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일상이야, 멍청아!

세계 경제 위기고 뭐고 난 모르겠다고

by 보부장



식탁 위 전등 3개 중 가운데 등이 깜깜해졌다. 전구가 나갔나 보다. 쟁여놓기를 좋아하지만 전구까지 쟁여놓고 살지는 않는터라, 어쩔 수 없이 복도 천장에 있던 전구를 하나 빼서 꽂았다. 나머지 둘은 노란빛, 복도에서 빌려온 등은 하얀빛. 뭔가 좀 이상하고 복도도 어두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컴컴한 식탁 아래서 밥을 먹는 것 보다는 낫다.



밖에 나갈 일은 없지만 맨발로 다니기에 아직은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라 봉쇄 기간 내내 면양말 두어 켤레를 번갈아 신어가며 생활했다. 출근을 할 때라면 반짝이 양말도 신었다가, 스커트에 스타킹도 한번 신었다가 다양한 양말 생활을 했을 텐데 지금은 따뜻하고 발목 끝까지 올라오는 면양말이 딱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엄지발가락에 구멍이 뻥 뚫렸다. 거진 60일 동안 매일 신고 빨고 말리고 또 신고 빨고 말리고 했으니, 운명을 다할 만도 하다. 어디 목 늘어난 오래된 면양말이라도 없나 더 뒤져봐야겠다.





봉쇄 전보다 더 핸드폰 사용시간이 길어졌다. 이제 정말 핸드폰이 왼쪽 손바닥에 붙어있음 편하겠다 싶을 정도다. 늘 업무에, 공구 소식에 카더라 통신에 핸드폰 화면만 괴롭히다 보니 배터리는 금방 배가 고프다며 빨간불을 울리기 일쑤고, 늘 가족 중 누군가의 핸드폰에 꽂혀있어야 하는 충전선이 나를 죽여달라 항의라도 하는 듯 머리를 덜렁덜렁 거린다. 미안하다, 충전 선아. 물류가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혹은 상점들이 정상으로 문을 열기까지는 넌 죽으면 안 된단다. 의료용 테이프, 스카치테이프, 집안의 온갖 끈끈이 테이프는 다 가져다 깁스라도 시키듯 충전선 머리를 칭칭 감아두었다. 조금만 견뎌다오, 네가 없으면 나는 봉쇄가 아니라 정말 고립이 된단다.




우리 집은 몇 년째 잡곡밥을 먹고 있다. 현미 말고도 오트밀, 보리, 율무 등 입자가 큰 잡곡들을 흰 쌀만큼이나 잔뜩 넣어, 꼭꼭 오래 씹어야 밥을 삼킬 수 있다. 아이들은 향긋하고 흰쌀밥이 좋다며 항의를 하곤 하지만 가족 모두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엄마 아빠보다 살아갈 시간이 많은 너희는 나중에 흰밥 많이 먹고살라며 잡곡을 오래 동안 고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봉쇄 시작 2주 만에 잡곡은 겨만 남겼고 잡곡은커녕 이것저것 먹어보고 제일 맛있다며 몇 년째 먹어오던 빨간 포장의 흰 동북 쌀도 살 수 없다. 그나마 공구로 구할 수 있는 찰기 없이 폴폴 날아다니는 흰 쌀로 지은 밥은 입에 넣는 즉시 목구멍으로 다 미끄러져 내려갔고 배가 차기도 전에 다 사라졌다. 다들 조용히 한 공기씩 더 덜어먹는다. 쌀이 모자란데 밥은 더 먹게 되다니. 엎친데 덮친 격이다. 식사시간도 이전보다 훨씬 짧아져 아이들은 순식간에 흰쌀밥을 흡입하듯 먹어 치운 뒤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리고 우리는 쓸쓸한 노년 부부처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잡곡의 시대가 그립지만 쌀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오늘은 5월 16일,


처음 내가 코로나로 인해 단지에 갇힌 3월 18일을 기준으로 하자면 60일째이고, 3월 28일, 생각지도 못했던 상하이 전체 봉쇄로부터는 50 일되는 날이다. 물론 2월에 한국에서 상하이로 들어와 3주간 의무 격리 후 바로 봉쇄를 당하느라, 거의 석 달째 아파트 단지 안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코로나 외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시대에 바깥 소식이 그래도 궁금하긴 하지만 ‘제로 코로나라는 훌륭한 원칙과 모범적인 정부의 실행 덕에, 갇혀있지만 안전하고 행복한 상하이 시민들’의 내용만 가득한 중국 뉴스는 정신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며칠 뒤면 대부분 사실로 밝혀질 만큼 정확성을 지닌 카더라 통신이나 자극적이고 걱정스러운 내용도 많지만 한국 뉴스 속 재중 특파원들의 보도를 종합하여 하루의 이야깃거리를 찾고 내일을 상상하며 살고 있다.



