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버님 댁 티브이 고장 내드려야겠어요
비록 내 발이 자유로이 집 밖을 나갈 수는 없지만 인터넷이 있어 다행히 귀는 뚫린 채 살아가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인간의 역사를 바꾼 기술 중 하나라더니 집안에 갇혀 보니 인터넷이 세상을 나와 연결해준다는 2000년대 감성 짙은 광고 문구 같은 이 말이 이렇게 실감 날 수가 없다. 게다가 작년, 베란다에 설치해둔 위성 안테나도 강제 철거를 당하는 통에 한국 티브이 까지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스마트폰을 통해 한국에서 사는 것처럼 늘 한국 소식을 접하고 있다.
그런데 상하이 봉쇄 이후, 상하이의 소식을 한국 뉴스를 통해 더 많이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봉쇄로 인해 사람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팩트 전달이었지만 갈수록 폭력과 슬픔, 분노 등 자극적인 내용의 뉴스가 늘어갔다.
2020년 2월,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한국에서도 기승을 떨치고 국경을 닫네 마네 시끄럽던 중 지금 중국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급히 중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만 2년이 넘어갔다. 자식들과 손자들이 너무 그리운 우리 부모님은 결국 팔순이 넘으신 연세에 스마트폰으로 영상 통화를 배우셨다. 살아오신 세월만큼이나 건조하고 투박해진 손가락들은 스마트폰 화면의 작은 아이콘들을 터치하기도 어렵고 아직 카메라 방향을 바꾸는 방법도 모르셔서 가끔은 부모님 얼굴 대신 벽만 봐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버님은 꾸준히 전화를 걸어오시고, 또 우리의 전화를 허허 즐거이 받으신다.
최근 들어 부모님의 영상 통화가 잦아졌다.
잘 사냐 답답해서 어쩌냐 언제쯤 풀리겠냐, 매일 새로울 것 없는 대화뿐이라도 봉쇄 전보다는 자주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어째 분위기가 영 밝지 못하시다. 팔이 아프도록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시느라 주로 이마가 주인공인 화면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그중에 가끔 비치는 희고 고우신 어머님의 얼굴에 붉은 눈시울이 선명하다. 걱정 않으신 척 헛기침만 흠흠 해대시는 아버님은 어째 얼굴이 더 검어지셨다. 잘 먹고 있냐, 돈은 있냐, 일은 안 하는데 월급은 누가 주겠냐 하시며 걱정을 말을 뱉으신다. 티브이에서 또 상하이에 관해 밝지 않은 뉴스를 보셨나 보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월급 나오고 돈도 있어요! “
“그렇게 누워 노는데 누가 돈을 준다냐! "
앗, 소파에 반쯤 누워 목소리만 참견한 내 모습을 그새 포착하셨나 보다. 역시 우리 아버님 대단하셔.
“에이 ~ 일 다 해요 걱정 마세요! 일은 노트북으로 다 하고 월급 나온다니까요”
"그짓말 마라, 내가 뉴스에서 다 봤는디!"
실은, 회사 직원이 은행을 가지 못해 3월 급여를 받지 못한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은행을 못 가서 월급을 못 받은 거고, 월급은 나올 거예요. 그리고 돈이 없어 물건을 사지 못하는 건 아니라니까요. 물건이 없어 못 사는 거지.
아니다. 괜히 걱정만 느실 것 같으니 그냥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웃어드리고 꽉 찬 냉장고과 물건이 가득한 주방도 보여드렸다.
이제 부모님과 통화할 땐 목 늘어진 티셔츠 대신 단추 달린 셔츠라도 챙겨 입고 노트북 앞에서 바쁜 모양, 연출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나와서 살면 안 되겠냐. 거긴 못 쓰겄더만..."
목소리 끝이 무거워 지시는가 싶더니 어렵게 마음속 소리를 내놓으시고 늘 그러셨듯 "들어가" 한 마디로 통화는 종료되었다.
봉쇄가 길어질수록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다더라,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나 시설로 옮겨졌다더라, 외국인이 격리를 거부하다가 체포를 당했다더라 등의 자극적인 뉴스가 한국 방송과 플랫폼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현지에서 직접 상황을 겪고 있는 내가 몰랐던 소식도 많았다. 언론통제가 심한 중국에서는 이런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내용들은 뉴스에 등장하지 않고, SNS에 등장해봤자 검열 시스템으로 다 삭제되어 알 수가 없다. 상황이 열악했던 유아 격리 시설 영상처럼 전 시민들의 공분을 일으켜 시정부에서 개선방안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유아”라는 단어가 검열 대상이 아니라 똑똑지 못한 AI가 이를 놓쳤거나 검열 시스템에 잠깐 오류가 있었으려나. 혹은 아이들의 문제라면 유난히 민감한 중국사람들이라, 정부에서도 조금은 쫄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국 뉴스에서 없는 일을 보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봉쇄 초기엔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엇다. 나이 드신 부모님들의 자식에 대한 걱정이 오히려 당신들의 건강을 해칠 정도가 되고 심지어는 몇 년 동안 소식이 뜸했던 친구가 “밥은 먹었냐, 살아는 있냐”며 시대에 맞지 않는 안부를 물어올 만큼 자극적인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닌데. 힘들긴 하지만 방법을 찾아 잘 살고 있는데.
하긴, “40일째 상하이에 갇혀 있는 보 부장은 어제 싱싱하지 않은 대파를 평소 두 배의 가격에 샀고 꽃대가 가득한 배추로 김치를 담그고 잡곡은 없지만 흰쌀밥을 배불리 먹으며 잘 살고 있답니다”라는 보도는 할 필요가 없겠지.
그리고 거꾸로 생각해보니, 뉴스에서 부모님이 접한 소식은 어쩌면 당장 내가 당할 일일지도 모른다. 원인도 모르게 양성 확진을 받고 영사관을 포함한 어느 기관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격리시설을 돌며 고생했던 한 교민의 호소는, 언젠가 내가 쓰게 될 봉쇄 일보의 내용일 수도 있다. 옷을 훌렁 벗어 재낀 채 알몸으로 텅 빈 아파트 단지를 홀로 걸어 다녔다는 어떤 여자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미친 듯 소리를 지르게된 나의 정신상태가 아주 특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실 보도가 의무인 언론에게 사실을 보도하지 마라 할 수도 없고 나에게 좋은 내용만 보도해 달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중국이 언론을 통제하나 보다. 나처럼 마음 복잡해하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지시를 따르라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계속 통지를 기다리라, "等通知" 하라고.
어렵다. 언론의 역할과 보도의 객관성, 독자들의 분별력 같은 엄중한 주제는 모르겠고, 일단 부모님들께는 뉴스를 조금 덜 보시라 말씀드리는 수밖에. 그리고 아버님이 아직 영상 통화 기능 정도만 익숙하신 것에 감사하자. 초록창이나 노랑창의 더 많고 더 자극적인 뉴스들은 못 보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