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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생 Mar 02. 2023

기묘한 운동, 요가.

중생으로 들어가 부처로 나오는 운동

1.


나는 딱 봐도 운동을 안 하게 생겼다.


어느 정도냐면, 오픈 카톡방에서 만난 친구들과 처음 오프라인 모임을 열었을 때 분위기를 풀 겸 이미지 게임을 했었는데, '운동을 안 할 것 같은 사람' 1위에 만장일치로 당당히 랭크된 전적이 있을 정도로 운동과는 담 쌓고 지내게 생겼다.


그렇다고 몸이 특별히 말랐다거나 살이 쪘다거나 극도로 흐물흐물하다거나 한 건 아닌데, 그냥 딱 보면 운동을 싫어하게 생겼다.


운동을 싫어하게 생긴 상이 어딨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나를 실제로 만나보면 납득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에 걸맞게 실제로도 운동을 안 한다. 아니, 안 했었다.


운동을 딱히 즐기지 않는 데다가(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 스스로 운동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다이어트 할 때를 빼고는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게 흐물흐물한 몸으로 살아오다가 서른이 되고 나자 왠지 더 이상 몸을 막 다루면 안 될 것만 같은 압박감과 이러다가 나중에 크게 아픈 거 아냐? 하는 위기감에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려 8개월째,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수업에 나가고 있다.




2.


오늘은 목요일. 3월 개강일이자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요가 수업이 있는 날이다.   


요가를 시작한 후로 한 달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신호가 또 하나 생겼다.


바로 재등록 안내 문자다.


월말이 되면 휴대폰으로 재등록 기간과 방법을 안내하는 문자가 발송되고, 난 그걸 보며 벌써 한 달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새봄이 찾아온 걸 기념이라도 하는 건지 재등록 방식에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생겼다.


원래는 카운터에서 수기로 이름과 동호수, 연락처를 쓰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는데 정보화 시대의 폐해로 아파트너라는 해괴한 이름의 앱을 깐 뒤 앱 내에서 수강신청하는 방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앱 까는 게 간단하지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 앱을 깔고 수강신청을 하라는 안내문자를 받고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개강일인 오늘까지 미루고 말았다.


당연히 수강신청은 이미 마감된 뒤였는데, 내가 요가를 한다는 사실에 나보다 더 뿌듯함을 느끼는 엄마가 나의 수강신청을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열의 넘치는 엄마를 따라 카운터로 가니 친절한 직원이 '신청 기간이 지나긴 했지만 마침 자리가 하나 남아있다'며 나를 그 자리에 넣어주었다.


솔직히 자리가 없기를 바랐던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합법적으로 요가를 빼먹을 수 있는 기회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3.


요가는 기묘한 운동이다.


가기 전에는 여느 운동과 마찬가지로 몹시 귀찮고 짜증까지 나지만, 막상 하고 나면 순식간에 화가 사그라들며 몸과 마음에 개운함과 평화가 찾아온다.


번뇌에 가득 찬 중생의 모습으로 GX룸으로 들어섰던 나는 수업이 끝난 뒤 부처로 탈바꿈하여 자비로운 표정으로 집에 돌아온다.     


이 패턴을 무려 여덟 달째 반복하고 있으니 나로서도 신기할 따름이다.


회식을 포함한 특별 이벤트가 있지 않은 이상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나가다 보니 어느새 선생님의 애제자가 되어버렸다.


지난 겨울에는 회사 워크샵에서 엄동설한에 세 시간 동안 야외 게임을 하다가 된통 몸살에 걸려 일주일 동안 앓아눕는 바람에 요가를 두 차례나 빠졌는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우리 오늘은 꼭 같이 수련해요^^' 하는 무언의, 아니, 유언의 압박이 가득 담긴 요가 선생님의 문자를 받고 정신이 번쩍 난 적도 있다.


난 그냥 가오나시 같은 헐렁한 검은 옷을 입고 구석에서 조용히 동작을 따라했을 뿐인데 어느새 수업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버렸다니, 감격과 동시에 은근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 후로 원래도 잘 안 빠지던 수업에 더 꼬박꼬박 나가 얼굴도장을 찍는 중이다.




4.


오늘도 (아쉽게 수강신청에 성공한 뒤) 어김없이 수업에 나갔는데, 요가를 하다가 그만 신체의 일부가 훼손되고 말았다.


머리서기 자세를 시도하다가 바닥에 부딪히면서 안경 콧대 부분이 신나게 휘어지고 만 것이다.


시력이 애매하게 나쁜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나처럼 땅 파고 나온 두더지 수준으로 눈이 나빠서 언제나 안경을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안경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몸의 일부다.


머리서기도 실패한 데다 시력까지 손상된 나는 나는 의기소침해진 채로 집에 돌아와 임시방편으로 유행 지난 디자인의 옛날 안경을 꼈다.


그렇게 8개월차 요가 모범생인 나는 시력은 회복되었지만 묘하게 촌스러워진 몰골로 요가에 대한 글을 쓰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아니, 최대한 가까운 미래에 머리서기를 성공시키고 말 테다.


물론 그때는 안경을 벗는 걸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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