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았군

상하이 봉쇄가 해제됐다고 소문났다네

by 보부장

한동안 뜸하더니 한국 지인들, 부모님들로 부터 연락이 다시 늘었다.

“봉쇄가 풀렸다는데 이제 나갈 수 있는 거니?”

아니요, 거짓말 말라하세요. 난 아직도 아파트 정문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






5월 15일, 상하이 길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져 버린 지 46일째 되던 날, 상하이 정부는 "점진적으로" 일상 복귀를 진행한다는 공식 발표를 하였다. 부시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가진 사람의 공식적인 발표이기도 했지만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날짜까지 제시되어 중국 다른 지방이나 해외에서는 이제 상하이가 해방되었다라고 읽혔나 보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지하철 일부 노선 재개, 상하이 기차역 노선 증가 등의 실제적인 해제를 알리는 소식들도 속속 발표되었다. 하지만 부시장이 발표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내용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언제 문밖을 나서 그 지하철을 타고 , 그 기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정까지 나왔는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공식적인 일정 발표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제는 먼 얘기라며 회의적인 멘트를 던졌지만 오랜 시간 방치되어 새가 둥지를 틀 지경이었던 자동차의 백미러도 열어주고 이미 엉겨 붙은 지 오래인 새 똥도 정성스레 긁어내는 등 조금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스갯소리로 나누던 세차 서비스도 공구시장에 등장했지만, 세차는 아직 이른 일이었다. 우리는 또 속았다.




- 은행이 문을 열었다는 놀라운 소식이 상해 공식 계정에 올라왔다. 직원들이 방호복을 입고 근무한단다. 급여를 달라로 받는 친구가 몇 달 동안 환전을 하지 못해 생활비가 바닥이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뉴스에 나온 곳은 시내에서 20km 떨어진 인구 밀도 희박한 지역의 작은 지점 소식이란다. 속았다. 대박 세일 이라고 크게 써놓고 눈에 보이지 않게 "단, 지정 품목 한정" 이라 써놓은 쇼핑몰 전단지를 만난 느낌이다.




-지하철이 다시 운행을 한다고 했다. 사진에는 듬성듬성 이긴 하지만 사람들도 보였다. 그럼 이쪽 구(区)에서 다른 구로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걸까? 자동차 도로 사이사이에는 아직 무거운 철망과 경계석이 놓여있던데. 알고 보니 비행기 티켓이나 기차표를 가진 사람들만 탈 수 있는 상황이라, 중간에 타는 사람만 있고 내리는 사람은 없는 이상한 운행이다.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홍챠오 기차역과 더 멀리 떨어져 있는 푸동 공항이 연결된 몇 개 노선만 운행을 재개한 것이다. 속았다.



-지방으로 향하는 고속철이 다시 운행을 시작했단다.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모여 정갈하게 줄을 서있고 기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시민들의 얼굴과 함께 개인 방역에 힘을 써달라는 당부가 뉴스의 내용이다. 그런데 온라인 앱으로 판매하는 기차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는데 표는 어떻게 구하는 걸까?

그나마 어마어마하게 비싸진 암표라도 구한 사람들은 아파트 주민위원회에 출소, 아니 아니 출가 아니 아니, 어쨌든 단지를 벗어날 수 있다는 허가를 받고, 음성 핵산 검사 결과서를 지니고 (그나마 거의 매일 강제 검사를 받고 있으니 이게 제일 쉬운 일이다) 공유 자전거에 아슬아슬하게 바퀴 달린 캐리어를 연결한 뒤 차 없는 도로들을 가로질러서, 혹은 최소화 한 짐을 이고 지고 걸어서, 그것도 힘들면 짐을 하나 둘 버려가며 기차역에 도착한다 했다. 자동차 도로 한복판으로 캐리어며 이불 보따리를 옮겨가는 모습은 묘기를 부리듯 위태했지만 정말 다행이다. 길에는 차가 없어 교통사고의 위험은 오히려 제로겠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면 코로나가 득실득실했던 상하이에서 왔다는 이유로 일주일 동안 지정장소에서 격리를 거친 후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

어쨌든, 또 속았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다는데, 요즘 상하이 지역 뉴스가 더하다. 끝까지 듣는 것도 모자라 숨어있는 내용도 다 뒤집어 봐야 한다. 새로운 공지가 올라올 때마다 중국어 공부를 하는 기분으로 한자 한 자 한 자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전과 문장을 왔다 갔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부터 살아오던 본토인들도 긴가 민가 하는 판에 나 같은 외국인이 이면에 숨어 있는 뜻까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속는다.



하긴, 중국 정부는 언제 아파트 정문을 열어주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 우리가 곧 해제가 될 거라는 희망에 스스로 속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 뿐. 14억이 넘는 인구가 한 가지 이야기만 얘기해도 14억 개의 사실일 테지만 누구나 쉽게 일상을 공유하는 별 스타 그램도 사용할 수 없고, 100% 검열을 거치는 중국 채널만 사용 가능한 중국인지라, 잘 편집된 공식적인 발표밖에 접할 길 없는 해외 언론인들도 잠깐, 속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릴 뿐. 이제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아 문이 열리면 나가는 건 가보다, 하고. 이렇게 바보가 되어간다.