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부다페스트로부터 벗어나기
"나 스웨덴 좀 다녀올게"
"갑자기?"
"응. 가고 싶어 졌어."
‘권태’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왜 '스톡홀름'이었을까.
그도 내게 왜 '스톡홀름'인지 물었다.
"북유럽이라서.."
아일랜드에 있을 때는 서유럽 곳곳을 누볐다.
헝가리로 와서는 동쪽으로, 그리고 서쪽으로, 남쪽으로 더욱 반경을 넓혀 움직였다. 나에겐 북유럽은 '저 세상'의 땅이었기에, 후보군 밖의 일이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헝가리 위에 있는 네 개의 북유럽 국가가 내게 선택받길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 코펜하겐, 오슬로, 베르겐?, 헬싱키는 그다지 안 내킨다. 가만 보자.. 스톡홀름! 그래 여기가 좋겠다.'
티켓을 확인해보니, 가격도 적당했다.
스웨덴의 날씨를 체크해보니, 이 시기를 넘기면 금세 추워질 것 같아 출발 이틀 전에 바로 결제를 하고, 적당히 짐을 꾸려 떠났다. (여름옷이라 준비가 거추장스럽지 않다)
내 여행은 늘 이런식이었다.
지도를 펼쳐, 시선이 가는 곳, 마음이 움직이는 곳,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어도 좋을 곳.
런던, 밀라노, 리스본, 나폴리, 파리, 말타, 피렌체, etc.
여행 중 대부분은 종종 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전개되었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란 게 있다.
1.
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혼자 하는 여행'을 선호한다. 선호한다기보다 지향한다.
내 세계여행의 90% 이상은 '홀로'하는 여행이었다.
난 여행은 혼자 하는 것이라고 배우며 자란 사람 같았다.
그래서 “혼자 다니면 안 외로워요? 안 무서워요? 안 심심해요?” 이런 말이 오히려 내겐 더 생소하다.
모두 본인이 익숙한 것에 익숙하지 않은가.
예를 들면, 난 어려서부터 글은 오른손으로 쓰고, 칼질과 가위질은 왼손으로 했다. 다 그렇게 하는 줄 알고 자랐다. 중학교 때, "어? 너 왜 가위질을 왼손으로 해?"라고 말한 별로 친하지 않았던 한 친구의 말로 인해 양손잡이가 흔치 않은 것이라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 당시엔 꽤나 쇼킹했던 발견이었다. 내가 특이한 사람인가, 잠시 의문을 가졌을 만큼.
나에게 홀로 하는 여행이란 '내가 익숙했던 양손잡이' 같은 것이었다.
친구와 가족과는 여행이 아니어도 언제든 함께 할 수 있는 순간이 많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 속에 던져져 나를 발견하는 독특하고, 짜릿한 외로움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무한대였다.
길을 물으며 친구가 되고, 밥을 먹다가 눈인사를 나누며 옆 테이블과 안부를 주고받을 수도 있고, 여행 중 생겨나는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에 내 뜻대로 집중, 혹은 외면하기도 쉽고.. 모든 경험에 고스란히 동화될 수 있다는 것.
이것 말고도 말하자면 끝도 없다.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하는 이에게만 쏟는 한정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여행은 결국, 내게 ‘영화감상'과도 같은 것이다.
혼자 봐야 극 중 인물에 심취하고, 작품에 빠져들 수 있는 몰입도가 생긴다. 그래야 영화가 끝난 후, 내 몸에 스며드는 여운이 생긴다. 꽤나 짙게.
2.
그리고 또 하나!
목적지에 대해 미리 정보를 알아보는 것을 지양한다.
아무 선입견 없이 각 나라, 도시의 날것 그대로를 마주하고, 그 대상과 내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맞닥뜨리길 기대한다.
청각, 그 나라의 음성에 귀 기울인다. 때론 한 도시에서 반복해 들었던 음악이 그 도시가 되기도 한다.
시각, 최대한 많은 것들을 보고 흡수하고자 걷는다. 색으로 기억되는 장소가 있고, 형태로 각인되는 공간도 있다.