봉쇄 초기, ‘봉쇄’라는, 평생에 한 번 입에 담을까 하던 이 단어가 현실화되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상상을 초월한 일들에 집중하던 보도 내용들은 최근 들어 이 상황이 불러일으킬 경제적 파장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상하이는 중국 전체 GDP의 3.8%를 차지하고 2600만 명의 인구는 호주 전체 인구와 맞먹을 만큼 많은 숫자고 번화가든 미개발지역이든 상하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땅은 서울의 10배가 넘는 면적이란다. 그냥, 어마 어마하게 큰 도시라는 거다. 하긴, 중국이라는 이름하에 물리적인 크기로 따졌을 때 이기지 못하는 분야가 있을까.

중국 전체 물동량의 20%를 차지하던 상하이 항구가 멈추는 바람에 전 세계로의 수출에 문제가 생겼고, 원자재나 물자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곳곳에서는 두 달 여의 시간이 지난 이제야 각종 문제들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담당이 출근을 못해서 회신이 좀 늦어진대요” 수준으로 시작했던 봉쇄의 영향이, 이제 동남아 어느 지역 의류공장을 멈춰 서게 하게 하고 미국 병원에서 수술에 필요한 검사를 못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껏 높아진 물류, 원자재 비용은 일상 소비재들의 가격 위로 조금씩 조금씩 이슬이 쌓이듯 내려앉아 가계부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회사의 생존과 달린 일이겠지만, 사실 이런 뉴스들이 모두에게 똑같은 무게로 전달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에 가족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흘려들었을 소식일 수 있고, 공격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봉쇄로 인한 경제 문제나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감정과는 관계없이 그저 비아냥 거림의 좋은 빌미가 되었을 테고,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에게는 꼼꼼히 기록해두어야 할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을 테다.



하지만 나는 중국 경제가 얼마나 어려워질지, 세계 경제가 어떤 나비효과를 겪게 될지, 혹은 내가 역사책에 중요한 사건을 겪은 2600만 시민 중 하나로 기록될지 그런 거창한 내용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나는 산책 삼아 들른 집 앞 철물점에서 노란 등인지 흰 등인지를 따져 구매한 전구 하나로 식탁을 밝히고 싶을 뿐이고, 면양말 목이 늘어나거나 구멍이 나기 전에 이번엔 베이지가 좋을까 카키로 사볼까 잔뜩 쌓인 새양말들을 이리저리 골라 보고 싶을 뿐이고, 머리가 덜렁거리는 충전선을 하나 사겠다는 핑계로 쇼핑몰에 들러 충전선 보다 더 비싼 과일주스를 마스크 없이 죽 들이키고 싶을 뿐이고, 헬스클럽에서 5분을 달리고 10분을 샤워를 하고 나오든 운동 대신 잡곡이나 영양제를 선택하든, 건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고민과 선택을 자유롭게 하고 싶을 뿐이고.


지금 나에게는, 아니 봉쇄 중인 모든 상해 시민들에게는 일상의 이런 사소한 시간들이 가장 그립지 않을까? 물론 누군가는 중단된 혈액 투석이나 항암처럼 생명을 건 문제를 마주하고 있을 테니만 그렇다고 이런 내 일상의 작은 고민들이 가볍고 소중하지 않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오롯이 살아가는 내 인생인데. 작은 집에서만 갇혀 살다 보니 맘도 조그마해지나보다. 이 봉쇄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을 마주쳤을 누군가에게 속 좁은 양해를 구해보지만 어쩔 수 없다. 몇 번이나 더 맞게 될지 모르는 내 봄날도 이미 송두리 째 도둑맞은 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