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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Nov 07. 2024

헤어질 결심 그리고 환승 연애

키티에서 쿠로미로!

나의 헬로키티 사랑은 고등학교 때쯤 시작된 거 같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아주 소박하게 헬로키티가 그려진 스티커 몇 장을 사고는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애 같다고 혀를 끌끌 차던 엄마가 시장표 헬로키티 솜이불을 손수 사주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키티 사랑은 쭉 이어졌다. 산리오 정품 키티가 그려지면 공책, 볼펜, 필통, 우산 등의 가격은 다른 것들의 2배 정도라 감히 사지 못했던 시절을 지나 하나둘씩 야금야금 사기도 했다.


서른을 바라보며 결혼을 준비할 때도 키티를 너무 좋아했다. 다행히 내 취향을 존중해 주고, 오히려 응원해 주는 신랑이었기에 ('키티'만 붙으면 되니까 선물하기, 기분 좋게 해 주기 단순하다고 전 남친, 현 신랑은 좋아했었지...) 혼수도 키티로 준비했다.



키티 이불, 키티 서랍장, 키티 시계

키티 믹서기, 키티 토스티기, 키티 커피 메이커

키티 휴지통, 키티 가습기, 키티 선풍기,

키티 국자, 키티 뒤집개, 키티 밥상 등등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는 미니마우스, 미키마우스에 아주 환장을 했었다. 키티를 알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좋아하긴 한다 ^^;;


그러다... 세월의 흐름에 고장 난 키티 혼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장식품으로만 두어도 너무 예뻤던 아이들이지만 공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미니멀라이프'를 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물건에 대한 추억과 집착으로 한동안은 비우지 못했다. 다른 물건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인데 헬로키티 앞에서는 더없이 무력해졌다.



오늘!! 드디어 큰 결심을 했다. 보고 있어도 예전만큼 엔돌핀이 쏟아지고, 행복감에 휩싸이지는 않기에 비우기로 했다. (그저 쌓인 먼지만 더 신경 쓰일 뿐...)




- 신혼집을 더 환하게 보이게 했던 시계

(그러나 고장 난 지는 한참 지남...)

- 매일 사랑을 샘솟게 해 주었던 키티 천사님 전화기

(실제 전화기 작동은 되지 않음.)

- 신랑이 나를 위해 발품 팔아 구한 키티 컴퓨터 본체!

(이것도 고장 났음.)




떠나보내는 길이 아쉬워 연신 사진을 찍어댔지만

웬일인지 그렇게 쓸쓸하지는 않다.


사실... 작년부터 더 좋아진 아이가 생겼다...

바로 키티와 같은 산리오 친구 '쿠로미'다!



9살 딸아이와 우리는 쿵짝이 잘 맞다.

엄마를 위해 쿠로미 연필과 자도 사 주고,

(신랑은 쿠로미 마우스 패드를 사 줬다.)

서로 판박이도 해 준다.



키티도 있었지만...




올 겨울 대비 미리 털실내화도 각 1켤레씩 준비했다.


키티 혼수처럼 부피가 큰 물건들이 아니라, 작고 꼭 필요한 물건들이라 합리화시키며 나는 키티와 헤어질 결심을 고, 쿠로미와 환승 연애를 인정한다.


기분 전환에는 쿠로미 보는 게 최고 ♡



작고 꼭 필요한 물건들이라지만 그 공간 또한 무시할 수 없으니, 다른 것들을 또 부지런히 비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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