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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련 Nov 10. 2020

무식한 부성애

점점 큰 눈덩이를 굴린다



동생이 태어난 날. 아빠는 엄마 대신 몸보신했다. 병원에서 산모에게 제공된 삼계탕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다 의사를 마주쳤다. 황당한 의사가 산모는 어딜 갔느냐고 물었다. 아빠는 거기다가 이랬다고 한다.

"단무지 가지러 갔는데요."

이 얘길 처음 듣던 순간이 생각난다. 나도 모르게 양손이 입을 가렸고 미간은 바짝 줄어들었다. 막 출산을 하고도 저벅저벅 복도를 걸었을 엄마가 불쌍했다.

"어쩜 그래, 남편 맞어?"

엄마 선영은 태연하다. 애 낳고 나니 입맛이 사라졌다나. '아까우니까 자기 먹어.' 했다고 한다.

아직도 내 미간은 반 뼘 남긴다. 그렇다고 그걸 먹냐며 분을 냈다. 선영은 아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한다. 무식하게 와이프 말을 잘 듣는 사람. 고개를 저으며 웃는 남동생과 다시 밥을 먹었다.

동생이 아예 뱃속에 있을 때는 더 했다. 4살 무렵 어린이는 눈썰매장에서 잔뜩 눈을 쥔다. 힘껏 던진다. 볼이 달아오를 대로 올랐지만 웅크려 또 쥔다.

아빠는 와하하 웃으며 무르팍에 흩어진 걸 툭툭 턴다. 그때도 몸이 무거운 선영 대신에 눈썰매 밧줄을 잡았다. 호루라기 소리에 눈 언덕을 내리는, 작은 몸을 감싼 커다란 몸은 들썩인다. 그런 들썩임을 수차례 하고 세 식구는 귀가 버스에 올랐다.

콧물을 머금은 목소리는 옆에 앉으려는 아빠에게 말한다. 초코우유. 엄마는 곧 출발한다고 설명했으나, 들어먹을 리 없었다. 아빠는 또 무식했다. 다 채워진 버스를 벗어나 달린다. 우유를 위해, 그래 우유를 위해.

겨우 다시 우리 앞에 섰을 때 엄마는 '아뿔싸' 한다. 너무 급했던 나머지 초코가 아닌 커피우유가 들려있다. 카페인은 네 살에게 발암물질 같은 것이었다. 너는 절대 안 돼, 했다. 눈물이 그렁하여 옆자리를 쏘아봤다. 아빠는 작고 까만 눈에 연신 사과한다.

바로 며칠 전 휴가 나온 20년 지기와는 외식을 자주 했다. 그의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기 전, 우리가 일산으로 오기 전. 서로의 부모님을 비롯하여 일곱은 벽제 돼지고기 집에 둘러앉곤 했다.

어른들이 다 먹었냐고 묻기도 전에, 손을 잡고 문방구로 뛴다. 그런 우릴 보곤 아빠가 또 무식한 농담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저 둘이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생일날 시댁을 먼저 들르라고 할까요, 우리에게 먼저 오라고 할까요?"

이어 와하하- 했을 테다. 아빠와 아저씨는 생신이 같다. 기분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했다가, 저 에피소드가 떠오르면 짧은 한숨을 쉰다. 분명 아저씨도 이 찰나에 웃고 계실 거다. 못 말리는 김칫국은 추억에 맛이 더 깊어졌다.

아빠는 요즘 애들 연애에도 무식했다. 한 3년 전부터 나는 사랑에 투신했다. 논개와 견줄 정도로 투철한 연애를 했다. 남자 친구란 존재는 별걸 다 가능케 했다. 이를테면, 십 년 넘게 지적당한 팔자걸음을 한 번에 고치는가 하면. 손톱을 물어뜯으러 향하는 손 또한 다정히 붙잡혀 줬다.

그렇게 집안 남자들 말은 집 밖 남자의 것만 못 하게 됐다.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지자, 아빠는 배웅 뒤 충고 하나를 달았다.

".. 몸조심하고."

이 두루뭉술한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잘 알아서 반항심이 들었다. 그 매가리 없는 말까지 밀어 넣고 가까스로 현관문을 닫았다. 철문 뒤 아빠 표정 따위 궁금하지 않았다. 그 마저도 이미 알기 때문에. 의미는, 단호하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껴안는 게 자연스러운 나이여도. 나에겐 그저 눈을 흩뿌리는 작은 아이인 걸.
잊지 마라, 잊지 마.'

그래서 여전히 그런 순간은 돌이켜도 후회가 없도록 신중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더듬는 어디든 아빠가 서럽게 보고 있을 것만 같다.

첫 인턴 퇴근길에도. 아빠가 얼마나 무식한지 알았다. 퉁퉁 부은 다리를 번갈아 주무르며 폰을 들었다.

<아빠는 지금까지 회사 어떻게 다녔어?>

답장이 곧이어 도착한다.

<왜? 힘들어?>

의문문에 의문문은 반칙이다. 이모티콘을 하나 보내고 고개를 든다. 저녁 어둠을 가르는 지하철 문에 얼굴이 비쳤다. 슬픈 말도 아닌데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 또 무식하게도 성실히 일했겠지, 그린다.

사실 이리 너무한 표현을 마구 써도. 아빠의 무식함이 부끄러운 적 없다. 우연히 인사드린 친구 아버지가 참 젠틀하시다며, 그렇게 해줘! 해도. 나도 유학 보내주지, 더 잘할 수 있었어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 무식함이라 함은.

무식하게 딸을 사랑하는 아빠를 사랑한다.

그는 지금도 매일 와하하 - 하며 소매를 턴다.
작은 아이가 집어던진 눈이 제법 다부져 아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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