후각, 지금도 냄새로 기억나는 나라가 있다. 예를 들면, 서브웨이 샌드위치 냄새가 풍기면 난 호주가 생각나고, 향수 향기로 미국이 그려지고, 비 내음으로 아일랜드의 한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미각, 때론 내가 맛본 예상치 못한 음식이 내겐 그 나라의 전부일 때가 있다.
촉각, 바람의 세기, 덥고 추운 것에 반응하는 내 신체 등에서 하나의 장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오감이 받아들이는 감각으로 하나의 여행지가 나만의 것으로 상기되는 기억이 나는 좋다.
이런 감각들이 무뎌질 때 즈음에 나는 여행을 갈구하고, 계속해서 그 여행은 반복된다.
한 장소를 경험한 후에 그날그날 벼락치기로, 혹은 여행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이 장소가 이런 곳이구나..' 역으로 공부하는 편이다.
미리 철저하게 계획하기보다 떠나기 직전 감정에 충실하여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이는 방랑자적 성격의 여행자이다.
내겐 여행이 이성보단 감성에 가깝다.
아는 것보다 보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그런 다음 대상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건물이 몇 년도에 지어졌나 보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물들이 무엇을 보고 웃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며 삶을 논하는지, 장소나 사물이 주는 분위기나 색채 등 이런 유의 것에 관심이 많다.
이렇듯 즉흥적이고, 감상적인 내 여행을 감당할 자, 나 밖에 없음을 알기에 주로 혼자 떠난다.
스웨덴으로 출발하게 된 주요 계기는 '두 가지 성격의 권태'였다.
감각이 무뎌지는 헝가리의 삶(이곳에서도 권태는 이따금씩 찾아온다)과 장거리 연애로 인해 불쑥 찾아오는 (씩씩하게 혼자 잘 사는 나도 별수 없구나, 하는) 공허함.
‘헝가리에 있는 나, 매일 같이 시공간이 뒤바뀌는 삶을 살고 있는 그’
만남도 연락도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터지는 바람에, 그 이름도 유명한 생이별 중-)
그냥 원거리 연애가 아닌 한층 고차원적인 형태의 것을 늘 마주하며 지내니, 웬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에도 꽤나 배포가 커진다.
그는 직업적 특성상 한날은 미국, 어느 날은 인도네시아, 또 다른 때는 중동에 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한국이 아닌 헝가리에 자리 잡고 있기에, 이마저도 때론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움직이는 바람에, 이건 뭐. 서로 보통 정신력으론 쉬이 나날을 이겨낼 수가 없다.
한 명이 아닌 둘이서 빚어내는 시차뿐만 아니라 공간의 변화까지.. 그것도 시시각각. 룰렛을 돌려가며 ‘둘의 만남이 성사되길!’ 하고 바라고 있는 판국이다. 상당히 입체적인 연애로소이다!
‘내가 외계인과 만나고 있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은 여덟 시간 차, 어제는 동일 시간, 내일은 하루가 더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져 내겐 허망한 일이 되어 훅- 하고 마음을 파고들 때가 있는데 그때에 난, 누가 살짝 누르기만 해도 물러지고, 으깨어지는 한없이 힘없는 (두부보다 더 여들여들한) 순두부 멘탈이 되어버린다.
이젠 나름의 원칙과 이해가 뒤섞여 조화롭게 잘 지내고 있는 우리. 가만 보면 그도 나도 어느 한편으로 지독한 성정의 소유자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 나는 일이지만, 그 이후로 그는 내가 ‘어디 좀 갔다 올게'라고 말을 꺼내면 그 동시에 내 여행만큼의 기간 동안 멈추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한다.
그 당시엔 나와 그의 문제가 아닌 상황적인 무력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상황으로 맞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내 딴은 현명한 대처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엄포?를 놓듯이 훌쩍 떠났다가 슝-하고 돌아와서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그도 나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스웨덴 여행이었다. 옹색한 여자 친구가 안 되기 위한 나만의 발악법이었다.
별수 없이 여러 모양의 이유로 난 떠난다.
그렇지만 분명 돌아온다. 난 회복력이 빠른 편이다.
