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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련 Jul 18. 2020

01 주신 단어로 글을 적습니다

#짝사랑 #오빠


'오빠.'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장녀라면 자존심 때문에 부르기 힘든 호칭.' 이라고도 소개되었는데요.

그래서인지 반오십 먹은 내 입에서도 한번 나오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한 말입니다. 연상의 남자친구가 길게 있어본 적도 없고 연하 여자친구가 있어 ㅇㅇ오빠라고 불리는 친구들을 보면 '나참, 쟤들이 무슨 오빠야?' 하고 콧방귀를 뀌곤 했어요. 친한 사람이 나이 차가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굳이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될 사이로 더 친해져버렸습니다.  

'짝사랑.'

나에게 오빠다움은 마음에서 가까운 말이 아닌 만큼 높았나봅니다. 오빠라는 말 앞에 '짝사랑' 키워드를 붙여본 것도 아주 오래 전이지만 잠시 떠올려봅니다. 사실은 포토샵 작업을 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떠오르긴 하는데요. 머리로 하는 생각은 끝내고 그 길대로 손을 급히 움직이느라 드는 감정은 기억나지 않네요.

전공을 불문하고 1학년 새내기라면 한번 쯤은 선배가 멋져보인 순간이 있을 겁니다. 고등학교 3년을 또래와 함께한 추억이 크고 익숙해서 나는 더 그랬던 걸까요. 과 선배 중 유난히 내 눈에 빛나보였던 오빠가 있었습니다. 우에서 좌로 넘겨야 하는 만화책에서 칸 가장자리부터 중심으로 선을 죽죽 그어 표현하는 후광. 그게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었죠.

이것이 만화책 한 권이라면 주인공은 그시절 박도현입니다. 생각보다 첫학기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캠퍼스에서 '엇, 쟤는 신입생이다!' 하고 알아볼 서툰 화장과 어색한 옷차림. 술이 덜 깬 상태로 앉아만 있다 돌아오던 강의실. 이 모두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던 것을 그대로 하고야 말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금보다 살집이 있었던터라, 큰마음 먹고 산 원피스도 일주일을 못 넘겨 옷장에 박히곤 했습니다. 화통을 어깨에 걸고 사용법도 익히지 못한 맥북을 껴안고 오르는 언덕은 미대 로망을 자연스럽게 지워주었죠. 아직 나답게 멋부릴 줄 모르던 내 모습. 무겁고, 땀이 뻘뻘나고, 힘들기만 했습니다.

내 눈에 처음 든 선배는 드라마서처럼 쾌활한 오프닝 음악이 깔리거나 슬로우 모션으로 흰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 장면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하필 이토록 무겁고, 땀이 뻘뻘나고, 힘든 타이밍에 알게 되었죠. 없는 툴 실력에 공모전을 나가기란 같은 팀 선배들에게 죄송함만 가득 느끼게했습니다.

대신 열심히 보고 꼬박꼬박 자리를 지키는 것이 조금이라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선배들 중 한 사람이었지, 무언가 드라마틱하고 운명적인 만남은 아니었어요. 그 앞에서 한 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고, 줄어드는 자신감에 비례해 1학년이 3학년에게 느끼는 존경심은 커져만 갔습니다.

불쑥 튀어나온 에러창이나 모르는 단축키를 물어서라도 해결해야할 때. 카톡으로 무심하게 척척 알려주는 선배는 더없이 멋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올 쉬운건데도요.

'자유변형, 컨트롤 + 티.' 아까 포토샵을 할 때마다 기억한다는 말의 이유가 됩니다. 가끔 바쁜 순간에 누르고도 피식 웃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 웃음에 물은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같이 웃더군요. 어쩌면 1학년이라 볼 수 있던 후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나이에 나름 정성을 부려 고마움을 전달하곤 했는데요. 어쩌다 겹치는 강의 시작 전에 커피를 올려놓고 튄다든지, 그래도 나임을 알 것이기에 괜히 멀리 떨어진 앞 자리를 택해 앉았습니다. 그러다 몇 마디 더할 수 있는 친근함을 얻고서야 고개를 제대로 들고 농담하고 대화할 수 있었어요.

