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레킹 1일 차, 2일 차
히말라야 트레킹 1일 차
아침 9시, 게스트 하우스 앞으로 지프가 왔다. 출발하기 전, 닭곰탕으로 몸에 에너지를 비축했다. 함께 출발하는 한국인 5분과 자연스럽게 크루가 이루어졌다. 출발지까지 3시간 정도 걸렸다. 다른 외국인 분들은 지프를 타고 갈 수 있는 구간 또한 트레킹 해서 간다. 하지만 효율적으로 정상을 찍고 싶은 한국인들은 지프를 탈 수 있는 최대 구간까지 타고 간다. 3시간 내내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비포장도로 같은 포장도로와 비포장 도로를 우당탕 달려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적당히 움직이면 멀미라도 나는데 롤러코스터 타는 것 마냥 움직여 멀미도 나지 않았다. 갤럭시의 운동 앱을 확인해 보니 3시간 동안 내가 12000보를 걸었다고 측정됐다. 시작하기도 전에 앉아서 만보를 걸은 셈이다.
첫 시작이 되는 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1800m 정도였다. 시작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한 긴 흔들 다리가 맞이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온갖 종류의 배설물들이 즐비한 똥밭이었다. 노새, 말, 양, 소 등 온갖 가축들의 똥들이었다. 대여한 신발이라 최대한 똥을 피해 걸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너무 많아 체념하고 올라갔다.
호기롭게 양손에 등산 스틱을 쥐고 계단 하나하나를 올랐다. 걸을 옮길 때마다 눈에 보이는 초록색들이 달라졌다. 잔디처럼 푸른 녹색부터 군복처럼 어두운 카키색까지 한국에서의 산과 분명 다른 계열이었다. 안경 렌즈를 3번이나 압축해서 다니는 나의 눈이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늘의 푸른색과 나무들의 푸른색들의 조화를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잘 찍지 않는 사진을 최선을 다해 찍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0분 뒤부터 얼굴은 땅으로 향했다. 시선은 어쩔 수 없이 계단으로 향했다. 나름 돌로 계단이라고 만들어 놨지만 한 칸 한 칸이 엄청나게 높았다. 이런 계단을 앞으로 나흘 동안 올라야 하고 나머지 이틀 동안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에 ‘잘한 게 맞은 선택일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첫날 도착지의 60프로 정도 올라갔을 때였다. 그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9월 말에는 비가 거의 안 내린다고 했는데 기후변화의 영향인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옷 안은 금방 축축해졌다. 춥다고 기모가 달린 옷을 입고 왔으면 올라가기 전에 탈수로 쓰러졌을 것이다. 입고 올라갔던 바람막이를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긴바지는 반바지로 탈바꿈됐다. 안경에는 습기가 차고 빗방울들이 매쳤다.
첫날은 그래도 목적지까지 금방 도착했다. 2시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걸었다. 걱정했던 고산병은 그래도 아직 오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약간의 짜증이 나는 어지러움만 있을 뿐이었다. 단지 이 어지러움도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아직 고산병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 샤워를 간단하게 했다. 롯지라고 불리는 숙소는 땅이랑 가까워서 그런지 나름 깔끔했다. 숙소 옆에는 작은 만한 카페 겸 식당이 있었다. 방 안에만 있기에는 풍경이 너무 아까워 카페에 앉아 꿀생강차를 한 잔 했다. 핸드폰만 보며 침대에 누워있기에는 아까운 풍경이었다.
2일 차
그 전날 오후부터 내내 비가 내렸다. 9월 말은 몬순(우기)의 끝자락이라 비가 별로 오지 않는다고 했지만 기후변화로 차질이 생겼던 것이다. 잠을 자는 내내 도시의 소리가 아닌 빗소리인지 계곡소리인지 모를 물소리가 들렸다. 신기하게도 새소리와 벌레의 울음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침의 날씨는 심상치 않았다. 마치 구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곧 비가 내릴 것처럼 사방이 흐렸다. 뿌연 구름들 사이로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저 멀리서 빼꼼 보일 뿐이었다.
둘째 날은 그래도 꽤 올라가야 했기에 아침 7시에 출발했다. 비가 내리고 나서 날씨가 시원했다. 트레킹 길은 초반이라 쫌만 걸어도 올라가는 곳곳에 쉴 수 있는 공간이 갖추어 있었다. 중간중간 작은 구멍가게에서 물, 초콜릿, 음식들을 팔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불교, 힌두교 탑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것을 구경하는 것도 10분이면 끝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땅만 보고 걸었다. ‘어떻게 유튜버들은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말을 하면서 올라갈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말할 힘도 아껴야만 했다.
오전 11시가 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판초 우비가 있었지만 통풍이 전혀 되지 않아 중간에 노란 비닐 우비를 사서 입었다. 우비는 진짜 입고 싶지 않았는데… 우비를 입고 다시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여기가 히말라야인지 아마존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빗물들이 모여 작은 천들이 만들어졌다. 우림 속을 걷고 있는 듯했다. 우비 안에 습기가 차 내가 숨 쉴 때마다 나의 안경도 습기가 찼다. 최악의 조건이었다. 게다가 고도가 높아질수록 친구처럼 따라다니던 어지러움이 가까워졌다. 숨도 금방 쳤다. 계단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주변에 공기가 부족해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생각할 힘도 없었다.
오후 1시가 돼서야 마을다운 마을에 도착해 쉴 수 있었다. 그곳에서 먹은 신라면은 인생 최고의 라면이었다. 면은 비록 설익고 국물은 바닷물처럼 짜고 많았지만 그 따뜻한 국물이 나의 몸을 녹여주었다. 얼큰한 신라면의 맛이 시체가 되어가는 나의 정신을 깨워주었다. 1시간의 꿀 같은 휴식 이후 출발했다.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똑같은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후 3시쯤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일정은 비로 인해 오후 4시가 돼서야 마무리 됐다.
숙소는 그저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많이 허름했다. 비가 내리면 비 내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매웠다. 콘센트도 존재하지 않아 숙소 앞에 존재하는 식당에서 충전해야 했다. 7시간의 여정으로 몸은 매우 피곤했지만 낮잠을 잘 수는 없었다. 낮잠을 자면 몸의 열이 빼앗기기에 고산병에 취약했다. 잠은 밤에만 자는 것이 컨디션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몸도 따뜻하게 하고 옷도 말리기 위해 옆에 작은 창고에서 직원들이 사용하는 모닥불 앞에 앉아 자기 전까지 시간을 보냈다. 작은 불과 방안 가득 매운 훈연 냄새는 생각과 잠을 떨쳐버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트레킹의 작은 묘미였다. 그럼에도 앞으로 남은 나흘의 여정에 대한 두려움을 차마 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