들은 악동 바트, 보란 듯이 침을 뱉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데요 (하하). 바트가 도착한 지옥의 기괴한 배경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쾌락의 정원> 중 오른쪽 패널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15세기 북유럽 태생의 보스는 미술사에서도 독특한 인물로 평가받는 화가로,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과학, 합리성과 같은 시대의 특성과는 거리가 먼 화면을 보여줍니다. 특히 <쾌락의 정원>은 통상적으로 종교미술에서 많이 활용되는 세폭 제단화(triptych) 형식으로 그려졌고, 내용 또한 아담으로부터 이브가 탄생하는 낙원(왼쪽 패널) - 지상에서 여러 가지 죄를 짓고 있는 인간 군상(가운데 패널) - 죄를 지은 인간들이 가게 될 지옥(오른쪽 패널)으로 이루어져 종교적 교훈을 전달하는 그림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기묘하지요. 바로 이러한 '기묘함' 때문에 보스는 20세기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준 화가로 꼽히기도 합니다.
양손에 돈을 움켜쥐고 서 있는 호머의 뒤로 렘브란트(Rembrandt)의 <포목상 조합의 이사들>이 보입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예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을 가진 '바로크' 양식은 역동성과 강렬한 명암 대비 등을 통해 극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특성을 보여주는데, 렘브란트는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연극 무대와 같은 화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포목상 조합의 이사들>처럼 집단초상화의 성격을 가진 그림들을 많이 그렸어요.
바트에게 잠깐 지옥을 보여주었던 번즈 사장이 술집의 종업원으로 분했습니다. 인상주의 전시회에는 작품을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지만 인상주의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현대미술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을 패러디한 그림입니다. 마네는 역사적이거나 혹은 종교적인 주제가 아닌 일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 내었고, 특히 -르네상스 미술 이래로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하나의 규칙처럼 자리매김한- 원근법으로 그려져서 3차원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환영주의를 거부하고 캔버스가 가지는 2차원의 평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림을 그렸다는 데에서 현대성의 단초를 마련합니다. 평면이라고 하기엔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의 종업원 뒤로 공간이 펼쳐져 있지 않은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업원의 뒤에 놓인 것은 그녀 뒤로 펼쳐진 '3차원의 공간'이 아닌 '평면적인 거울'입니다. 그림 뒤로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 앞에 있는 공간을 거울에 비친 것처럼 표현한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지점, 전통적인 회화 법칙을 답습하지 않으려 했던 마네의 태도는 회화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앙리 루소(Henri Rousseau)가 그린 <잠자는 집시>의 인물과 똑같은 자세로 호머가 누워 있습니다. 루소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했던 작가인데, 이 시기를 대표하는 화파는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입니다. 인상주의자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겠다는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대상의 외면을 중요하게 여겼는데요, 상징주의자들은 인상주의가 '어떻게 보이는가'에만 집중한 나머지 인간의 정신적 세계에 대한 탐구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 예를 들면 인간의 꿈, 욕망, 감정과 같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대상을 탐구하게 됩니다. '꿈'에 관심이 많았던 상징주의자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역시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지요.
<심슨 가족>의 재기발랄함을 더해준 명화 패러디, 어떤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