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 등장한 돼지고기

몰라서 무섭다

by 보부장

주식 시장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라 했다.


팔기 전에는 내 돈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주식 계좌의 빨강 파랑에 흥분하며 지낸 지 10여 년이 넘은 지금도 주식 관련 블로그며 책마다 쓰인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뭐람. 어차피 앞날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다 약한 마음에 대한 핑계인 게지’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작은 소문에 우르르 주식을 사고파는 현상을 그저 문장으로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난 그런 군중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있는 사람인 마냥.

그러던 내가 최근 하루에도 몇 번씩 “불확실성 Uncertainty”을 되뇌며 이 단어가 만들어 내는 공포 속에 살고 있다.




몇 안 되는 한국의 지인들 중에서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국은 이제 정말 “위드 코로나 with corona “시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중국은 언제나 그랬듯 내 갈길 간다라는 마인드로 강력한 “제로 코로나 ZERO CORONA” 가 원칙이다. 지금까지는 뒷전에 놓인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 덕분에 잘 통제를 해오는 것처럼 보였다. 나 또한 지난 2년 간 헐거운 마스크로 (가끔은 주머니에 넣어둔 채) 봄에는 꽃놀이, 가을에는 단풍놀이, 가끔은 사람이 바글바글한 맛집에서 외식도 하고 창문 없이 꽁꽁 밀폐된 미술관도 다니며 다른 나라에 비해 자유로운 생활을 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통제할 수 없는 전파력을 가진 오미크론 때문에 중국에도 강제로 새로운 시대의 문이 억지로 열리고 있는 것 같다. 그 부대낌이 너무 아프다.


중국에서는 확진자 집계 시 본토에서 확인된 유증상 확진자, 무증상 확진자, 해외유입 확진자로 나누어 구분하며, 방역작업은 세 가지 모두 똑같이 엄격히 진행하지만 본토 확진자를 중심으로 수치가 집계된다. 무증상 확진자가 900명이 넘어가는 오늘도, 공식 집계 자료에는 4명이라는 본토 확진자 수만 확인 가능하다. 눈 가리고 아웅. 사람들의 심리적인 동요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일 테다. 오늘의 무증상 확진자는 오늘 사람들을 조금 놀라게 할 뿐, 내일이면 그 의미가 사라진다. 효율을 중요시하는 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15억이 넘는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에서 팩트를 "약간" 짜깁기 하는 것과 "모르쇠"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 외국인들은 중국 정부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악마의 편집과 억지가 있을 뿐. 그리고 봉쇄 기간 동안 그들의 편집기술은 조금더 교묘해 졌고, 나 또한 불확실성을 조장하는 그들의 공식자료에 점점 초조해하며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증만 커져 갔다.


지난 주말 이틀간 많은 구역을 봉쇄하고 해당 구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핵산 검사를 한다는 발표가 났을 때, 이제 숨어있던 바이러스들이 터져 나오고 한국처럼 위드 시대로 가려나, 좀 갑작스럽네, 싶기만 했다. 발표 내용에 48시간이라는 정확한 기간이 있었기도 했고, 어차피 주말을 낀 일정이라 업무에 큰 문제도 되지 않았다. 한참 비를 뿌리듯 바람에 날리는 벚꽃놀이를 즐기러 나갈 수 없다는 게 좀 아쉽다면 아쉬웠을까.


하지만 불확실한 상황 uncertainty 은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예정되어있던 48시간이 지나 일요일이 다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해제를 지속한다하건, 하루만 더 참아달라 하건 뭐라 얘기가 있어야 그다음을 예상할 텐데. 심지어 아침부터 밤까지 새로운 소식이 있나 하루에도 몇번씩 들여다보는 우리 지역 공식 계정은 일요일 새벽, 어떤 자료를 발표했다가 다시 내용을 삭제하기도 했다. 무슨 내용이었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이제 핸드폰 수면 모드도 해제하고 방역과 관련된 온갖 공식 계정 소식받기까지 신청해 두어야 하나.

그러나 방역관리자들도 사람인지라, 누군가의 입을 통해 혹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봉쇄가 연장될 것이라는 계획이 사람들 사이에 "카더라"로 퍼지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부터 친구들로부터, 크고 작은 단체 대화방으로부터 길어질 봉쇄기간에 대비해 늦게라도 식자재를 확보해야 한다는 걱정들이 쏟아졌다.

평소 같았으면 괜히 근거 없는 소식에 흔들린다며 콧방귀를 뀌었을 나였지만 대형 슈퍼를 통해 식자재 공동구매가 가능하다며 던져준 누군가의 링크에 구매 버튼을 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이나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지금 외부와 연결 가능한 유일한 통로인 핸드폰을 손에 쥐고 나 또한 "카더라"를 양성하며 온갖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느 하나도 없었다.

불안했다.


밤 9시 반, 결국 공중 계정을 통해 대부분의 구역이 당분간 봉쇄를 지속한다는 공지가 발표되었다.

내일 출근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작은 불확실성은 해소되었지만, 결국 언제까지 이렇게 갇혀있어야 하나, 먹을 것은 충분한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일까 더 큰 불확실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 봉쇄를 풀었다 닫았다, 혹은 기약 없이 봉쇄를 풀지 않는 아파트 단지들도 생겨났다.

거대한 공포가 사람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급한 일로 한국을 다녀오느라 외국 방문 후 의무 격리 기간인 21일 동안 꼼짝없이 호텔방에 갇혀있는사람들이 덜 불안해하는 듯했다. 적어도 언제 내가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 알고는 있으니 말이다.

듣기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봉쇄가 풀리지 않는 이유를 알려 달라며 주민들이 경찰에 전화를 하거나, 대문에 모여 항의를 했다고도 한다. 평소에 정부의 지시를 놀라울 정도로 온순히 따르는 중국 사람들이지만 기약 없이 갇혀야 하는 속 시원한 이유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방역과 관련된 중대한 사안"이라는 기계 같은 대답 외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이번에 절실히 알았다. 거짓말보다 나쁜 건 알려주지 않거나 숨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지도, 불확실한 뉴스가 떠도는 주식 시장에서 왜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들이 쉽게 투매를 하는 지도.


불확실성은 평온한 마음을 잠식하고 두려움에 그 자리를 내어주게 한다. 두려움은 곧이어 이성적인 판단도 쫓아내나보다. 봉쇄가 계속된 어느 날, 동네 담배가게에서 갑자기 가게 앞 길거리에 가격도 알 수 없는 채소며 돼지고기를 잔뜩 늘어놓고 아파트 대문까지 배송을 해주겠다며 sns로 광고를 해댔다. 누가 살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다음 날 새로운 고기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을 보니, 다 팔려나간 모양이다. 불확실성이 불러온 희극이다.



누군가는 불확실성을 기회로 잡아한 몫을 벌려고 하겠지만, 나는 이 불확실성이 해제되는 순간, 이성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불확실성은 확실한 공표 announcement에 너무 쉽게 해제가 된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다음 숙제). 담배가게 아주머니는 이 불확실성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고 저 돼지고기를 길바닥에 널어놓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아,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직접 체험한 지금의 나도 불확실한 뉴스에 파란 계좌의 주식을 던져버리게 되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될까? 그럴 때마다 담뱃가게 아줌마의 돼지고기를 사지 않은 나를 칭찬하며 떠올리기를. 언젠가 불확실한 뉴스가 확실해지면, 모든 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