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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Nov 01. 2020

배는 항해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박을 위함이 아니다.

부다페스트 이야기





*작년(2014년 여름 여행 후, 두 달 살기 이후로) 헝가리에서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썼던 일기이다. 다시 헝가리로 향하기 위해 마음가짐을 다잡고 있었는데, 그 힘겨운 영혼을 내보이며 서두를 열어본다.







오랜만에 만나는 힘겨운 밤이다.

누구도, 무엇도

날 치유할 수 없을 밤이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밤인데,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것 마냥 경직된 표정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커피나 펜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밤이다.

너무 먹먹하고 서러운 순간이다.

'갈피를 잡는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니..'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불확실한 것이 아니고, 모호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단지 누군가 '너의 너된 것'을 설명하라 하면, 아무에게도 '나의 나'된 것을 '온전히' 풀어낼 수 없다는 것.

단지 그뿐이다.

아니다. 뱉어낼 수 있다.

몇 날 며칠이고 토해낼 수 있다.

다만 그 후에 찾아오는 헛헛함.

그 공허함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는 것이 내가 주저하는 이유다.

(이 부분에 있어 난 꽤나 정확한 감각의 소유자이기에 이것만큼은 강단 있게 조심하려 한다.)

결국 '갈피'의 문제인가..

밤을 마주하기가 불편하다. 이 자연스럽지 못한 마음가짐으로 아침을 기다려야 하다니.


[2015년, 4월. 한국에서]







주어진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
'온전한 나'이기 위해 '늘' 깨어 있을 것.



요즘 들어 매일 같이 외치는 마음이다.

지난 7월, 겨우겨우 이곳(헝가리)으로 돌아와서 보니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지난 1월 정확히 설에 한국에 도착해서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발발하고, 반년 동안을 한국에 발이 묶여있었다.




1. 코로나로 인해 입국 금지되어 밀린 반 년치의 집세, 공과금, 휴대폰 요금 등등 (애먼 돈 우수수- 내보냄)

2. 헝가리로 입국 전 이미 끝이 나버린 거주증(비자) 유효기간 (코로나 시기여서 비자 재발급에 대한 부분이 상당히 복잡해졌다. 현재 ‘무비자 90일’로 체류 중이다)

3. (★★★)'앞으로 이곳에서 계속해서 지낼 수 있을까 VS. 잠시 (한국에) 가있어야 하나'에 대한 고민 -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헝가리로 나오는 것이 몇 배나 어려워질 것만 같아서 심히 주저하고 있다. 이곳이 일상이 되어버린 만큼 짐도 그렇고, 나중에 집도 다시 구하려면 기회비용(시간 + 정서적 박탈감 + 소모 비용 등)이 너무 크다.

4.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수준의 탄식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 모든 결정에 대한 대답이

어느 하나 쉽게 나오질 않았다.



그리하여 나온 대책(?)이, 바로 주어진 시간 3개월 동안의 '글쓰기'였다. 뜬금없어 보여도 정말 그랬다(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이것' 밖에 없으니까).

이곳을 떠나버리면, 그래 버리면 왠지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 거라 여겨졌다. 떠나기 싫지만, 혹 그럼에도 가야 한다면 '분명 난 최선을 다했어'라고 나 자신과 마주했을 때, 덜 부끄러울 수 있어야 한다,라고....



오늘 집 밖을 나오는데, 가을 하늘이 '잘하고 있다'는 인사를 건네준다 : )



매 순간이 향긋한 선물



그냥 반겨주는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구름을 갈퀴로 긁어 모아 영혼의 길을 터주는 듯한 모양을 빚어주었다.

경이로움이 퍼진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난 이 도시에서 두 발 딛고 바라보는 하늘이 참말로 좋다. 그리고 정말로 감사하다. (Thanks, God-)







나는 부다페스트가 정말 좋다.



그럼 좋으면 그만이냐. 그렇지만도 않은 게 '문제'다.

내가 크게 '문제'라고 여기지 않으려 해서 '문제'가 아니지만, 한 번 '문제' 삼으면 그 '문제'란 것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마냥 내 모습을 흔든다. 코로나 시대여서 더욱 크게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1) 6년 전, 헝가리를 처음 알고 2개월가량을 막무가내로 있었다. '좋아서 설레는 마음' 하나로.

2) 5년 전, 한국에 있던 난, 헝가리를 잊지 못하고 다시 이곳을 찾았다. "엄마, 한 달만 살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설계해볼게" 이 한 마디만 남기고선..


그 사이, 집을 구하고, 헝가리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비자를 받고, 일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안팎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토록 바라던, 꿈꾸던 '부다페스트에서의 내 삶'을 누리게 되었다.


꿈꾸던 삶이 현실이 되니 좋기만 하느냐,라고 누군가가 물었었다.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행복하니까, 아직도 꿈꾸듯 설레니까' (이면에는 사람 사는 곳에서 겪는 외로움, 생활적인 면에서의 불편함, 삭막한 한인사회, 이방인의 고독 등 뭐, 이것도 열거하자면 꽤- 많다)


내가 바라던 궁극적인 삶의 색으로는 이곳이 정말 만족스럽다.



2018년, 10월- 2019년, 04월 (헝가리 재도약 고민)
2020년, 1월-2020년, 6월 (코로나 펜데믹)


어언 1년 정도 굵직하게 잠시 한국에 가 있던 것 빼고, 만 4년 이상을 헝가리에서 결론적으로 건강하게, 무사히, 감사하게도 자알- 있었다.


