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도 최선이 될 수 없는 선택
워낙 칼같이 결단을 잘 내리는 성격이 아니긴 하지만, 봉쇄 기간 내내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을 계속 만나고 있다. 어쩐담.
네 식구 입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평소 한국 쌀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동북 쌀을 10kg 이상 재어두는 습관 덕에 쌀 걱정은 없다 자신했는데 이미 열흘만에 쌀통이 비어버렸다. 20kg 도 부족할지 모른다는 살림꾼 친구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밥만 먹어대자니 쌀이 부족할까 싶고, 밥 대신 빵을 먹자니 어렵게 구한 빵, 나중에 먹고 싶을 때 못 먹으면 서글플 텐데. 어쩐담.
식자재 공수 문제로 가장 스트레스를 받던 봉쇄 후 일주일 즈음. 간식이라고는 껍질을 까느라 입만 똑똑 바쁜 해바라기 씨 한 줌뿐, 쌀독 드나드는 쥐처럼 주방을 뒤적거리는 아이들 입에 들어갈 과자 하나가 없다. 과자 대신 생라면에 스프 뿌려 와그작 아그작 씹는 맛이라도 즐기라 할까 하지만 잠깐, 급할 때 유용한 주식이 되어줄 라면이 부족하면 안 되는데. 어쩐담.
꼭 필요할 때 먹어야지 싶어 냉장고 깊이 두었던 푸른 이파리 채소들. 며칠 지나 꺼내보니 결국 이파리가 죄다 물러져 반도 건지지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 행이다. 오늘 구호품으로 도착한 상추도 더워지는 날씨에 이미 풀이 죽어 시들한데 지금 먹자니 나중이 아쉽고 넣어두자니 또 썩혀버리게 되려나 싶고. 어쩐담.
비타민 팡팡 터지는 과일이 그리워 싶어 공구로 신청한 지 닷새 만에 도착한 귤 한 박스. 열어보니 썩은 놈들 멀쩡한 놈들 반반. 봉쇄 전에 담가둔 김치통이 바닥인지라 어렵사리 비싸게 구한 배추가 반은 꽃대 반은 짓무른 이파리. 반품하자니 아쉽고 이대로 먹자니 화가 나고. 어쩐담.
봉쇄 초기에 구호품으로 정부로 받은 지급받은 양배추와 샐러리. 오래 두고 먹겠다고 냉장고에 고이 넣어두긴 했지만 3주가 넘도록 썩지도 무르지도 않고 싱싱하다. 세상에 이게 가능한 일인가. 너네 뭘 먹고 자란 거니… 이대로 먹자니 뭔가 찝찝하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초록 아삭 이파리가 아쉽고 어쩐담.
누군가에게는 너무 유치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갈등들. 하지만 나는 지금 죄짓지 않고도 갇혀서 살아가는 이 말도 안 되는 생활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무엇도 최선이 될 수 없는 선택지를 앞에 두고 고민하고, 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먹을거리 걱정이 가장 핫이슈인 일상을 살다 보니 작은 선택이 크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먹을 게 없어 배를 곪지는 않다 보니 가질 수 있는 “배부른” 갈등이기도 하다.
지금도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 하는 중.
정부 구호품으로 받은 조림 닭이 가짜 브랜드라는 소문이 도는데. 먹자니 언젠가 나쁜 병으로 돌아올 것 같고 버리자니 야들야들 닭고기 한 입이 아쉽고.
어쩐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