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백양로, 다시 바라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세 백양로


[전제]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공간은 환경을 이루는 주요 요인이고, 건축가는 공간을 이용하여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할 사명을 갖는다.

좋은 영향이라는 기준은, 시대와 장소, 그리고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서론]


대학은 각 분야의 리더를 양성하고 인간 세상에 이로운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 목적을 위해 현대의 대학교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자유로운 토론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2015년 조성된 연세대학교의 백양로가 대학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재점검을 해본다.



[본론]


새로운 지식의 발견은 우연한 만남에서 온다. 인터넷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찾는 상황과 정처없이 도서관 서가를 여기저기 떠도는 상황을 비교해보자. 인터넷에서 원하는 책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원하는 제목을 타이핑하기만 하면 정확한 책이 나와 장바구니에 담으면 끝난다. 반면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것은 좀 더 불편하다. 책의 분류번호를 알아낸 뒤 몇 층 몇 번째 서가에 간다. 복잡한 기호로 적혀있는 번호 때문에 몇 번이고 눈을 훑은 뒤에야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다. 이 번거로운 과정을 통해 오는 길에 꽂혀 있던 수많은 책들도 눈길을 두게 된다. 그러다 끌리는 책 제목이 있으면 괜히 다가가서 호기심을 보이기도 하고 원하던 책보다 더 좋은 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 때로는 어떤 책을 고를지 정하지 않고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끌리는 책을 담기도 한다.  인터넷 서점은 목적성이 뚜렷한 공간이다. 대상이 정해져 있고 다른 선택지는 없는 확증편향의 장이다. 설령 추천 도서나 베스트셀러 목록이 있다하더라도 도서관의 방대한 선택지와 비할 수 없다.


백양로는 인터넷 서점을 빼닮았다. 정문부터 언더우드관까지 관통하는 직선길은 북측의 대학본부와 남측의 연세대삼거리를 뚜렷한 대상으로 삼는다. 백양로 좌우로 나 있는 가로등, 나무, 벤치는 백양로 중심의 무결의 공간과 대비되어 직진성을 배가시킨다. 실제로 경영대에서 나와 하교하기 위해 정문으로 향하면 저 멀리 연세대 삼거리의 지하철 길과 신호등이 한 눈에 보인다. 정문까지의 10여분 거리를 하나의 대상만을 바라보며 걷게 되는 무념의 시간이 된다.


백양로의 벤치는 모두 무언가를 향하고 있다. 독수리 동상 주위에 있는 벤치는 동상을 바라보며 동심원으로 놓여있다. 벤치에 앉게 되면 자연스레 독수리 동상에 시선이 꽂히는 배치다. 사람이 아닌 물체를 향한 벤치는 기껏해야 두 명이 얘기할 수 있다. 그것도 몸은 대상을 향하지만 고개만 상대를 향한 채로 불편하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여러 명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려면 벤치는 서로 마주봐야 한다. 벤치가 마주보고 책상도 있는 백양관 뒤의 윤동주 시비 공원은 적절한 예이다. 윤동주 시비 공원에서 학생들이 토론하는 모습은 봤어도, 독수리 동상에서 조별 모임을 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금호아트홀 옆의 분수대 벤치 역시 분수대를 바라보며 원형으로 벤치가 나열되어 있다. 백양로 옆에 있는 벤치도 백양로 길을 향해 놓여 있고 정문 앞 벤치도 마찬가지이다. 연대의 상징 독수리나 백양로 지하와 지상을 잇는 분수대를 숭배하는 공원보다 교직원 및 학생들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소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학교의 방향에 더 바람직할 것이다.


대학에서 도서관과 학생회관은 특별히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있는 중앙도서관 앞 공원은 대학의 목적과 맞지 않는다. 현재 도서관 앞 공원은 사각형의 잔디가 밭전자 형태로 배치되고 그 사이에 십자가 모양의 길이 나 있는 모습이다. 잔디는 한 단 올려져 있고 주의 팻말에 의해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다. 도서관과 학생회관은 학교 구성원이 다양한 의견을 내기 위해 때론 집회도 하고 때론 축제도 여는 장이어야 한다. 경남대 김동완 교수의 말을 빌리면 학교는 도서관 앞의 공간을 "매개된 공공공간"으로 만들어 "날것으로서의 공공공간"을 파괴한 것이다. 매개된 공공공간은 영토와 경계로 구분되어 있고 행정과 규율이 있는 단일의 공간이다. 이른바 70년대 군부독재 시절 통금시간 대의 공공공간을 극단적인 매개된 공공공간으로 볼 수 있고, 학교는 그런 공간을 재연한 것이다. 공간을 규제하기 위해선 강력한 행정력만이 아닌 공간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리가 도서관에서 크게 떠들지 못하고 노천극장에서 다같이 응원을 하는 것은 공간이 가진 힘의 영향이 크다. 네모 반듯한 바라만 봐야하는 고상한 잔디 덕에 우리가 유용할 수 있는 공간은 더 좁아졌고 좁아진 길은 통로 그 이상의 이하도 아닌 가치를 지닌다. 실례로 이번 코로나로 인한 학생회의 집회도 도서관 앞 넓은 광장에서 펼쳐지지 못하고 학생회관 앞 계단에서 불편하게 이루어졌다. 만약 도서관 앞 정원이 완전히 턱을 낮춘 상태로 개방된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결론]


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백양로를 바라보면, 백양로가 처음에 지어졌을 때 했던 우려가 불식되지 않은 채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양로의 많은 부분은 현실적인 이유로 바꾸지 못 하더라도 실천할 수 있는 수준부터라도 바꿔보는 것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꼰대 도서관을 끌어내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