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상념의 시간
졸업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성인이 되기 위해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단 걸. 늘 그랬듯이 바쁘게 살아가던 와중 이제는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길 준비를 해야할 때가 왔음을 깨닫고 나는 많이 슬펐다.
나의 대학생활은 정말 자유로웠다. 하고싶은 것은 거의 다 해봤다. 듣고 싶은 과목도 다 들었고, 늘 열심히 일했고 번 돈으로 여러 곳을 다녔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토록 꿈꾸던 나라에 유학도 원없이 다녀왔다. 굳이 후회를 하자면 친구들과 가족들 사이에 둘러싸여 싸느라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연애 경험의 부재를 뽑겠다.
그렇게 자유롭던 대학생활 끝에 진로결정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듯 하다가도 또 무엇을 향해서 금방이라도 달려나가야할 것만 같다.
나는 늘 국어가 좋았고 국어를 잘했다. 당연히 국어교육과를 가야겠다고 생각도 했다. 그런데 입시의 과정에서 결정해야했던 두 개의 선택지, 경영학과와 국어교육과 중에 나는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평생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기보다는 내가 세상을 탐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유광인 나에게 경영학과는 실제로도 많은 탐구의 자유를 주었다. 인사, 재무, 생산, 유통....굳이 엮자면 경영학과 관련이 없는 분야는 없었다. 그런데 자유의 역설일까 이제는 너무 많이 펼쳐진 선택지 앞에 그 자유가 부담스럽다.
짧았던 여름 인턴을 통해 느낀 건 졸업 후 나올 취업 사회는 생각보다 더 참혹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종종 느꼈던 의미와 가치..뭐 그런 것들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이 회사에서의 삶이었다. 나는 사회 속 한명의 기능인으로 살아갈 준비가 안된걸까? 아니면 원래 그런 준비라는 건 없는건데, 다 현실과 타협해서 사는건데 내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걸까
공부하고 새로운 걸 배우고 깨닫는 건 좋아하지만 학사 이후의 집중되고 고도화된 학업생활이 내게 맞을까? 잘 모르겠다. 그나마 관심있는 산업을 정해 취업을 하고 자리를 먼저 잡는 게 나을까? 모르겠다. 다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내가 하는 고민의 대부분은 세계 최고의 검색창을 이용한다 해도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는 것들 뿐이다. 그렇게 자유를 부르짖던 나는 이제는 상위의 누군가에게 이 자유를 몽땅 던지고 제발 내 길을 알려달라고 빌고 싶을 지경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을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주라, 그 북소리의 박자가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일찍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했다.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나의 꽃을 미리 피운다면 나의 꽃은 만개하지 못한다고.
만개...까진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은 좀 주기로 한다. 그게 지금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엄마 아빠는 이제 많이 늙었다. 그들의 주름과 몸의 통증들은 이제 나에게 빨리 철들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미국은 분명 다시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할아버지를 잃고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당장은 가족을 떠나 다시 먼 길을 떠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구속이다. 그러니 이 안에서의 다시 자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답은 없다. 답은 없다. 인생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 뿐이다.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모든 아름다움과 고통, 사는 동안 경험해서 참 다행이었던 것들과 어쩔 수 없이 겪음으로써 많이 배웠던 것들 그런 것들을 통해 내 인생의 다음 스텝을 밟을 힘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선택한 것에서 나는 또 어떻게든 살아나갈 것이고 이 여정 속에서 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감정을 느끼고 그렇게 성장해나갈 것이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을 만들고 갈 것이다.
부디 하나님이 나에게 지혜를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