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지기 마야 Aug 07. 2021

두렵지만 진심을 마주하기

매일 눈물이 나던 시기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엄마 집에 머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때였다. 가족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미안함과 무너진 자존심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하루는 거실에서 엄마와 TV를 보는데 갑자기 울컥하고 목이 메어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얼른 눈물을 훔치며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의자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삼켰다. 소리 내어 울면 차라리 속이라도 후련할 텐데 거실에 계신 엄마가 신경 쓰여 그럴 수 없었다.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려고 애를 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소리 내어 울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더 큰 서러움이 밀려왔다. 눈물을 삼키고 감정을 추스르려 할수록 오히려 알 수 없는 슬픔이 더욱 복받쳤다. 내 신세가 처량하고 서글펐다. 


내가 선택한 결과이고 현실이라는 걸 너무 잘 알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나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꼴좋다.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와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뭘 바란 거니? 하긴 네가 뭘 제대로 한 적이 있긴 했었니? 네가 그렇지 뭐.'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나는 더 쪼그라들었고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 나는 늘 그랬어. 미래에 대한 준비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이야. 수습도 못할 거면서 늘 일을 벌이고 사고를 치는 그런 사람이었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비난하는 목소리에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신감과 자존감은 이미 바닥을 쳤고 나의 감정은 무겁게 가라앉아버렸다. 아무리 생각을 바꾸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생각으로는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다


잘하고 잘 못하고를 떠나 그냥 솔직하게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내게는 없는 것 같았다. 가족에게는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말을 해도 정말 솔직해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가족들의 생각을 의식하고 있었고,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복잡한 내 마음을 털어놓지 않으면 정말 미칠 것 같은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을 때 나는 선택했다. 나에게 털어놓자고. 내 안에서 들리는 비난의 목소리가 계속 나를 비웃고 있었지만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최대한 솔직해지자고 다짐하며 노트에 내 마음을 적어 내려갔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

집에 내려오기 전에도 눈물이 났었다. 이유는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어서였다. 초라한 모습으로 가족들 앞에 서기가 창피하고 자존심 상했기 때문이다. 여행할 때는 내가 돈 많은 백수 같아서 그나마 날 포장할 수 있었는데 가족들 앞에서는 나의 민낯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기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루 남겨둔 날부터 눈물이 났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곳은 가족들과 엄마 집이니까.

집으로 내려가는 KTX에서도 눈물이 났었다. 보이기 싫은 내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 엄마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다짐하며 마음을 추스르며 눈물을 참았다.

다행히 마중 나와 있는 엄마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집으로 돌아온 걸 좋아하셨지만 가족은 가족이다. 10년이란 세월의 간극과 마흔이라는 내 나이가 이곳에서 대단히 환영받을 수는 없었다. 집이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온 지 고작 3일째인데 내 마음은 왜 이리 불편할까? 


집에 오기 두려웠던 이유는 나의 민낯을 나에게 보여주는 게 가장 겁이 났던 거다. 자존심도 무너지고 주머니도 빈털터리니 그럴 수밖에. 

조울증 마냥 오락가락한다. 

내가 바라고 내가 원했던 나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은 무엇일까?

내가 스스로 선택한 나의 결심에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까?

나는 나의 인생을 사랑할 수 있을까?



솔직한 심정을 글로 써 내려가며 내 안에 있는 두려움과 여러 가지 의문을 마주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을 발견했다. 가족들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나 자신에게 나의 민낯을 들킬까 봐 더 겁이 났던 것이었다. 솔직해지자고 다짐을 했더니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던 진심이 그제야 종이 위에 글씨로 드러났다. 한 번도 꺼내어 보지 못한 나의 진심을 글로 쓰고 읽으며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진심으로 나에게 솔직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늘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만 같았다. 그런 모습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보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인정받기 위해 더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애를 썼고 실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많은 기준을 들이대며 나 스스로를 평가하고 비판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의 내면은 점점 주눅 들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동료나 상사가 칭찬을 해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 자신은 나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을까? 나란 사람은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일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판단으로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도록 배웠다. 스스로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거나, 자기 자신이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부부 심리치료사인 롤프 메르클레와 도리스 볼프가 쓴 <감정 사용설명서>에서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이는 주된 이유는 거부당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거나, 그 생각대로 행동하다가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한다고 했다. '우리는 왜 이런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부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아야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칭찬을 받아 본 적은 별로 없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질문에 대답을 잘 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꾸중을 들을까 봐 늘 겁이 났다. 자연스럽게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질문을 받으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창피했다. 어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과 감정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의 진심보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버렸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내 마음이지만 그 안에 있는 진심을 아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자신감은 점점 사라졌고, 다른 사람의 인정만 바라는 에고가 나의 내면에 자리 잡아 버렸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만약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인정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면 된다. 나의 가치는 타인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 정하고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길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이상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솔직한 마음을 글로 쓰니 눈물은 어느새 멈추어 있었다. 나의 마음을 읽으며 늘 무언가를 해내어야 하고, 답을 내려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도 내려놓았다. 그저 나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어야 한다는 마음만 남아 있었다. 진심을 마주하기 두려웠던 이유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그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였다.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막연히 두려웠다. 두렵지만 종이 위에 꺼내어 놓은 마음은 더 이상 막연하지 않았다. 형체가 있는 글씨는 막연한 두려움을 몰아내고 선명하고 또렷하게 나의 진심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나의 민낯이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그때 조금 생겨났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겠지만, 어쩌면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 '두렵지만 진심을 마주할 용기'가 더 절실한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어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을 아직도 책으로 배우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