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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May 06. 2021

40대 어른이의 어린이 날

출퇴근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지 두 달이 지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살겠다는 결심은 뭔가 위대해 보이고 멋있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물길을 온전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고랑을 파기 위해서는 인내와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덕분에 출간 계약도 하게 되었고, 글쓰기와는 다른 분야이지만 강의 영상도 하나 찍게 되었다. 작은 결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아, 이 자그마한 결실을 얻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유혹을 뿌리쳤던가!'

'또한 얼마나 많은 과거의 내가 손 내미는 타협의 손을 붙잡고 싶었던가!'


어쨌거나 숱한 번뇌와 유혹을 물리치며 나에게 집중했던 두 달을 보내고 5월을 맞이했다. 


5월은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 등등 행사가 참 많다. 이 중 내가 챙겨야 하는 날은 5월 8일 어버이 날 뿐이다. 지금은 비록 엄마한테 풍족하게 용돈을 드릴 형편이 못 되지만 자식 된 도리로 찾아가 뵈어야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를 뵈러 간다기보다 엄마가 해 주시는 밥을 먹고 싶은 게 주된 목적이다. 혼자서 끼니를 챙기기는 하지만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밥은 언제나 그리운 법이니까. 


엄마한테 주중에 한 번 내려가겠다고 얘기했고, 언니한테도 얘기한 참이었다. 그런데 교통편 예약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마산까지 왕복으로 다녀가려면 적어도 10만 원 이상은 드는데 고정 수입이 없는 나에게는 큰 지출이었기 때문이다. 마음과 현실의 간극을 느끼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계속 고민 중이었다. 


5월 4일이 되었다. 오전부터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렸다. 원고 집필과 강의 커리큘럼을 짜며 비 오는 날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고 있었다. 오후에는 빗소리가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았다. 엄마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 엄마는 산책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마산에도 비가 오고 있지만 집에 있기 갑갑해서 나와 계신다고 했다. 엄마한테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내려가겠다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망설임이 30% 정도 줄어들었다. 


오후 3시쯤 남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이번 주 내려온다고 들었다며 언제 올 건지 물어보았다. 목요일이나 금요일 즘 갈 것 같다고 얘길 하니 그럼 금요일에 엄마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한다. 맞벌이를 하는 올케와 퇴근 후 함께 엄마 집으로 오겠다고 한다. 알았다고 얘기하고 금요일 전에는 내려가야겠다 생각했다. 저녁 약속을 했으니 가긴 가야 한다. 약속을 못 지켜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언행일치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망설임이 55% 줄어들었다. 


4시즘 작은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언제 내려올 건지 물어본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갈 거라고 대답했다. 역시 직장에 다니는 언니는 5월 5일이 휴일이니 그때 내려오면 같이 놀러 갈 수 있다고 저녁에 내려오라고 한다. 출퇴근 걱정이 없으니 며칠이 되었건 몇 주가 되었건 마산에 내려가 있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그래도 내가 지키고 있는 루틴을 깨고 싶지 않아 혼자서 서울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계속 망설이며 쉽게 결정을 못 내리자 언니는 나의 망설임에 쐐기를 박는 말을 던진다. 


"차비 보내줄 테니까 내려와."


언니는 이 말을 하고 통장으로 기차표 값을 바로 보내주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언니는 명령을 한 게 아니라 혼자서 휴일을 보낼 동생이 안쓰러웠을 것이다. 언니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때 시간이 4시 30분이었다. 5시 30분 기차는 못 탈 것 같고, 6시 5분 기차를 예매했다. 집에서 서울역까지 40분 정도 걸리니 서둘러 준비하면 충분했다. 


짐 챙길 것도 많지 않아서 노트북과 책 한 권을 챙기고, 옷을 입고 집 정리를 대충 서둘러한 후 집을 나섰다. 비 오는 서울을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망설이던 시간이 안쓰러울 만큼 나는 신이 났다. 


휴일 전날이라 그런지 서울역에는 사람이 많았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비가 왔다. 빗소리가 좋았다. 잠깐 눈을 붙인 후 그동안 마무리하지 못했던 책을 집중해서 읽었다. 버스나 기차에서 책을 읽으면 집중이 잘 된다. 다음에는 독서를 위해 일부러 기차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산에 도착했을 때 비바람은 더 심해져 있었다. 거친 비를 뚫고 엄마 집에 드디어 도착했다. 설날에 다녀 갔지만 오랜만에 오는 것 같았다. 엄마가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혼자가 아닌 집에서 편안하게 잠들었다. 


어린이 날에는 엄마를 모시고 언니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전망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함께 커피를 마시며 우리 집에는 어린이가 없어서 특별할 것 없는 날이라고 얘기를 나누었다. 대신 올 가을에 조카가 태어나면 내년에는 더 특별한 어린이 날이 될 거라고 입을 모았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외톨이 같았다. 엄마 아빠는 무뚝뚝하셨고, 언니들은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항상 거리감이 느껴졌다. 남동생은 개구쟁이에다가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해서 마음속으로 많이 질투하고 미워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40대가 되니 우리 가족 모두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의 사랑과 믿음과 후원으로 나는 늦은 나이에 홀로서기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사랑을 받기만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몇 배로 돌려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하고 있다. 언제 즘에야 이루어질지 알 수 없지만 진심을 담은 확언이기도 하다.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된 데에는 가족의 힘이 컸다. 그들의 사랑과 응원으로 43살의 어른이의 어린이 날은 맑고 화창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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