우리학교는 1학년 대부분이 학부제로 운영되어  그 성적을 바탕으로 진입할 과를 선택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바뀌는 과별 인기도와 경쟁률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고, 첫학기에 받은 낙제 때문에 1지망에 들지 못할까 전전긍긍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놀았던 여유가 불안함이 되어 금방 눈시울에 빨간등을 켰어요.

과 희망조사를 마치고 건물을 나왔는데 수업을 가는 선배가 보였습니다. 잔뜩 시무룩한 얼굴을 보았는지 지나치며 핫식스 한캔을 주었는데 아직까지도 고마움과 이름 모를 여럿이 뒤섞인 감정을 잊지 못합니다. 후에 '원쁠원이야, 하나 그래서 너 먹으라고.' 소리를 들어도 벅차올라 더 울었습니다. 울지 말라고 준 것 같은데 결국은 나를 울린 핫식스가 되고 말았어요.

무사히 원하는 전공에 진입 성공했고, 이렇게 '진짜 과후배' 가 되어보니 선배는 오빠가 되어있었습니다. 두번 째 단어의 장이 이제 마음 속에서 막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닫아야할 분량이 되어버렸습니다. 친한 친구가 이쯤되어 '거봐, 사이언스!' 외치는 소리가 들리네요.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할 확률은 극히 드물답니다. 제대로 알진 못하지만 어느 연구에서 그랬다네요.

나중가서 알게 되었지만 오랜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이 시대 제 또래 화법이기는 조금 고리타분할 수도 있으나, '절세미인'이었습니다. 여리여리한 블라우스와 희고 작은 얼굴. 성숙한 차림새의 능력있는 고학년. 큰 대회에서 상도 곧 잘 타온다던 그 언니는 누가 보아도 예뻤고 오빠와 잘어울렸습니다. 그에 비해 어딜 앉아서나 과제하기 좋아보이는 펑퍼짐한 후드, 우렁찬 목소리와 얼룩덜룩 탈색한 금발머리, 배운 것보다 배워야할게 산더미인 학년. 나는 어느 하나 어울릴게 없었습니다.

남 모르는 시작과 끝을 혼자한 셈인데 아프기보다 풋풋함으로 꺼내보게 되어 다행입니다. 이 또한 '짝사랑 장르'만의 묘미 아닐까요. 내가 듣던 다른 사람들의 것은 길고도 들쭉날쭉한 에피소드가 잦던데 내 것은 내것대로입니다. 나다운 빠른 포기는 딱 이럴 때 박수쳐주고 싶어요.

오빠가 졸업을 하고, 나도 여러 계절을 여러 사람과 함께 하고 또 내가 졸업을 하고. 긴시간동안 두 단어가 엮은 이야기 위에 먼지가 켜켜이 앉았습니다. 이 주제가 아니더라면 영영 학교에 두고 찾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끝에 에필로그가 붙습니다.

졸업전시 마지막 날에 내 부스 앞에 서있는 한 사람에게서 4년 전처럼 후광이 보였습니다. 벅찼지만 벅차지 않은 척 인사를 건네고 근황을 나누고. 몇년만에 그 날 마주할 것이라고 전혀 알지 못해, 반가움보단 놀람이 앞서 뛰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잊고 지낸 세월이 무색하게도 그 앞에 서면 나는 영락없이 1학년으로 돌아가더라구요. 졸업식을 한두달 앞둔 4학년이었는데 말이죠. 여전히 선배는, 오빠는 나에게 멋진 사람입니다. 덕분에 많이 자란 후의 시간 속에도 때때로 기억합니다. 또다시 훌쩍 지난 어느 언저리에 그 때의 고마움을, 빛 바랜 오랜 추억을 전할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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