'Stockholm'
헝가리의 국적기는 'Wizz Air(위즈 에어)'이다.
부다페스트에서 스톡홀름까지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
스톡홀름 도착!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대략 1시간이 걸린다.
공항 내 머신에서 왕복 버스 교통권을 끊었는데, 카드에서 돈(약 5만 원)은 빠져나가고 티켓은 나오질 않았다.
'느낌이 싸하다...' (여행 경력 14년 차인 나에게 이 정도 일은 황당함 강도(1-10까지) '2'정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기가 막혀도 풀릴 일은 풀리고, 꼬일 일은 꼬인다. 이건 정석이다. 일단 받아들인다)
다행히 스웨덴 사람들은 영어를 모국어처럼 잘해서 소통이 수월했는데, 말만 통하면 무엇하리!
일처리 느린 것은 헝가리나 스웨덴이나 매한가지구나. 버스 시간은 코 앞인데, 이걸 놓치면 하루 일정이 애매해지고..
매표소는 몇 군데나 있었는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직원은 달랑 한 명이었다.
그나마 직원 아저씨가 친절하고, 성심을 다 하는 모습이어서 (화는 살짝 차올랐지만)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선 은행에서 빠져나간 기록과 함께 오늘의 사연을 풀어서 '버스 회사' 이메일로 보내란다. 그러면 매우 신속하게(!) 일처리가 될 거라고..
그 말만 믿고, 새로 편도 교통권을 끊고, 버스로 향했다.
버스 출발 전, "이 도시 첫인상이 왜 이래!"하고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쫑알거렸다. '여행 중에 연락은 쉬자'라고 말해놓고, 황당한 일이 생기니 바로 그가 떠올랐다. 결국 이때부터 해피엔딩은 예견돼 있었다. 떠나온 순간부터 직감했던 '해피엔딩'이다.
결론적으로 빠져나간 5만 원은 스웨덴에 기부했다.
메일을 주고받는데 예상대로 (내 돈 내가 받겠다는데) 울화통 터지는 순간이 몇 번이나 오고 갔다. 이러다간 정신 상담비가 더 나갈 것이라 판단했고 더불어 환불받기를 포기했다. 이런 포기는 빠른 편이다.
'여행'은 내게 '인내와 경험의 열매'란 자산을 축적하도록 돕는다. 덕분에 내 여행 통장은 황당 스토리로 잔고가 그득 하다.
여행 전 나에게 스웨덴의 이미지는 '노벨상의 나라, 디자인의 나라, 스칸디나비아 제국, 이케아의 나라, 바이킹의 나라' 였다면,
여행 후는 '미트볼의 나라, 발트해의 나라, 키 크고 늘씬한 사람들 많은 나라, 붉은 건물이 많은 나라, 커피 사랑의 나라, 모델 아빠들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나라, 영어 잘하는 나라, 일교차 매우 심한 나라, 시청이 멋스러운 나라, 삶과 사랑 그리고 일의 균형이 잘 이루어져 있는 나라'로 정의가 바뀌었다.
'부다페스트'란 도시의 어감을 좋아한다.
'스톡홀름' 또한 매력적인 발음을 지녔다, 생각했다.
(‘스’는 바람 새는 소리로 가볍게 스치듯이, ‘톡-‘은 청량감 가득 물고 톡 쏘듯이 입천장을 툭 건드리며, ‘홀름’은 우아하게 말아 젖히면서 덤덤하게! 혼자 이런 짓? 자주 한다. 재미있다)
북유럽은 나무들까지 늘씬늘씬하니, 맵시가 산다.
공유, 전도연 주연의 영화 '남과 여'를 인상 깊게 보았던 나에게 북유럽은 식물들이 슬픔을 감싸고 있는 이미지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접어드는 길에 본 나무들은 모양은 같았지만 모습은 달랐다. 맑고 밝았다.
‘북유럽에 왔구나...’
장소든 사람이든 첫인상이 중요하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스톡홀름의 첫 그림! 합격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무작정 거닐어 본다.
숙소는 중앙역 근처인 '노르말름'에 있었고, 세부 동선은 다니다 보면 감이 잡힐 테니, 큰 테두리만 그려보고 움직였다.