오늘의 이 일기는 '헝가리 굿바이' 인사냐.

아니다. 아니다.


최소 지금은 헝가리에 처음 왔을 때,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보단 많이 안정되어 있고, 제대로 마음먹으면 온전한 정착기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3. 그런데 최근 반년 동안 한국에 본의 아니게 발이 묶여있던 이후로 '헝가리에 와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라고 느껴졌었다. 이 말이 대체 무슨 말이냐.


헝가리에 처음 왔을 때, 좋았던 수많은 이유를 거둬내고,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목적이 없어 보이는' 삶이었다.


지금은 그 '목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이곳에 존재하며 행복해하는 것이 가장 나다운 최고의 삶이라 생각하는 자아'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때 당시에 난 '이곳에 있기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좋아한단 이유만으론 부족해 보였다.


주객이 전도될 뻔한 순간이었다!

좋아서 있는데, 이유를 만들어야 하다니!


이곳에 오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주재원으로, 유학생으로(주로 의대생들), 가족 따라, 헝가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잠깐 스쳐가는 여행자로' 내 눈에는 다 '무언가'를 위해서 오거나 존재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나처럼 '여행자의 신분?으로 와, 헝가리와 사랑에 빠졌고 그래서 있고 싶다'라는 이유는 '그저 팔자 좋은 소리로, 혹은 스토리 있는 사람으로, 아니면 보기보다 특이한 여자로'... 그들이 추측한 모양으로 빚어졌다.


그때 당시엔 '왜 저렇게 남의 일이 관심이 많을까,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지, 마음 하나로 버틴다는 게 얼마나 막막하고 쉽지 않은 일인데 응원을 못 해줄 망정, 내가 지금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데..'란 생각들로 속상해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이곳 생활에 충실하려 애썼고, 다짐하고 움직였다.


결과적으론 그런 반응도 지금에 와서는 이해가 되고(나 같아도 '좋아서 살러 왔다', 이 말은 안 겪어보고는 팔자 좋은 소리로 들리긴 하겠다), 결국엔 이곳에서 감사히 잘 살고 있고, 이상한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좋은 분들, 친구들, 사람들이 더 많았고, 정말 잘한 결정이라 여길 만큼 두근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너무 자주 두근거려도 문제 있는 거라는데)






다시 올해 팬데믹 이후, 헝가리로 돌아와서..



역시나 5년 전과 마찬가지다. 지금은 어학원도 중지 상태고, 일도 끊겼고, 역시나 '헝가리를 향한 마음' 하나로 이곳에 존재하는 그런 상황. 더 나아진 것도 많지만, 더 안 좋아진 것도 많다.


한국에 있으면,

따뜻한 내 집, 든든한 가족들이 있고, 회사를 다닐 수도 있고, 엄마 밥 편히 먹을 수 있고, 코로나에 제일 안전한 내 나라에서 안심하며 살 수도 있고 한데,



여기선 숨만 쉬어도 월세나 생활비가 나가고, 현재 일을 하기도 여의치 않고, 평화로운 일상처럼 보이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당분간은) 코로나 두려움을 늘 품고 지내야 하고,.. 등등.


현상황에서 있어야 할 곳을 말하라면 98%는 '한국'이라 했다.

나머지 ‘헝가리파’ 2%는 '나와 몇몇' 정도였다.



역시나 고독한 싸움이다.
있어야 할 이유가 '내 마음' 하나이기 때문에..



사실 이젠 '이유나 목적'은 필요 없는데,

나를 이따금씩 괴롭히는 것은 웬걸 -  '내 마음'이다.



마음 하나로 씩씩하게 이 도시를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마음 하나가 가끔씩 뾰족해지거나, 흐물해지거나, 없어져버리면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 라는 허무한 결론이 난다.


사람이 이유 찾아 살고, 이유 없어 죽는 것은 아니지만, 난 정말 '그 마음' 잘 지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부다페스트에서 잘 살고 싶은데..


어젠 그 마음이 너무 보잘것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힘든’ 날이었다.

이런 날은 종종 찾아오지만, 어젠 유독 위태로웠다.



코로나 블루 때문이라고, 한국이어도 울적할 거라고, 그냥 나한테 잠시 들렀다 가는 싱숭생숭한 마음이라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나 자신을 달래 보는데도 여간 쉽지 않던 날이었다.


'마음'은 우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마법처럼 나를 이곳에 살게도 하지만,

또 그 '마음'은 비루하리만치 흔들리는 것이어서 나를 이곳에서 떠나게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어제는, 혹은 '마음이 무슨 소용인가' 생각될 때, 난 뭐라도'보이는 이유(탓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어린 생각을 하며)'를 붙잡고 흔들고 싶어 진다.






 「영국 작가, 데스 브로피의 '즐거운 인생'」라는 전시회를 온라인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림으로 위안받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빗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아는 경지까지 오른 할머니들의 모습이 참 멋지고 존경스럽다!'

나 또한 흔들리는 물결 속에서도 거친 바다에 당당히 맞서 헤엄쳐 가는, 그 조차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어떤 순간을 그림에 담아낼 때마다

완전히 그 작품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삶을 즐기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넓은 해안가의 모습도,

폭풍우 속을 항해하는 배의 모습도 모두 애착이 가죠.

흰물결 갤러리 전시에서 사람들이 경계를 풀고,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기쁨을,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에너지를 느끼면 좋겠어요.

딱 두 단어, 기쁨과 에너지!

그게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부예요.


- 데스 브로피 -




'Dancing in the rain' - © Des Brophy _ 출처 : 아트 크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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