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제작소(20화)

신문을 통제하다

by MRYOUN 미스터윤

부모와 함께 강원도로 돌아온 박무열은 큰 고민과 함께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결코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고신국을 만나기로 했다.


고신국이 사는 집은 큰 정원이 있었다. 집은 한옥으로 지어졌으며, 강원도에서 가장 큰 고급 저택이었다.

집 안에서 누군가 대문까지 나와서 말했다 "누구세요?", 박무열은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국이의 친구 무열입니다.", 정원에서 책을 보고 있던 신국이가 문을 열어주라고 말했다.


고신국의 저택 안에서 일하는 집사와 하인들이 여러 명 있었으며, 정원을 관리하는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고신국은 말했다. "무열 자네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인가?" 어제저녁에 만난 후,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박무열은 자신이 간밤에 생각하였던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박무열의 얘기를 듣고 나서 고신국은 이렇게 대답했다. "혹시, 자네 그 백호라는 사람과 만나서 무슨 얘기를 들어서 그런 것인가?", "어제 양조검사소에서 그를 만난 후부터 뭔가 깊게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이던데..."


박무열은 말했다. "내 동생 현주가 죽기 전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맞는 것 같았네.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뭔가 현주의 죽음이 대한제국의 운명처럼 보였다네."


고신국이 대답했다. "자네, 너무 크게 확대해서 말하는 것 아닌지 싶어... 현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우리들 모두 충격을 받았고 가슴이 아픈 상황이네... 그렇지만 대한제국은 아직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통제하고 모든 것을 장악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말일세..."


박무열은 대답했다. "나는 뜻을 같이할 사람들이 필요한 상황이네...", "신국 자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고신국은 말했다. "난 항상 자네의 부탁을 기다리고 있지... 그러나 이번 일은 좀 지켜보면 어떨까?"


고신국이 이어서 말했다. "이틀 전에 발생한 자네의 동생일에 대해서 경기지역의 대표들이 숨기고 있지는 않을 것이야. 그들이 신문사에도 알리기 시작할 것이고, 곧 조선에서는 의병들이 들고일어날 것이며, 일본에서는 천왕이라는 자의 귀에 들어가게 될 것일세.", "더군다나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온 산을 쑤시고 다니는 일본군들이 자신들의 병역이 소수 인력의 조선 의병들에게 처참히 죽었다는 것에 분노를 하게 될 것이며, 더욱 조선을 압제하려고 할 것일세..."


박무열은 말했다. "자네의 말처럼 된다면, 오히려 조선인들은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인데..."


고신국이 대답했다. "내 말은 지금 자네 동생의 사건으로 인하여 항일투쟁의 불씨처럼 작용할 것이라는 뜻일세.", "그리고 자네의 부친이 일하는 이곳 양조장이 기존과 다르게 어떤 영향을 받을지 생각해야 한다고..."

"지금은 감정적으로 나갔다가는 오히려 일본 놈들한테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고신국은 말했다. "자네가 지금 며칠을 잠을 못 잤기 때문에 사리 판단이 흐려진 상황으로 보이네만...", "일단 경기지역 상황을 확인해 보고 자네에게 알려줄 테니, 일단 집에 들어가서 잠을 좀 자는 게 어떨까 싶어"


고신국이 말한 것처럼 다음 날 한성일보에서 1908년 11월 7일 자 발행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 슬픈 애도를 표하는 바입니다. 지난 11월 3일 경기도 야산에서 18세의 여성이 오발된 총알에 맞고 사망했습니다. 기업의 대표들이 참석하여 애도를 표하였습니다. -


신문 기사의 내용에서 언급된 故박현주의 죽음에 대한 사실이 왜곡되어 보도가 된 것이다.


박무열의 부친인 박기린 대표는 신문을 보고 나서 분노에 차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처 죽일 놈들... 내 딸이 오발 총알에 맞고 죽었다고?"


박무열은 자다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갔다. "아버지, 신문에 어떻게 나왔는데요?"


박기린 대표는 신문을 바닥에 내 던지면서 곧바로 집안에서 일하던 직원에게 말했다. "오늘 여기로 강산일보 사장을 불러 주시게...", "이거 이거... 경기지역 대표인가 뭔가 하는 인간들이 우리 가족 앞에서는 현주의 죽음은 곧 민족의 슬픔이며, 이번일을 계기로 일본군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알려야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박무열 집에서 일하는 직원은 곧바로 강산일보를 직접 방문하여 박기린 대표님이 만나고 싶다고 전한 것이다.

그러나,... "안녕하세요. 강산일보의 김진상 사장님은 오늘 개인사정이 있으셔서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한성일보, 강산일보, 구전일보. 등 대부분의 신문사가 하루라는 시간차이로 故박현주의 기사를 올렸으나, 내용은 대부분 총기 오발로 인한 사망으로 표현되어 있었고, 일본군에 의한 사살이라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

또한 '애국소녀'라는 표현 역시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박무열은 화가 난 상황에 부친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고신국을 찾아갔다.


고신국이 말했다. "간밤에 잠은 좀 잤는가?", 박무열은 대답했다. "신국이 자네는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내 이렇게 황급히 찾아왔네...", 고신국이 대답했다. "무슨 말인가?"


박무열이 한성일보, 강산일보 등 신문기사가 잘못된 상황을 고신국에게 알렸다.


고신국은 대답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네,...", "내 생각으로는 이미 일본군이 전 지역의 신문사를 모조리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네... 그리고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친일파 놈들을 신문사에 보내서 각 지역에서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서 올라오는 피해상황을 모조리 없던 것처럼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


고신국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전국적으로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들의 분노와 슬픈 소식들이 제대로 공유가 안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정보망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생시절 고신국의 도움을 받아왔던 수많은 동기 동창들이 전 지역에서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어떤 것이든 알아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 고종이 폐위되고 일본의 강제에 의하여 순종이 대한제국의 2대 황제로 즉위한 1907년 이후부터 대한제국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상황이었고 일본이 통치하는 시대로 가고 있던 것이다. 1909년 7월 12일 기유각서(己酉覺書)가 체결되었다. 일본일들이 반일 행동이나 의병을 통한 항일운동을 규제하게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일본일들이 사회, 경제적으로 약탈을 진행했을 때에도 죄를 묻지 않는 것이 되었다. //


박무열은 백호가 자신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자는 요청이 생각났다. 그리고 고신국에게 말했다.

"내 친구, 고신국 그동안 정말 고마웠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 같아...", "혹시 훗날 나를 찾고 싶으면, 황금성에게 물어보시게나..." 박무열은 그 말을 남기고 백호를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그리고...


연재소설 "악보제작소 2부(제21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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