Day1 : '노르말름' 주변을 정처 없이 걸었다.
Day 2 : '노르말름 > 감라스탄 > 쇠데르말름'까지 걷고, 바이킹 박물관이 있는 '유르고르덴'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에, '외스테르말름', 그리고 다시 숙소가 있는 '노르말름'까지 발바닥 불나도록 거닐었다.
Day 3 : 노르말름과 '쿵스홀맨'에 있는 시청사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만끽했다.
결국 걷는 것이 남는 것이었던 '스톡홀름 여행기'
다니면서 보니, 눈에 빈번히 띄는 것 중 하나가 예상했던 대로 카페인데,
특히나 '웨이니스 커피'와 '에스프레소 하우스'가 우리나라에 '스타벅스'만큼이나 많아서 꼭 가봐야 하는 곳 마냥 발길이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커피를 많이 마시는 국가 중 상위권에 랭킹 되어 있는 스웨덴.
스웨덴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피카 문화로 대변된다.
'Fika'는 스웨덴어로 'Kaffe(커피)'를 뒤집어 발음한 것이다.
‘사람들과 커피와 간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피카를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이것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커피를 사랑하는 나에게 스웨덴의 '피카(Fika) 문화'는 꽤나 흥미로운 단어였다.
그와 더불어 흥미로웠던 '라곰(Lagom)’
세계적으로 북유럽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다뤘었다. 스칸디나비아 '휘게'를 이을 새로운 삶의 트렌드로 스웨덴의 라곰(Lagom) 문화가 인기 급부상 중이라고 한다.
라곰(Lagom) 문화 : 라곰은 스웨덴어로 ‘적당한, 균형이 맞는, 적절한’ 등을 뜻한다. 모자라거나 부족하지 않게 균형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북유럽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우리 말로는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정도로 사용할 수 있다. 라곰은 일과 여가의 균형, 환경을 생각하는 습관, 자원의 낭비를 멀리하는 삶의 방식 등을 추구한다.
에듀윌 시사상식
우리나라에 '정 문화'가 있다면, 스웨덴엔 '라곰 문화'가 있다.
내가 좇고자 하는 삶의 가치와 흡사해 꼭 새겨두고 싶은 용어이자 의미이다.
여행 중, 먹는 것엔 과감히 투자한다!
미트볼의 나라, 정통 미트볼을 먹어 보자.
탱글한 미트볼 & 매쉬드 포테이토 & 크랜베리 잼이 & 오이 피클 -
미트볼에 매쉬드 포테이토 듬뿍 바르고 크랜베리 얹혀서 한 입 쏙 베어 먹으면... 그것이야말로 '세상 조화로운 맛'! 이케아의 미트볼도 감지덕지한 나에게 정통 스웨디쉬 미트볼 요리는 찰떡궁합이었다. 1일 1 미트볼 처리하고 옴.
미트볼의 고급화를 경험했다.
걸 하게 먹고 나서 걷고, 또 걷는다.
방향만 짚고, 그냥 계속 걷는다.
걷다 보니 춥다.
생각보다 더 춥다.
여행 중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하루 안에 여름 & 겨울이 섞여 있다.
지나가다 보이는 상점에서 가을 니트를 사서 입었다.
입어도 추웠다. 그래도 입으니 조금 나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마음도 조금씩 온도를 더하고 있었다.
명색이 스웨덴 국민 카페? 에서 한 끼의 휴식 타임 정도는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 왔던 둘째 날의 아침.
오늘의 조식, '음식 맛, 커피 맛 꽝!'이다.
스웨덴은 도시 모습만큼이나 국기마저 세련되면서도 절도 있다!
○ 1906년 6월 22일 제정,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스칸디나비아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형태
○ 1157년 스웨덴 국왕이었던 에리크 9세가 십자군의 핀란드 원정에 나서기 전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릴 때 파란 하늘에서 노란색 빛줄기의 십자가가 나타났다는 전설
○ 파란색과 노란색은 1442년에 제정되었던 폴쿵 왕조의 문장에서 유래, 노란색 십자가는 덴마크의 국기를 본떠 만들어짐. (스웨덴 개황, 외교부. 2019. 5.)
숙소가 있던 '노르말름'에서 '감라스탄' 거쳐 '쇠데름말름'까지.
두어 시간 쉴틈 없이 걸으니 시원한 커피가 생각난다.
이곳에서 또 한 잔 했다. 순전히 외관이 북유럽스러운 스타벅스란 이유 하나만으로.
아빠야, 모델이야? CF 촬영 중이야?
(내 속마음)
오기 전부터 궁금했던 바로 이 광경 -
스웨덴은 모델 아빠들이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더니....
'멀리서 볼 땐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일 수도 있으려나?'
아이를 안은 아버지가 이토록 멋스러울 수 있다니.. ('나 외모지상주의였니?') 외형도 외형이지만, 여긴 전부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산책 다니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니, 당연한 것을 하듯이. (요즘 한국 대디들도 육아활동 돕기에 적극 참여 중인 걸 알지만) 스웨덴은 이미 삶의 전반에 ‘균형’이란 것이 스르르- 스며들어있구나...라는 인상을 주었다.
'쇠데를말름' 지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이태원, 성수동' 같이 소위 말해 힙한 동네라고 한다.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픈 카페나 식당이 많았다. 그들의 일상을 그들 가운데 자리해 만끽해보고 싶었다.
세 시간 넘게 막무가내로 걸었더니, 다시 걸어서 돌아갈 엄두가 안 난다.
바이킹 박물관으로 향하려 하는데, 이러다가 해적들에게 잡혀 먹히게 생겼다.
교통권 살 수 있는 곳을 찾다가 30분을 헤맸다. (걷기 풍년이로구나!) 요즘은 다 휴대폰 어플로 결제한다나 뭐라나.
도심 모든 곳을 걸어 다니려고 했던 나로서는 예상 못한 시나리오이다.
결국 돌고 돌아 자그마한 슈퍼에서 아날로그 감성의 종이 표를 살 수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꽤나 독특한 아이로구나..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바이킹(Basa) 박물관을 보고 나서,
그 와중에도 싱싱한 바다 음식은 먹어야겠다고.. 또다시 30분을 걸어서 외스테르말름으로 향한다.
고집스럽게도 걷는다. 걸으면서도 몸살 안 날까 걱정하며 조심히? 걸었다.
'Saluhall, 살루홀'로 가본다.
스톡홀름 시장(식품점)을 경험할 수 있다.
부다페스트의 '중앙시장'과도 같은 곳 -
다 먹고 나서 숙소까지 한 시간 정도를 더 걸었다.
걷기로 시작해서 완벽하게 걷기로 끝난 스톡홀름에서의 두 번째 날 -
스톡홀름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시청사'
시청다운 정직한 모습의 외관부터 드넓은 바다,
눈부신 빛과 겹겹이 비친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곳.
이곳에서 하염없이 펼쳐지는 하루 반나절의 시간을 만끽했다.
스톡홀름과 굿바이 인사를 나누기에 가장 완벽한 곳이었다.
공항으로 향하기 전, 에스프레소 하우스의 카페 라떼를 맛보기 위해 마구 뛰었다. (각 나라의 커피 맛을 라떼로 구분 짓는다) 공항버스 시간이 임박한 상태였다.
서두르는 가운데서도 라떼 맛 제대로 음미하기!
‘오잉? 스웨덴아! ‘피카 문화’ 사랑하는 거 맞지?’ 아님 내 입맛이랑 다른 건지. 샷을 하나 추가했는데도 내가 원하는 진한 고소함이 안 나온다.
▼ 공항으로 가는 내내, 내 마음과 같지 않게 옆자리 할머니가 계속 말을 걸었다.
마지막 날의 '여행기 감상 로망'이 핑크빛에서 누런빛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또 보자, 스웨덴이여!
미트볼이여! 연어여! 바다여! 시청사여!
길쭉길쭉 스웨덴 사람들이여!
권태로움에서 행복감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을 맺는다.
어쩌면 낯선 곳을 상상하는 그 순간부터 '쥐도 새도 모르게 침투하는 권태'가 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